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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림제3주간수요일(091216.수)

도구 Ludovicus 2009. 12. 16. 09:15

<대림 제3주간 수요일>(2009. 12. 16. 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세례자 요한이 제자 두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서 여쭙게 합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한 것처럼 보이고,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세례자 요한에게 하신 말씀으로 해석하기 쉬운 내용이지만,

그렇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등장하는 내용들을 모두 종합해서 보면

요한이 의심한 것이 아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의심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35절-42절을 보면,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메시아로, 또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합니다.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와서 보아라.”

그들은 그날 예수님과 함께 묵었습니다.

두 사람 가운데 안드레아가 있었습니다.

그는 베드로에게 가서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합니다.

 

12월 16일의 복음말씀인 루카복음 7장 18절-23절과

요한복음 1장 35절-42절을 비교해보면 상황 전개가 거의 비슷합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고)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가고(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내고)

그리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의심한 것은 요한이 아니라 요한의 제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 그들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요한은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아라.“ 라고 했을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왔을 때,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루카복음에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하루를 함께 지냈습니다.

하여간에 그들은 그 다음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원래부터 하느님을 믿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은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예언자로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구약성경에 약속된 구세주(이스라엘만의 구세주)로 믿었고,

그 다음에는 온 세상을 구원하는 진정한 구세주로 믿었고,

그 다음에는(마지막에는) 하느님으로 믿었습니다.

 

사도들의 믿음은 그런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하고 성숙한 것입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라는 예수님 말씀에서의 ‘의심’이란

예수님을 예언자로만 믿고 구세주로 믿는 것은 망설이는 단계에서의 의심,

또는 구세주로만 믿고 하느님으로 믿는 것은 망설이는 단계에서의 의심입니다.

 

토마 사도가 믿지 못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야기하는 것과는 내용이 다릅니다.

토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자마자 즉시

“내 주님, 내 하느님!” 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일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것은

‘예수’ 라는 사람 자체를 믿지 못한 것입니다. 사기꾼일까? 예언자일까? ... 그런 의심.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 단계씩 거치면서,

의심과 믿음을 반복하면서, 그렇게 믿음을 갖게 되고 믿음이 깊어집니다.

 

조선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올 때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이 함께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초기 신자들에게는 그 전부를 믿느냐 마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제자들이 거쳤던 단계를 거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요한의 제자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과는 달리

우리들에게는 중간 단계 없이 바로 마지막 단계의 도전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은 곧 하느님께서 하신 일들이고,

예수님의 약속들은 곧 하느님의 약속들이라고 믿는 것.

 

의심 없이 받아들이면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건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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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밤”

 

‘영성생활’에 관한 교과서들을 보면 ‘영혼의 밤’ 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신앙생활이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교대로 나타나고

밤과 낮이 교대로 다가오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성인 성녀들이

처음부터 죽을 때까지 완벽하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 속에서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엔 흔들리고, 어떤 때엔 의심하고,

그런 과정을 계속 거치면서 꾸준히 전진, 또 전진하면서

완전한 믿음에 도달합니다.

 

영혼의 밤 -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것은 예수님도 겪으신 밤입니다.

올리브 동산에서 체포되기 직전에 피땀 흘리며 기도하실 때가

예수님의 영혼의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을 의심했다는 뜻은 아니고,

예수님에게도 고통과 번민, 또는 고뇌라고 표현되는 시간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성모님도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고뇌하시지는 않았고, 침묵 속에서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요셉 성인도 고뇌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에게도 그런 시간은 많이 있었습니다.

성인 성녀들과 순교자들에게도 그런 시간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밤이 지나면 하느님의 아침이 찾아옵니다.

그 밤은 시련과 고뇌의 시간이지만

아침은 기쁨과 영광의 시간입니다.

 

누구에게나 영혼의 밤은 찾아옵니다.

믿음은 그대로인데 확신과 기쁨이 사라질 수도 있고,

시련과 고통 속에서 믿음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믿고 싶지만 자꾸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고,

분명히 믿고 있는데, 왠지 공허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시기가 바로 ‘영혼의 밤’입니다.

 

어떤 이는 그 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믿음을 잃거나 냉담자가 됩니다.

어떤 이는 그 시기를 잘 극복해서 더 깊고 더 굳은 믿음을 갖게 됩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는 속담과 같다고나 할까...

 

성인전을 읽어보면 거의 모든 성인들이 그런 시기를 겪지만

더 많은 기도와 고행을 통해서 그 시기를 극복하고 영광의 아침을 맞이합니다.

 

우리도 영혼의 밤이 찾아왔다고 느낀다면 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기 싫어질 때가 더 많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왠지 성당에 가기 싫어질 때, 그때가 바로 더 성당에 가야할 때입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마태 26,38)

 

이 말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힘들어 하셨던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서 힘을 얻으셨습니다.

“일어나 가자.” (마태 26,46)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신학교 가기 전에도, 신학생 시절에도, 신부가 된 후에도,

가끔씩 그런 영혼의 밤이 찾아온다는 것을 느낍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기도하기가 싫어지고, 사제의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그럴 때일수록 저는 더 맹렬하게 기도합니다.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에서 “일어나 가자.” 까지 사이에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는 기도 밖에 없습니다.

“고뇌에 싸여 바쳤던 간절한 기도.” (루카 22,44)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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