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인 대축일>(2009. 11. 1. 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중학생 시절, 어느 날 영어 수업시간에 want 라는 단어를 공부하는데,
영어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그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보라고 시켰습니다.
그리고 차례로 한 사람씩 그것을 말하게 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비행기, 자동차, 집... 거창한 것을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영어 선생님은 잘 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 저는, "나는 한 권의 책을 원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생님...
비웃는 표정을 지으면서,
"애개... 겨우 책 한 권? 비행기, 자동차가 아니고?"
그 표정이 너무나도 노골적이었습니다.
사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표정과 그 말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사실 그 시절, 저는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책을 구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너무나도 가난했기 때문에...
책을 살 돈도 없었고,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이라는 것도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학교에도 도서관이 없었지요.
그래서 책 한 권을 원한 것은 진심이었습니다.
자동차, 비행기 따위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어떻든... 중학생이 책 한 권을 원한다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비웃었어야 했나?
소위 선생님이라는 자가...
아, 그 영어 선생님은 아주 예쁜 처녀 선생님이었는데...
그날 이후, 저는 그 예쁜 선생님이 싫어졌습니다.
말하자면 정떨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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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행복의 기준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입니다.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어떤 사람들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한다고 할 것입니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 라고도 할 것이고...
강론을 준비하면서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라는 말만 생각했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한가?
가난하지만 행복한가?
예수님은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셨을까?
지금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을까?
앞에 '마음이' 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예수님께서 '지금 가난하지만 나중에는 행복하게 될 것이다,'
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라면,
그건 지금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가난하더라도 참고 견뎌라?
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지금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라고.
왜냐면... 하느님으로 그 빈 자리를 채울 수 있으니까.
'지금 슬퍼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왜냐면... 하느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으니까.
믿음 없는 사람들은 비웃을 것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개 풀 뜯어먹는 소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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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하다, 라는 번역은 부정확한 번역입니다.
제대로 번역하면, '영적으로 가난하다.' 라고 해야 합니다.
마음은 가난한데 실제로는 가난하지 않다면 (그렇게 되기는 어렵지만),
그건 영적으로도, 실제로도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가난하긴 한데 돈에 집착한다면
그것 역시 영적으로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것은 돈에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실제로도 가난한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부자라는 사실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닌데,
낙타와 바늘귀의 비유에서처럼
재산이 많을수록 하느님이 들어설 자리가 줄어들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부자들은 불행한 것입니다.
재산이 많아도 그 재산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가난한 것이 아닌가? 라고 질문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가난'에 대해서만 말씀하셨지,
실제 가난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라고 따질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영적으로 가난해지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아주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낙타는 바늘구멍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낙타와 바늘구멍 이야기를 하신 것은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그 재산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
즉 재산이 많으면서도 영적으로 가난해지는 사람은 없다는 것.
예수님은 '그런 사람은 없다.' 라는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의 시대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자본주의 시대에 영적으로 청빈한 사람이 부자로 살기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떻든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이 그 빈 자리를 채워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 예수님 말씀입니다.
만일에 그 빈 자리를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운다면?
그건 참 행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 뒤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독재는 했지만 돈 문제만큼은 깨끗했다.
권력 욕심은 있었지만 돈 욕심은 없었다고...
그런 말은 하나마나입니다.
돈 욕심 대신에 권력 욕심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 장기집권, 독재를 했다는 것,
차라리 돈 욕심 내더라도 권력 욕심을 안 냈더라면... 그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느님으로 빈 자리를 채우려면 모든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돈 욕심 외에도, 권력욕도, 명예욕도, 성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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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팔단 끝부분의 '나 때문에' 라는 말씀은
여덟 가지 행복에 모두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나 때문에 가난하고,
나 때문에 슬퍼하고,
나 때문에 온유하고,
나 때문에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고,
나 때문에 자비롭고,
나 때문에 마음이 깨끗하고,
나 때문에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진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른 어떤 이유가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이어야 합니다.
가난도, 슬픔도, 온유함도, 자비도, 평화도...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저는 예수님 때문에 신부로 살고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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