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연중 제16주일 중고등부 강론 ╆♡╆ 조영만 세례자요한 신부님 ╆♡╆ <연중 제16주일 중고등부> 어제는 농민주일이었습니다. 안동교구 전 농민회 회장 배용진 요한 어르신이 오셔서 교중미사때 재복음화 강의를 해주신 덕에 저의 강론은 없었습니다. 올해 75세, 이미 식량 자급률이 25%대로 떨어진 한국 농업을 지키고 있는 농군의 대부분은 이런 노구의 할아버지들이십니다. 지금도 청송 에서 7000평의 논에서 유기농 농사를 고집하시는 줏대의 농군으로부터 감사와 귀한 영감을 많이 입었습니다. 회장님, 고맙습니다. 어제 중고등부 미사 때 강론을 올립니다. 평소 중고등부 강론 이 어렵지 않은데, 어제는 유난히 길고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들어주는 우리 아이들이 참 고맙습니다. <밀의 실패, 주인의 성공> 머리에 시근이 조금 들고 난 다음 하느님이 진짜 있나 없나를 고민할 무렵, 하느님이 있다면 설명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세상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하느님이 있다면, 무죄한 백성들이 권력자들에 의해 죄 없이 죽임을 당하고, 전쟁으로 어 린 아이들이 피해를 입고 여성들이, 그리고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무참한 대량학살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느님이 있다면 그런 것들은 죄다 막고 범죄자들은 처단하고 선하고 바른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게 해주셔야 하지 않는가? 그러다 나이가 좀 더 들면서는 멀리 아우슈비츠까지 갈 것도 없이 하느님이 계시다는 이 세상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불공평하다는 사실에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만보니 있는 집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조기 유학에 뭐에, 실력으로 공부하기 보다는 돈으로 공 부를 하고, 없는 집 아이들은 학원 하나 가는 것도 힘이 든 판국이니, 하느님이 있다면 이건 너무 불공평한 일이고, 또 가만보니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우리 아버지들은 모두가 끽 해봐야 남의 밑에서 명령이나 받드는 노동자 인생에 불과하고, 정작 큰 소리 떵떵 치고 다니는 사람들은 부동 산 대박 터뜨리거나 남 등쳐먹고 사기쳐먹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 하느님이 있다면 바르고 성실하 게 산 사람들은 도대체 왜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없단 말인가? 도 따지게도 되었습니다. 이제 사제가 되고 몇 가지 해답을 얻은 것들은 이렇습니다. 첫째 오늘 복음에서처럼 하느님께서 악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는 것, 인간 세상 뿌려진 악의 근원은 바로 좋은 밀밭에 음습하게 뿌려진 가라지처럼 원수인 마귀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따지고 보니 하느님이 전쟁을 일으키신 것이 아닙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인간입니다. 6.25를, 월남전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이었고, 탐욕으로 전쟁을 일으켜 무죄 한 사람들을 죽게 만든 것도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 세상이 이토록 불공평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보다 부정을 저지르 고 사기를 치고 검은 뒷거래를 일삼는 악의 사람들이 더 큰 소리를 치고 살게 만든 것도 하느님 탓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얄팍한 꼼수들이 정직하게 살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을 더 섧게 만들 고 억울하게 만드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제가 되면서 정당하게 사는 사람들, 바르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억울하게 만드 는 나쁜 놈들, 권력자들, 재벌들, 부정한의 방식으로 세상 편하게 사는 인간들 하고 싸우고 저항 하는 일이야 말로 하느님 나라의 일이고 곧 사제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군과 그리고 그들의 부당한 지배를 그리워하는 어른과도 싸워야 한다고 해서 평택 미군기지도 갔고, 자연 갈아엎는 개발 투기꾼들과 싸워야 한다고 새만금도 갔고, 국민들 무시하고 깔보는 이명박 정권과 싸워야 한다고 광화문 광장에도 나갔습니다만은, 결정적으로 그 모든 것은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평택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섰고, 새만금은 결국 방조제 공사가 끝나 그 광활했던 갯벌이 다 죽고 그 자리에 투기 자본과 도박 시설이 들어오고 있으며, 오늘도 촛불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정권 은 국민들 눈치 볼 것도 없이 방송을 장악하고 민영화를 거듭거듭 추진한답시고 난리 떠는 꼴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제의 입장에서 볼 때 저는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입장에서 볼 때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묻습니다. 도대체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저는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범서성당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으라고 할까요? 안됩니다. 그럼 우리 아이들만 바보가 되는데 요. 우리 범서성당 아이들에게 바르고 성실하게 살으라고 할까요? 그러면 나중에 이 세상이 그 마 땅한 상급을 줄 것이라고 할까요? 안됩니다. 약삭빠르고 눈치껏 나쁜 방식을 이용해 먹는 인간들 이 더 빨리 출세하고 성공하는데, 우리 아이들만 뒤처지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 도대체 우리 아이들에게 저는 무엇을 말하고 가르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느님께 따지고 또 물었을 때, 오늘 복음은 제가 여러분에게 말해야 할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십 니다.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 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 어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애시당초 종자가 다른 것들입니다. 나쁜 종자는 할 수 없습니다. 제 아무리 지금 설치고 지금 조 금 성공해 보이고 지금 당장 잘나가는 것 같아보여도, 그 종자의 끝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가라 지가 아무리 설치고 밀싹보다 더 많이 자라나서 번창해보인다손 치더라도 결국 그것들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저 자기들 욕심이나 차리다가 그렇게 땅의 피 다 빨아먹고 누구에게도 좋은 덕 못 베풀다가 그 렇게 사라지고 말 것들입니다. 밀의 입장에서 더 빨리 자라고 더 키도 쑥쑥 자라는 것 같은 가라 지를 부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밀은 자라나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의 열매를 영글지만 저만 알던 가라지는 결국 뽑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속에 던져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다시 깨닫습니다. 왜 밀밭 속에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하느님께서 내버려 두신 것인지, 나쁜 놈들, 나쁜 악들 한꺼번에 싹 잘라버리지 아니하시고, 그것들이 다 자랄 때까지 내 버려 두시는지, 우리들이 최소한 밀로서의 가치를 잊지 않고 가라지의 성공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하루하루 밀알들의 성장을 묵묵히 살아낼 수 있으려면, 저만 알고 자라는 가라지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라지 틈바구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은 밀은 더욱 빛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하느님께 서는 아무런 악도 유혹도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그냥 편하게 자라기를 바라시는 분이 아니라 가라 지와 싸우고 가라지와 차별되게 사는 법을 사랑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신부님은 실패했지만, 하느님 입장에서는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 바르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일이 세상에서는 참 우습게 보이고 힘없게 보일 지라도, 하느님은 그것으로 당신 밭의 소출을 내고 계십니다.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서 행하는 일은 제 아무리 크게 보일지라도 하느님 입장에서는 가치가 없고,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위해 행하는 일은 제 아무리 작게 보일지라도 하느님 입장 에서는 대단히 큰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중고등부 학생 여러분, 우리가 크게 보는 일이 하느님의 눈에는 작게 보이고, 우리가 작게 보는 일이 하느님의 눈에는 크게 보이는 법입니다. 그러니 저는 다시 여러분들에게 작은 일을 더 성실하게 임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박이 나 꿈꾸고 한방 터뜨려 인생 역전하려는 마음 보다는 묵묵하고도 성실하게 여러분과 또 제 자신에 게 주어진 일들을 사랑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라지 사이의 밀싹처럼 그렇게 자라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멘.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글쓴이 : 五餠二魚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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