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간 토요일>(2009. 10. 31. 토)
<겸손>
(루카복음 14,8-10)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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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사람이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 말씀대로 스스로 끝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초대한 이가 와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그는 다른 사람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식하면서 윗자리로 올라갔습니다.
그 사람이 다시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 말씀대로 또다시 끝자리로 가서 앉았습니다.
그랬더니 초대한 이가 와서 짜증을 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왜 항상 자기 자리도 못찾는가?"
그때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 사람은 일부러 겸손한 척 하느라고 그런 거야. 위선자..."
그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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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떤 사람이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 말씀대로 스스로 끝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앉긴 앉았는데, 주인이 와서 윗자리로 가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잔치가 다 끝날 때까지도,
주인이 와서 윗자리로 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어떤 사람이 교만한 모습으로 윗자리에 가서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인은 그 사람도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처음에 자신이 알아서 스스로 끝자리에 앉았던 그 사람은
잔치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기분이 몹시 상해서 잔치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이 집에 다시 오나 봐라. 예수님 말씀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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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말씀을 처세술로 생각하면 큰 잘못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도 복잡하고, 인간 세상도 복잡합니다.
윗자리로 옮겨 앉으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하면서 끝자리에 앉는다면,
그건 분명 거짓 겸손입니다.
그건 분명 위선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그런 거짓 겸손을 너무나도 자주 목격합니다.
진짜 겸손은... 자기 자리를 정확히 찾아서 앉는 것입니다.
자기 자리가 어디인지, 자신의 서열이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고요?
실제 상황에서는 그런 일은 별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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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혼인 잔치는 인간 세상의 잔치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혼인 잔치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끝자리에 앉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는 말씀이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거짓 겸손은 통하지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루카 5,8)
베드로의 말은, 자기가 진짜로 죄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짓으로 겸손한 척 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적에 압도되어서 자기도 모르게 엎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능을 보자 자신의 비천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겸손입니다.
다윗이 죄를 지었을 때 예언자가 찾아와서 비난하자,
다윗은 즉시 무릎을 꿇고 "내가 죄를 지었소." 하고 고백합니다.
그 경우에는 진짜로 죄를 지은 상황이고, 자기 죄를 인정하는 태도였습니다.
그것이 진짜 겸손입니다.
겸손은... 하느님 앞에서 보잘것없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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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비굴함은 구분해야 합니다.
입만 열면 자기는 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는 죄가 너무 많아서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거짓 겸손입니다.
진짜로 겸손한 사람은
"나는 죄가 많아서 천국에 못 간다." 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말없이 회개를 할 뿐입니다.
천국에 가고 못 가고는 하느님께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간다, 못 간다, 말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또 죄가 많다면 회개를 해야지,
회개의 노력은 하지도 않고서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듯이 말하는 것은...
겸손한 척 하는 위선자의 행동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
저는 지금까지 신부로 살면서,
'죄가 없으니 나는 천국에 갈 수 있다.'
라고 자기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만난 일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위선자다, 교만하다, 라는 비난을 듣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그런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생각합니다. 나는 정말 죄가 없다, 라고.
그 사람들의 마음속을 어떻게 아냐고요?
신부들은 압니다.
고해성사와 면담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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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은 자기 자리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앉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기가 할 일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말단 실무자가 최고 결정권자의 일을 하려고 나서는 것은
분명 월권이고 교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최고 결정권자가 말단 실무자의 일을 맡아서 하거나 참견한다면?
그걸 겸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일선 본당 신부들이 할 일과 교구장이 할 일은 구분되어 있습니다.
본당 신부들이 교구장의 일에 대해서 월권이 되는 행동을 할 수 없듯이
교구장도 일선 본당 신부의 일은 신부들에게 맡겨두어야 합니다.
신부들이 알아서 할 일까지 교구장이 다 해버리거나 일일이 참견하면
신자들 눈에는 그것이 겸손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신부들의 존재 의미가 없어지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군대생활 시절에 직접 목격한 일입니다.
병장이었을 때, 어떤 일이 있어서 육군본부에 간 적이 있었는데,
육군 대령이 당시 방위병들로 보이는 사병들을 기합주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속으로 많이 웃기도 했습니다.
육군본부에서는 방위병들 기합은 육군 대령이 주는구나, 라고...
전방에서는 육군 대령이 사병들을 직접 기합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중간에 있는 장교들의 입장이 대단히 곤란하게 됩니다.
위계질서란, 밑에서도 지켜야 하지만, 위에서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사도단의 우두머리로 임명하신 것,
유다에게 돈 관리를 맡기신 것,
.... 공동체를 위해 각자 직분과 서열을 정하신 것은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척 하느라고 자기 자리를 벗어나는 사람들의 행동은 곧 무질서입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무질서는... 곧 혼란으로 이어지고... 그걸 미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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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심과 자존심과 자긍심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겸손과 거짓겸손과 비굴함을 구분해야 하는 것처럼)
자리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자기가 하는 일에 긍지와 보람을 느끼는 것,
그것을 자만심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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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 자만, 위선, 자존심, 자긍심, 겸손, 거짓 겸손, 비굴....
인간 세상은 복잡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도 복잡합니다.
교만인지, 긍지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고,
겸손인지 거짓 겸손인지 비굴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잘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런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것 같습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마태 5,37)
다시 말해서, 말뿐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도
할 것은 분명히 하되,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겸손을 실천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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