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4주간 화요일>(2009. 11. 24. 화)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시한부 인생, 그러나 희망>
옛날 옛날에 어떤 사람이
아무도 못 가진 특별한 재능을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느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는 새들의 이야기를 알아듣는 특별한 재능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새들이 날아와서 나무 위에 앉아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집의 말이 병에 걸려 곧 죽겠군.”
그런데 그의 말은 건강했습니다.
그는 말이 아직 건강할 때 서둘러 팔아버렸습니다.
그래서 큰 손해를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어느 날, 새들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집의 황소가 곧 병에 걸려 죽겠군.”
그는 황소가 아직 건강할 때 서둘러 팔아서 손해를 예방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재능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새들이 날아와서 말했습니다.
“이 집의 주인이 얼마 못살고 병으로 죽겠구먼.”
그는 자기가 아직 건강하지만 그 새들의 예언이 항상 맞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팔아버릴 수도 없고...
그는 날마다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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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정해져 있고, 그 미래를 미리 안다면?
로또복권 당첨 번호를 미리 알면 좋겠지요.
그런데 복권 당첨 뒤에 강도를 당하게 된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면?
그래서 식구들이 죽고 다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래도 복권을 사게 될까요?
미래에 일어날 불행을 미리 알아서 예방한다면 좋은 일이지만,
미래가 정해져 있고, 그것을 전혀 예방할 수 없다면,
그 불행을 피할 수 없다면,
미리 안다는 것 자체가 더 고통스럽고 불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해도 집행 날짜는 정해지지 않습니다.
날짜가 정해져도 그 날짜를 미리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형수들은 사형 당하는 날까지 자기 사형 날짜를 모릅니다.
만일에 날짜를 미리 알려준다면
아마도 그 날까지 못 기다리고 자살해버릴지도 모릅니다.
사형이 확정되었다고 해도
만에 하나 감형되어서 무기징역으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희망이 없는 삶은 죽음입니다.
사람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당신은 얼마 못살 것이다.” 라고 직접 이야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는 가족한테는 하지만
환자 본인에게는 잘 안 해줍니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후의 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심판 날짜가 정해져 있고,
인류 전체가 다 멸망해버리는 그런 심판이라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도 그 날짜를 모르고,
누구든지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
바로 그것이 우리가 최후의 심판을 두려워하면서도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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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들입니다.
모두 다 언젠가는, 틀림없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의식을 하지 않고 다들 태평스럽게 살고 있는 것은
그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날을 알면 못삽니다.
죽을 날을 모르니까 살고 있긴 한데,
그래도 완전히 무시하면서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내일’이 당신의 ‘오늘’이다.”
옛날 어느 묘비에 적혀 있던 말이라고 하더군요.
라틴어 격언에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 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죽을 날을 모르는 것과
인류의 종말이 언제인지 모르는 것은 같은 이야기입니다.
‘모르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다.’ 라는 말과 같습니다.
아무도 죽을 날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의사가 시한부 생명이라고 선고해도 안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선시대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장면인데,
사약을 먹기 직전에 사면을 받아서 극적으로 살아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의 죽을 날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인류의 종말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을 수 있도록
시간 여유를 주고, 희망을 주는 것.
성경의 예언서를 보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회개하라고 촉구하는 내용들입니다.
단순히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예언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다면 망할 것이라는 조건부 예언들입니다.
묵시록도 처벌과 멸망의 위협을 적은 책이 아니라
믿음과 희망을 적은 책입니다.
내일의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은 회개의 날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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