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4주간 목요일>(2009. 11. 26. 목)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루카 21,28)
신학교 신입생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과목은 라틴어입니다.
라틴어 공부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잠꼬대를 라틴어로 하는 학생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라틴어는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무조건 다 외워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군대에 있는 동안 돌머리가 되어 있었던 저는
아직 싱싱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다른 학생들보다
몇 배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만 했습니다.
첫 번째 라틴어 시험을 며칠 앞두고
저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책과 노트를 외우기 시작했는데,
시험 범위 안에 있는 모든 단어와 문법과 문장과 번역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몽땅 다 외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나와도 백점을 맞을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시험 날짜가 다가올수록
다른 학생들은 여전히 라틴어 때문에 몹시 부담스러워했지만
저는 전혀 초조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사 변화표를 쓰는 문제에서 두 개 틀렸고,
점수는 백점이 아니라 98점이었습니다.
그 점수는 학년 최고 점수였는데도
저는 두 개 틀린 것이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말하자면 ‘범생이’의 재수 없는 모습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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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심판은 하느님 앞에서 치르는 시험입니다.
시험 준비를 잘 한 사람이라면 전혀 불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은 사람은 몹시 불안하고 초조할 것입니다.
종말을 왜 두려워합니까?
그건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종말의 표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면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드는 것은
구원의 희망과 믿음, 그리고 당당함을 나타내는 자세입니다.
종말이 다가오는 것은 곧 구원받을 날이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은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자신해도
잊어버린 죄,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죄, 사소한 습관적인 일들,
자기가 생각하지 못했던 그런 죄들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함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완전함을 향해 노력하기를 요구하시는 분입니다.
비록 우리가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완전함을 향해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제출할 인생 보고서는
결과 보고서가 아니라 과정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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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강론을 하다 말고 신자들에게 불쑥 물었습니다.
“지금 당장 종말이 오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나중에, 한참 뒤에 오는 것이 좋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느 쪽을 더 바라십니까?“
할머니 한 분이 이런 대답을 하셨습니다.
“지금 당장 와도 상관이 없는데,
자손들을 생각하면 나중에 오는 것이 좋겠구먼요.“
젊은 사람들과 어린이들은 인생을 좀 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 그 할머니의 생각이었습니다.
교리서대로 말하면, 이 나그네 길 인생을 빨리 마치고
하루라도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찍 죽는 것이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래 사는 것이 반드시 은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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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은 우리에게는 희망의 날이고, 구원의 날입니다.
종말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세상이 그냥 팍 망해버리기를 바라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종말과 예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잔치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 인생이 고달픈 사람이라면 그 고달픈 삶을 마무리하는 잔치,
지금 인생이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라면 그 행복이 완성되는 잔치.
어떻든 누구에게나 잔치가 될 수 있습니다.
단, 조건은 준비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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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항상 시험 때만 되면 심리적으로 쫓겼습니다.
시험 전날 잠도 안자고 벼락치기 공부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부터는 평소에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면 그런 다짐은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그런 못된 습관을 버렸습니다.
저 자신이 생각해도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당시 어떤 교수 신부님께서
“시험이란 실력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이다.”
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실력 발휘의 기회가 되는 사람에게는 시험이란 즐거운 일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학생에게는 괴로운 형벌입니다.
결국 자기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
우리가 그 시험공부를 어떻게,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입니다.
자꾸만 종말과 최후의 심판을 공포의 날로 묘사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은 사이비 종교의 전술입니다.
다시 말해서 종말에 대한 공포심은 사탄의 음모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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