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간 수요일>(2009. 8. 12. 수)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8월 12일의 복음 말씀은 교회 공동체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어떤 형제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그를 타이르는 것은
형제애를 회복하고 공동체의 품에 안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는 단둘이 만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비밀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 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그를 타이르는 것입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교회에 알리라고 했습니다.
이젠 더 이상 비밀을 지킬 수 없습니다.
교회에 알리라는 것은
그 당시 기준으로는 교회 공동체에 알리라는 것인데,
공동체의 회의 안건으로 제출하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요즘 기준으로는 교회의 권위자에게 알리는 것이 되겠지요.
본당의 일이라면 본당신부, 교구의 일이라면 교구장,
전체 교회에 관한 일이라면 교황이 될 것입니다.
교회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교회를 떠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배반자 유다도 자기 발로 떠났고, 예수님과 사도단은 그를 붙잡지 않았습니다.
회개는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붙잡아 앉혀놓고서 강제로 회개를 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를 다른 민족이나 세리처럼 여기라는 것은
공동체에서 제명시키라는 것입니다.
그건 파문 조치가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이 마음을 모아 청하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은
교회 공동체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항상 교회 공동체와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말씀은
하늘의 교회와 지상의 교회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땅의 결정 사항을 하늘이 따른다는 뜻이 아니고,
땅의 결정은 하늘의 뜻을 반영한다는 뜻입니다.
즉 교회 공동체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의 뜻이
교회의 이름으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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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혼자 기도하셨던 예수님을 본받아서
초기 교회 때부터 혼자 광야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은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도생활을 혼자 하는 것은 위험했고, 부작용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아서
차츰 은수자들이 한 곳에 모여서 함께 수도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수도회가 생겼습니다.
이제는 수도생활은 공동체 생활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이 도를 닦는 일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공동체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사도들을 모아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사도들은 각자 순교할 때까지 공동체로 살았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몸으로 함께 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교회란 단순한 조직이나 집합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입니다.
이것은 생명 공동체이고, 운명 공동체입니다.
왜 꼭 그래야 하느냐고 물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인간들이 정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정하신 방식입니다.
예수님을 받아 먹는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신자라면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고,
그렇게 한 몸을 이룬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는 한 몸입니다.
그래서 공동체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가는 것은
한 몸으로서의 생명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되고,
그것은 곧 생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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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함께 모여 기도한다는 것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을 포함해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중요한 것은 같은 하느님을 같은 방식으로 믿는 일입니다.
지금 많은 종파로 갈라져 있는 것은 분명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제 와서 그게 누구의 잘못이냐고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말로는 같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말로는 같은 성경이라고 하면서도,
서로 상대방을 이단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현실.
자녀들이 서로 갈라져서 서로 상대방에게 사생아라고 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는 분명 하나인데...
종파 분열은 그렇다치고,
같은 교회 안에서도 일치를 이루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누군가 슬퍼할 때 함께 울어주고,
누군가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해줄 수만 있어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정말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같은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사도단 안에서도 처음에는 바라는 것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사도들끼리 다투기도 했습니다.
유다는 바라는 것이 너무 달라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공동체란 같은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게 어디 교회 공동체만의 문제이겠습니까?
정치인들이 속으로 바라는 것이 다 제각각이니 정치가 이 모양이지요.
남북 문제도 서로 바라는 것이 다르니 늘 꼬이기만 합니다.
가족 공동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속마음으로는 바라는 것이 다르면
그게 상처가 되고, 불신의 원인이 되고, 파탄의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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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있어야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혼자 있으면 안 됩니다.
혼자 있게 되면,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계명인 사랑을 실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고하게 혼자 있는 것은 자아도취일 뿐입니다.
그건 이기심입니다.
흙탕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흙탕물에 뛰어드는 것이 사랑입니다.
교회에서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만 신앙생활하겠다고 고집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가장 중요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그런 태도 자체가 곧 죄입니다.
신학교나 수도원에서도
아무리 기도 잘 하고, 착하고, 규칙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야말로 천사 같이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공동체와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그냥 내보냅니다.
가장 중요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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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잘난 사람이 늘어나고 독불장군도 늘어납니다.
무종교주의자도 늘어나고, 무교회주의자도 늘어납니다.
무종교주의나 무교회주의란
하느님을 믿긴 하지만 종교나 교회는 필요없다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세포로 존재하겠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단세포 생물도 생명체인 것은 맞는데,
생명 활동은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몸 안에 있는 세포이면서 몸을 죽이는 암세포가 있습니다.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 생긴 것이지만
몸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몸을 죽이고 결국은 자기도 죽는 세포입니다.
교회 안에도 분명 암세포가 있습니다.
암세포는 수술해서 제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교회가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수술을 누가 할 것인가, 라는 문제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제도가 필요하고 권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질서가 필요하고 규칙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부정하고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것은
암세포가 늘어나는 것을 방치하자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지상에서는 건강한 영혼으로 살아야 하고,
천국에서는 구원 받은 영혼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걸 위해서 교회에 속해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신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가 교회를 필요로 합니다.
혼자서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혼자서도 도를 닦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믿는 하느님이 진짜 하느님이라는 확신은 누가 심어줍니까?
자기가 가고자 하는 곳이 천국인지, 아닌지는 누가 알려줍니까?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동체를 강조하신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라고 하신 말씀에서,
공동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생명력이 예수님을 통해서 가지와 잎사귀에 골고루 전해집니다.
그 생명체가 곧 공동체입니다.
공동체가 싫다고,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떨어져 나가면...
끝입니다.
그 사람은 말라 죽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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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권위자에 대한 순종이란 궁극적으로 예수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사제들의 순종은 특별히 두 가지 면에서 요구됩니다.
첫째는 교리에 대한 순종이고,
둘째는 인사이동에 대한 순종입니다.
교리에 대한 순종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걸 불순종하면 이단이 되거나 다른 종교로 떨어져 나가는 것이 될 뿐입니다.
인사이동에 대한 순종은 공동체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그걸 불순종하게 되면... 질서가 다 무너질 수 있습니다.
가지는 가지로 존재해야 살 수 있습니다.
가지가 뿌리가 되겠다고 고집부리고, 잎사귀가 열매 노릇을 하겠다고 고집부리면
그 나무는 죽어버릴 것입니다.
신자들이 교회 공동체에 순종하는 것도 같습니다.
역시 교리에 대한 순종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자들도 인사 명령에 대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물론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신자들에게 어떤 직책을 맡길 때,
모두가 다 싫다고 거부해버리면 공동체 유지가 안 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회장 직책을 맡아야 하고, 누군가는 부장 직책을 맡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제단 청소를 해야 합니다.
좋고 나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인데...
그 누군가가 누구입니까? 바로 '나'입니다. 너가 아니라 나.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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