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일>(2009. 11. 29)
<대림>
옛날에 우리나라 어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인데,
뚜렷한 이유도 없이 자꾸 생산성이 떨어지더랍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전문가를 초빙해서 기술자문을 의뢰했습니다.
독일 전문가는 며칠 동안 그 회사의 공장을 둘러보더니
딱 한 가지만 지적하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가 지적한 것은 공장 청소를 깨끗이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회사 측에서는 사기꾼에게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어떻든 밑져야 본전이니까, 실제로 공장 청소를 깨끗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눈에 띄게 생산성이 향상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를 많이 해야만 믿음이 깊어지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믿음이 깊어집니다.
무슨 엄청난 고행을 하고, 기도를 하고, 업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죄가 있다면, 그 마음이 깨끗하지 않다면,
그런 고행과 기도와 업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대림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림 시기는 성탄절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눈에 보이는 구유와 트리 장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의 구유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미움과 욕심과 고집과 교만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기 예수님을 가시가 잔뜩 박힌 침대에 눕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편안하게 쉬실 수 있는 편안하고 깨끗한 구유 하나를
각자 우리 마음속에 정성스럽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대림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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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이란 ‘오시기를 기다린다.’ 라는 뜻입니다.
교과서적으로 설명한다면,
전례적으로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신학적으로는 종말에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대림 시기란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기다린다고?
그 말은 곧 지금 예수님이 안 계신다는 것으로 들리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안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승천 대축일에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이 성탄절에 아기로 태어나시나?
우리는 항상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대림 시기에 새삼스럽게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유는?
이제 조금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대림 시기란,
우리가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는 시기라고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 계셨습니다.
일 년 내내, 하루 종일, 하루 이십사 시간.
새삼스럽게 우리가 예수님을 기다릴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떠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먹고사는 일에 너무 바빠서,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재미에 빠져서,
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입되어서,
우리의 마음이 자꾸 예수님을 떠나 있었고,
예수님 생각도 안 하고 무심하게 지나친 날들이 많았습니다.
‘돌아온 아들의 비유’에서
집을 나가서 자기 혼자 재미있게 살던 아들이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예수님께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시기,
그게 바로 대림 시기입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그냥 돌아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디 먼 하늘에 계셨던 것도 아니고,
우리가 모르는 어떤 곳에 가셨던 것도 아니고,
우리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눈만 돌리면 보일 수 있는 곳에 늘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곳만 보았습니다.
예수님께 손을 내밀지 않고 다른 곳으로만 손을 뻗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대림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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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갑자기 마을의 스피커에서 뭔가 방송을 하는 소리가 들리고
성당의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밤중에 종을 친다면 그건 틀림없이 조종(弔鐘)입니다.
글을 쓰다 말고 나가보니 수녀님께서 종을 치고 계셨습니다.
신자 한 분이 방금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병자성사 이야기도 없었는데 갑작스러운 일입니다.
잠시 강론 작성을 멈추고 교적을 뒤적거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든, 안 되어 있든,
우리는 이렇게 하느님께로 돌아갑니다.
언제 어떻게 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마침 복음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갑자기 덮치는 날이 될 것이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성탄절을 맞이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해마다 대림 시기와 성탄절이 반복된다고 해서
인생살이와 신앙생활을 습관적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올해의 대림 시기와 성탄절이
자기 생애의 마지막 대림절과 성탄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림 시기,
우리가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예수님의 환영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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