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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중제34주간월요일(091123.월)

도구 Ludovicus 2009. 11. 23. 07:48

<연중 제34주간 월요일>(2009. 11. 23. 월)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3-4)

 

<봉헌에 관한 오해들>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십니다.

우리에게 그 여인을 본받으라고 하신 말씀이겠지요.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해 오해하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 번째 오해와 착각은 하느님과 교회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만이 하느님께서 계신 곳으로 생각하는 착각입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 다 바쳐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내는 것은 하느님께 바치는 것 중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은 복음말씀의 과부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 직장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 학교생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중에서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성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항상 신자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서, 며느리가 하루 종일 성당에서 지내면서

집에 혼자 있는 시어머니를 방치하는 것을 칭찬해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효도를 잘하는 것도 신앙생활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전례행사, 봉사활동, 신심단체 활동...

모든 성당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긴 하지만

마치 집에서 완전히 가출한 것 같은 모습이 되면 곤란합니다.

 

가정도 하나의 성전이고 교회입니다. 가정 일에도 성실해야 합니다.

 

신자들이 교회 일 때문에 직장 일을 소홀히 해서 직장에서 미운 털이 박히고,

결국에는 쫓겨난다면? 그건 교회에도 큰 손해가 되는 일입니다.

 

설마 누가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겠느냐고요?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아도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학생들이 너무 신앙생활을 안 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너무 성당에서 지내면서 공부를 안 하는 학생들도 실제로 있습니다.

 

직장도, 학교도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서 삶을 봉헌하는 공간입니다.

신부, 수녀가 아니라면 성당에서만 지낼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사는 것도 하느님을 위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재물과 시간을 몽땅 다 ‘교회’에 바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가정생활에 충실한 것도 하느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성실한 직장인으로 인정받는 것도 하느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정말 하느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신앙인이라면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을 전부 다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가끔 본당신부나 본당수녀가

신자들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말을 듣는 때가 있습니다.

집에서도 할 일이 있고, 직장 일도 바쁘고, 학교 일도 바쁜데,

자꾸 성당에 붙잡아두려고만 하고

바빠서 가야겠다고 하면 불성실한 신자 취급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부, 수녀가 잘못하는 것입니다.

성직자, 수도자에게는 성당 일이 삶의 전부이지만

그것을 신자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신자들은 세속에 몸을 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속 일을 완전히 무시하려면 출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라

세속을 하느님 나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두 번째 오해와 착각은 ‘전부 다’ 라는 말에 대한 것입니다.

‘전부 다’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봉헌의 기본 정신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가진 것을 그냥 한 번에 다 바쳐야 합니까?

식구들이 평생 먹고 살 생활비를 한 번에 다 교회에 바쳐야 합니까?

 

교회에 헌금을 바쳤더니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식구들이 모두 굶어야 하고, 전기도 끊어지고, 수도도 끊어지고...

그건 제 정신이 아닌 것이지요.

 

누가 그걸 칭찬하겠습니까?

만일에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백퍼센트 사이비 종교입니다.

 

‘전부 다’ 라는 말은 ‘낼 수 있는’ 돈의 전부를 가리킵니다.

 

현실적으로 해야 할 일을 다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등록금도 내야하고, 전기세도 내야하고, 보험료도 내야하고...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그것이 현실입니다.

 

수입의 십분의 일을 내든 십분의 구를 내든 전부 다 내든

낼 수 있는 상황에서 내는 것이 진짜 봉헌입니다.

 

내일 죽을 것처럼 내일 이후의 삶을 포기하면서 오늘 전부 다 바치고,

그래서 진짜로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면

내일부터 먹고사는 것은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주신다고요? 교회가 책임지면 된다고요?

하느님께서 우리 인생을 알아서 보살펴주시기는 하지만

그런 멍청한 사이비 신앙생활까지 보살펴주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건전한 상식으로 건전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자기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서 그 책임을 하느님께 떠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 오해와 착각은 하느님께 무엇이든 다 바치면 좋다는 생각입니다.

 

전에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한다고 말했던 정신 나간 시장이 있었지요.

‘서울특별시’가 자기 개인 것입니까?

왜 누구 마음대로 자기가 봉헌합니까?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봉헌한다면 그건 그냥 ‘도둑질’입니다.

 

전에 어떤 교구에서 성지 개발 공사를 하다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적지를 훼손해서 말썽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위한 일이라는 명목으로 아무 일이나 할 수는 없습니다.

가끔 생기는 일인데

교회가 부동산에 관한 법률이나 재산 등기에 관한 법률을 어길 때가 있습니다.

 

정말 하느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욕먹을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 것이나 다 바친다고 봉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것을 봉헌해야 합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마태 23,23)

 

예수님의 경고는 오늘날의 교회와 신앙인들에게도 해당됩니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진짜 봉헌입니다.

 

왜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고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는지,

오늘날의 우리도 항상 묵상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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