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4주일>(2009. 12. 20)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주일 복음 말씀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 만남은 두 어머니의 만남이고,
아직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두 아기의 만남이고,
신약과 구약의 만남입니다.
이제 구약시대가 끝나고 신약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성모 마리아를 대하는 태도는
사촌언니가 사촌동생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구세주의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엘리사벳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더 이상 사촌동생으로 대하지 않고 구세주의 어머니로 영접한다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 눈이 열렸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아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보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천사에게 심부름을 시키거나
예언자들을 시켜서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를 알아보는 것도 믿음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것도 믿음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기적을 체험하고 가르침을 들은 사람은 많지만,
끝까지 예수님을 따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이 예수님 탓은 아닙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기적에서 하느님의 일을 보지 못하고,
자기 귀에 들려주는 가르침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없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끝내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믿음은 은총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해야 할 노력이기도 합니다.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믿음의 은총이 결실을 맺고
그 믿음의 은총은 더욱 깊은 믿음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믿음의 완성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행복입니다.
다시 말해서 완전한 믿음은 완전한 행복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리아는 완전한 믿음을 보여 주신 분이고,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가장 복되신’ 분으로 칭송합니다.
복음 말씀은 마리아의 완전한 믿음과 완전한 행복을 칭송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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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곧 행복이라는 것을 묵상하려면,
먼저 의심이 곧 불행이며 고통이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못한 ‘의심’이 원인입니다.
질투는 그 의심에 불을 붙인 도화선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닌 것도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다윗을 믿지 못한 것이 원인입니다.
자기 자신도 하느님께서 뽑으신 왕인데,
그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왕권을 지키려고 한 것이 문제입니다.
다윗은 충성스러운 신하였는데, 다윗을 믿지 못한 것도 문제입니다.
다윗에 대한 시기 질투는 그 의심에 불을 붙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도 믿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이 결국 배반으로 이어지고, 자살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제가 교도소 사목을 하던 시절에
의처증이 심해서 부인을 살해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 그는 정신병자가 아니었습니다.
검사와 판사도 그를 정신병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다 정상인데, 의처증만 심했습니다. 그것만 비정상이었습니다.
그의 의심은 모두 근거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자기 혼자만의 생각대로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의처증이 아니고,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망상이었습니다.
부인의 행동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 의도를 의심하고, 목적을 의심하고,
그런 의심이 결국 살인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행동이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의 주장을 받아줄 수가 없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의심하고,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닌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스스로 의심을 풀고 믿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해결 방법이 없었습니다.
믿음 없음, 또는 의심은 이렇게 사람을 고통과 불행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반대로 믿음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통해서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그 사람을 믿어야 합니다.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믿지 못하면, 사랑도 깨지고 행복도 사라집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사랑으로 완전한 행복을 얻고 싶다면,
먼저 하느님을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인간의 지식과 상식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하고,
하느님께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의 고통과 시련이 믿음을 흔들어놓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흔들림 없이 믿어야 합니다.
즈카르야는 믿지 못해서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의심해서 고뇌의 시간들을 지내야 했습니다.
엘리사벳은 믿었습니다.
마리아가 구세주를 잉태하셨음을 믿었고,
마리아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셨음을 믿었고,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가 세상을 구원하게 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마리아를 ‘믿음으로 행복한’ 여인이라고 칭송한 엘리사벳 자신도
사실은 믿음으로 행복하게 된 여인이었습니다.
믿음이 믿음을 알아봅니다.
은총이 은총을 알아봅니다.
기적이 기적을 알아봅니다.
행복이 행복을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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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잃고 미신에 빠진 사람들은 스스로 불행해집니다.
미신을 믿어서 행복해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잠깐 기분 좋을 수는 있지만, 참 행복은 얻지 못합니다.
믿음은 없고 늘 의심 속에 사는 사람은 항상 불행합니다.
그런 사람은 십자가의 고통은 보는데, 그 너머의 부활은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고통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희망도 없습니다.
희망이 없으면 사랑도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곳은 지옥입니다.
전에 ‘신의 아그네스’ 라는 연극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연극을 본 후에, 다시 소설로 읽었고, 다시 영화로도 보았습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해석이 다르긴 하지만,
저는 그 내용을 ‘믿음을 잃으면 은총도 저주가 된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만일에 마리아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하느님은 다른 여인을 선택하셨거나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셨겠지만,
믿음 없는 상태에서 구세주를 잉태했다면 과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 시절에 낙태수술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지금 이 시대의 여인이었다면 아주 쉽게 낙태수술을 결정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연극 ‘신의 아그네스’의 아그네스처럼 아기를 살해하거나...
(낙태수술이란 하느님의 은총을 저주로 바꾸는 아주 큰 대죄입니다.)
사울이 믿음을 잃음으로써 그를 왕으로 선택하신 하느님의 은총은
사울에게는 거의 저주로 바뀐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고,
결국에는 그 자신과 요나단 왕자까지 비참하게 죽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국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못했던 카인은
평생 살인 죄인이라는 낙인을 몸에 지니고 살아야 했습니다.
스스로 은총을 저주로 바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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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세속의 부귀영화를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 행복은 세상의 행복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세상의 행복이란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즐거움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행복은 영원하고 강력합니다.
마리아의 행복은 바로 하느님의 행복이었습니다.
부귀영화라는 것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행복입니다.
이제 성탄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하룻밤 떠들썩하게 놀면서 세속적인 쾌락에 빠지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날이 아니라
정말로 마리아가 누렸던 그 행복을 우리도 누리는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시끄럽게 놀아서
아기 예수님이 잠도 못 자게 되는 타락한 밤이 되지 않기를...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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