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1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독서 복음묵상
독서 이사야 40, 1 - 11
오늘 독서인 이사야서 40장 이후의 말씀을
‘위로의 책’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40장 1절 이하,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라고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바빌론의 귀양살이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고
예루살렘의 기쁨을 미리 내다봅니다.
유배기간은 그들에게 복역기간이었고,
죄벌을 받는 기간이었으며, ‘잃어버린 기간’이었습니다.
암흑의 시기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제 그 기간이 끝나갑니다.
예언자는 외칩니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목자가 양떼에게 풀을 뜯게하고
젖먹이 딸린 어미 양을 곱게 몰고 오듯이,
하느님께서는 원수를 정복하시고
승리하신 보람으로 찾은 백성을
친히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있을까요?
양떼를 찾아 어린 양을 품에 안고오는 목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품에 안긴 양은 이제 승냥이의 위협에서도
추위와 배고픔에서도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쉴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품어안기 위해 구세주께서 오십니다.
어두운 암흑의 시간 잃어버린 시간들을
모두 보상해주기위해 주님께서 오십니다.
오소서, 주님
우리에게 어서 오소서.
복음 마태 18, 12 - 14
학창시절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의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꼽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얼마전, 유치원에 다니는 조카에게 이 책을 사서 주었더니,
너무 슬프다고 두 번 읽기가 힘들다고 하더군요.
잘 아시겠지만, 그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먼 옛날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처음에는 그 나무의 나뭇잎으로 왕관을 만들기도 하고
나무에 올라가기도 했으며
그 나무의 시원한 그늘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그 소년이 커서
청년이 되자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사과열매를,
그 다음에는 나뭇가지를
그 다음에는 줄기를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나무밑동을 내주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조카는,
‘나무가 너무 불쌍하다’고 하더군요.
소년은 나무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오직 나무만이 소년에게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쳤으니 말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이 나무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한 사람..
어쩌면 참 많이 닮은 존재가 아닌가요?
바로 예수님께서 언급하시는 목자, 예수님 당신입니다.
목자가 아흔 아홉마리를 다 두고도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맨 이유는
바로 그 양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재산이 축날까 걱정해서가 아닙니다.
나무가, 소년이 자신에게 무엇인가 해주기를 기대하며
아낌없이 주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의 목자 역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섭니다.
그 마음을, 그 사랑을 잊지 않도록.. 나무의 사랑이
그대로 소년을 바라 보고만 끝나는 슬픈 이야기가 되지 않길
희망하는 것처럼
우리도 착한 목자의 사랑에 응답을 해야할 것입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우리에게 ‘작은 이’의 모습으로 오시는 우리주 예수님.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모습으로,
당신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온전히 남에게 자신을 맡겨야 하는 ‘작은 아기’로 오십니다.
당신께서는 일생을 ‘작은 이’로 사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삶은 온통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 가득차있으셨지요.
또한 그들이 겪어야하는 아픔으로 인해
당신의 마음은 부서져 내렸고
세상에 대한 사랑은 시대와 관습과 제도를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에수님
당신께서는
다른 아흔 아홉마리 양보다도
길 잃은 한 마리 양 때문에 전전긍긍하시고
마음아파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사랑의 예수님.
저희가 혹여 길을 잃고 헤매이며
주님의 사랑의 길에서 비껴나 있더라도
주님께서는 저희를 찾고, 기다리고,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않게 하소서.
아멘.
- 평화방송 기쁜소식 밝은세상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