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간 수요일>(2009. 12. 2. 수)
<하늘나라의 잔치>
제1독서는 하느님께서 잔치를 열어주시는 내용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빵 일곱 개로 많은 군중을 먹이시는 장면입니다.
춥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배부르게 먹는 것이 천국입니다.
외롭고 불행한 사람에게는 함께 모여서 먹는 잔치가 천국입니다.
너무 잘 먹고 잘살기만 해서 배고픔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성경에서 하늘나라를 잔치로 표현한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1독서와 복음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독서 말씀에서는 하느님께서 음식을 차려놓으시고 사람들을 초대하십니다.
사람들은 가서 그 음식을 먹기만 하면 됩니다.
탈출기의 만나의 기적도 그랬습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그냥 내려왔고, 사람들은 줍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빵의 기적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자기의 일을 하도록 요구하십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술이 떨어졌을 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지시하셨고,
그 물로 술을 만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빵의 기적에서도 누군가 내놓은 빵으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독서 말씀은 하느님의 은총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복음 말씀은 사람 쪽에서의 능동적인 참여 자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바란다면 어느 정도는 자기 몫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뭔가를 청하려면 우리 쪽에서도 뭔가를 해야 합니다.
시험에 합격하려면 먼저 공부를 해야 합니다.
병이 치료되기를 원한다면 성실하게 병원에 다녀야 합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기도만 한다면 그건 너무 염치없는 짓입니다.
자기는 치료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기도만 한다면 병이 더 깊어질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아직 수준이 낮은 신앙생활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말하자면 원시인들의 원시적인 수준의 신앙생활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구약시대가 아니라 신약시대입니다.
기적을 원한다면 기적이 일어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믿기만 하면 천당 가고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일부 종파는
아직도 원시적인 구약시대에 머물러 있는 종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가르침은 예수님의 중요한 명령입니다.
그 명령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예수님께 뭔가를 받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빵 일곱 개로 수많은 빵을 새로 만들어내신 기적을 행하셨지만
그 전에 먼저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배고픔을 걱정하신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 전에 먼저 빵 일곱 개를 내놓은 사람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먼저 있었고, ‘기적’은 나중에 생겼습니다.
빵 일곱 개로 수많은 군중이 나눠먹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덜 배고픈 사람이 더 배고픈 사람에게 양보하면 가능한 일이 됩니다.
누군가가 일단 자기 빵을 내놓았다는 것, 그 사랑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의 모습을 보면
많은 군중이 먹을 수 있는 빵을 혼자 다 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많은 빵을 혼자 다 먹고서 그것도 모자라서 남의 것을 뺏어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아예 기적 자체를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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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올해의 마지막 달이 되었습니다.
연말이 되면 늘 듣는 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 라는 말 좀 그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해가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인간들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있다면 내년에도 여전히 다사다난할 것입니다.
연말에 반성하고, 연초에 새로운 결심을 하는 모습들도 해마다 반복됩니다.
그 반성과 그 결심에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항목이 없다면
그건 그냥 공허한 말장난으로 그칠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시간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 말씀의 빵 일곱 개의 기적을 다른 각도로 다시 생각해봅니다.
올 한 해 내가 가진 것은 빵 일곱 개뿐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수천 명이 먹을 수 있는 빵으로 늘려주셨습니다.
나는 빵 일곱 개를 내놓는 정도의 적은 노력을 했을 뿐인데,
예수님께서는 수천 명에 해당되는 큰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나는 겨우 일곱 번의 기도밖에 안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수천 번의 응답을 주셨습니다.
내가 예수님께 드린 사랑은 겨우 일곱 개였는데,
예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사랑은 그것의 수천 배, 수만 배였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어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께 칠천 개의 빵을 드렸는데,
내가 받은 것은 겨우 빵 일곱 개뿐이었다.“ 라고 투덜거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는 칠천 배의 노력을 했는데, 일곱 개의 은총밖에 못 받았다.”
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는 칠천 번의 기도를 했는데 기도의 응답은 그중에서 겨우 일곱 번뿐이었다.”
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에 제가 로마서를 공부하고 있는데,
그렇게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좋을 구절을 만났습니다.
“아, 인간이여! 하느님께 말대답을 하는 그대는 정녕 누구인가?” (로마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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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 221번의 가사를 여기에 옮겨 적습니다.
주여 나를 온전히 받아주소서
주여 나를 온전히 받아주소서
나의 모든 자유와 나의 기억과 지력 나의 의지
소유한 이 모든 것을
주여 당신께 드리리이다
이 모든 것 되돌려 드리오리다
주여 나를 온전히 받아주소서
주여 나를 온전히 받아주소서
내게 주신 모든 것 주의 것이오니
오직 주님 뜻대로 처리하소서
당신 사랑 은총을 나에게 주시면
아무것도 더 바람 없으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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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것을 아주 많이 하느님께 드렸는데,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조금밖에 안 된다고???
아무도 그렇게 불평할 수 없습니다.
자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원래 다 하느님 것이었는데.
연말의 반성 시간은 곧 ‘감사의 기도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망년회인지, 송년회인지, 술이나 퍼먹는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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