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가톨릭

[죄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쳐라] 걱정하지 마라

도구 Ludovicus 2007. 12. 11. 2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일 수 있느냐?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라라"(마태 6, 25 -28)

 

마태오복음 중 산상수훈의 한 대목인 마태오복음 6장 25 - 28절은 세상의 여러 가지

일로 걱정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메세지입니다.

기도 안에서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주님에 대한 신뢰를 카워 나가는 은총을 청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봄의 들판을 상상해 보십시오. 흔히 '산상수훈'이라고 부르지만

실상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주신 곳은 이름 모를 들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야트막한 언덕입니다.

 

마태오복음의 '산상수훈'은 산에서 가르치신 내용뿐 아니라 여러 곳의 가르침을

마태오 복음사가가 모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늘 가까운 일상에서 비유를 찾으셨지요. 따라서 이 대목을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분명히 푸흔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보고 들꽃의 향기를 맡으셨을 것입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여온 무리와 아름다운 봄날의 들판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거 끼니를 걱정해야 했고 밤에는 추위에 떨어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삶의 무거운 짐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때문에 먼저 '걱정하지 마라'는 말로 운을 떼십니다.

 

기도 안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보십시오. 예수님이 지니신 연민을 느껴보십시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알고 그들을 사라하십니다.

당신 또한 가난한 나자렛 목수의 아들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지요.  예수님이 가장 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입니다.

그것은 가장 찬한 자가 가장 높은 자가 되리라는 희망의 메세지를 인류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굶주림과 추위를 겪었고 그 고통을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먹을 것과 입을 것애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걱정'에 해당하는 희랍어 '메림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근심하면서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을

나타냅니다. 어떤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염려하는 것과 초조하게 안절부절못하면서 근심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예수님게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결코 하느님만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위로를 주시고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연의 일부가 되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 역시 창조주의 섭리 안에서

탄생한 자연의 일부임을 되돌아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을 나는 새들과 들의 꽃을 바라보도록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상상 안에서 새들의 지저귐과 꽃들의 향기를 맡으십시오.

새들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생존경쟁 속에서 먹이를 찾아야 합니다.

건기에는 한 방울의 물에 목말라하며 시들어 갑니다. 하지만 꽃들은 지금 이 순간 자연에

몸을 맡기고 마음껏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상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자주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때우쳐 주시는 것이지요.

 

팔레스타인 지역 들에서 영어로 '파피'라고 부르는 양귀비과에 속하는 빨간 들꽃이 많이

피어 있습니다. 그 꽃은 매우 예쁘지만 수명이 짧아 곧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오늘 피었다가 내일에는 아궁이의 불꽃 속에 던져지지요.

예수님께서는 아름다운 자태로 피어 있는 들꽃을 바라보며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기보다

들꽃을 자라게 하시는 분을 생각하라고 초대하십니다.

 

먹을 것이나 입을 것 등은 삶의 기본조건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삶에서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임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나아가 하느님의 은총을 생각하며 그분께 신뢰를 지니라고

초대합니다.

 

성 이냐시오는 기도 안에서 오관을 활용하라고 합니다.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서 여러 감각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들에 핀 들꽃을 바라볼 뿐 아니라

향기도 맡아보십시오. 바람에 스티는 향기를 맡으며 평화로워진다면 그 평화 안에 오래

머무르십시오. 형화 안에서 하느님 나라와 의로움을 새겨보십시오.

그 의미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이라는 말을

여러 번 되뇌어 보십시오.

 

기도에서 어떤 것을 깨닫거나 말씀의 의마를 모두 헤아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하게 한 단어나 구절을 반복해 읊조리다 보면 어떤 느김이 올 수 있습니다.

그때 그냥 그 느낌 안에 머무십시오. 위로나 평화가 느껴진다면 주님이 주시는 은총이지요.

그 은총 안에 머물며 평화를 누리십시오.

 

ㅁ모든 것이 당신 것입니다. - 류해욱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