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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2월 14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독서 복음묵상

도구 Ludovicus 2007. 12. 14. 08:55

 

 

 

 

 

 

12월 14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독서 복음묵상

 

독서 이사 48, 17-19

세상에 온갖 나무가 있어

나무마다 그 가지가 지니는 독특한 개성대로 뻗어가지만요,

감나무 가지만큼 너그럽게 자유롭게 평화롭게

뻗어가는 나무는 없다고 합니다.

처음에 둥치에서 가지가 몇 개 나오면

그것이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는데요,

그 가지에서 다시 다른 가지가 나면

또 사방으로 퍼져 나갑니다.

이렇게 해서 어떤 가지는 저쪽으로 어떤 것은 위로

어떤 것은 아래로 앞으로 뒤로

어느 방향이든지 빈 하늘로 나아가서 주렁주렁 열매를 맺습니다.


누군가는 이 감나무를 보고 묵상하면서

믿는이들도 둥치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나간

감나무처럼 활발하게 전교활동을 하면서

주님의 나라를 번성하게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리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르고 유익한 것을 가르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느님의 명령을 귀담아 들었다면

바빌론 포로생활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본국에서 평화를 누리며

자손은 번성하며 주변의 국가들 앞에서

야훼 하느님의 이름을 크게 떨치면서 살았을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다시 말씀하십니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야 하는 임무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바빌론에서 나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심판의 자리에서 나와

열방 가운데 우뚝서서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또한 우리의 몫이기도 합니다.


복음 마태오 11, 16-19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가도

영적인 감각이 무뎌질 때가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보고야 믿겠다고 했던 토마스처럼 의심을 할 때도 있습니다.

어느 종교학자는 확신이 없는 믿음을 두고

하느님이 개념화 됐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는데요,

미사와 기도 찬미를 통해서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개념은 실체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개념으로 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느님은 이러이러하고 머릿속으로 정리해놓은 것을

그냥 하느님이라고 받아들이는 행윕니다.

그런 개념의 하느님을 믿으면

기쁨이나 감사는 없고 하느님과의 만남같은 체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념화된 하느님이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하느님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성경를 통해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고

미사를 드릴 때 하느님 존재를 느껴야 합니다.

그 만남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고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해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를 장터에서

친구를 놀리는 아이들에 비유하십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피리를 불면 친구가 춤추길 바라고

곡을 하면 가슴을 치길 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따라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합니다.


사람들은 요한이 먹지 않으니까 귀신이 들렸다고 했고

예수님이 드시고 마시니까 먹기를 탐하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비난을 했지요.

그들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보는대로 비판을 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목적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

그분의 지혜로 다양하게 일하십니다.

그 일들이 상이해 보여도 하느님께서는 그것들을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시죠.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교회력으로 새해인 대림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올 대림시기는 뼈를 깎는 인내와

고통을 요구했던 외환위기를 극복한지

십 년이 지난 해지만 그 아픔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빛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는

여전히 낮은데로 임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 

사람들이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을 하는 것을 봅니다.

좋은 일에 꽤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사람이

타고 다니는 승용차를 없애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잘 나가는 병원의 문을 닫고

오지의 나라로 의료봉사를 하러 떠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또한 평생을 화려하게 살았던 유명인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보도를 접한 적도 있습니다.

환갑에 가까워오는 부부가

손주보다 더 어린 불쌍한 남의 아기를 맡아서

사랑을 쏟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존경스럽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예수님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일,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일,

그리고 믿어지지 않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이 많습니다.

누군가가 정말 놀라운 선택을 했다면

그 선택의 뒤에 놓인 열망이나 의로움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도 요즘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한 겨울이라서 눈이 내리기도 하고 때아닌 봄꽃이 피어나서

뉴우스에 오르내리는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인간들의 삶속에서 만나는 믿어지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과도 같은 모습에서 주님의 뜻을 알게 하소서

아멘. 


- 평화방송 기쁜소식 밝은세상에서 -

 

 

 

 

출처 :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
글쓴이 : 요하네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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