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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중제30주간월요일(091026.월)

도구 Ludovicus 2009. 10. 26. 08:52

<연중 제30주간 월요일>(2009. 10. 26. 월)

 

<악법은 절대로... 절대로 법이 아닙니다.>

 

법이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법이란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법이 사람을 죽인다면... 결코 법일 수 없습니다.

법이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한다면... 결코 법일 수 없습니다.

악법은 절대로 법이 아닙니다.

 

그런 법은 없애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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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계명과 율법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었고,

계명과 율법 때문에 숨이 막혀서 살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율법을 자꾸 어기셨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안식일 율법을 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겉만 씻지 말고 속을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정결례에 관한 율법을 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너무나도 사랑하셨습니다.

죄인이든, 병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그래서 이방인, 창녀, 세리, 나병환자들과 일부러 접촉했습니다.

율법으로 금지된 접촉과 교제를 일부러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죽이는 율법들을 사실상 모두 폐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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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율법 대신에 새로운 법을 주셨습니다.

바로 '사랑의 법'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

 

구약의 율법은 사람을 숨막혀 죽게 만들었지만,

예수님의 사랑의 법은 사람을 살려내는 생명의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약 율법들을 폐지하셨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원래의 정신을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율법의 원래 정신... '사랑'입니다.

 

구약 율법의 '약자 보호 규정' 등을 비롯해서 여러 규정들을 자세하게 읽어보면

'사랑'이 율법의 근본정신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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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의하면,

남의 땅에 무허가 건물을 지어놓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명령할 수도 있고, 안 떠나면 강제로 철거할 수도 있고,

그리고 보상금 같은 것은 줄 필요도 없습니다.

법에 의하면... 강제 철거는 당연한 법 집행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법이 먼저입니까? 사람이 먼저입니까?

 

불법을 묵인하면 사회 질서가 흔들리고 나라의 근본이 흔들린다고요?

불법도 불법 나름입니다.

 

잘사는 특권층의 병역 비리 같은 것은 제대로 처벌 못하면서,

고위층과 부유층의 뇌물, 탈세, 부정부패, 비리 같은 것은 모르는 척 하면서,

국무총리와 장관들의 주민등록법 위반은 관행이라고 우기면서...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의 보잘것없는 판자집은 그렇게 다 때려부숴야 합니까?

 

서민들에게 들이대는 법의 잣대 그대로 장관들에게도 적용한다면...

위장전입 사실이 있는 자들은 모두 파면시켜야 합니다.

자식들 군대 안 보내려고 온갖 수작을 한 자들도 모두 구속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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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마저도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정의구현 사제단이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진짜로 목숨까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상류층, 부유층만을 위한 정부라면...

성경의 헤로데 정권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법대로 할 뿐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성경의 바리사이, 율법학자들과 똑같은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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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 문제를 생각해보면,

실정법보다는 그 뒤에 숨어있는 경제논리가 더 악마적입니다.

율법주의만큼이나 자본주의가 더 악마적입니다.

법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헌법보다 더 위에 있는 법,

국민의 주권보다 더 위에 있는 주권,

그건 바로 '돈'.

 

자본주의, 시장논리... 어쩌고 저쩌고...

그게 법보다 더 무서운 '법'입니다.

 

돈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돈이 사람들 정신을 지배하고,

돈이 사람들 인생을 지배하고...

 

돈 많이 벌고, 부유하게 잘사는 것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은 자꾸 늘어나고,

영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그러니 세상이 자꾸만 천박해지기만 합니다.

 

하느님은 죽은 다음에나 찾기로 하고

살아서는 그저 돈이나 많이 벌고, 돈 잘 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그게 바로 현대판 바리사이들입니다.

 

성경의 바리사이들은 자기들의 신념 때문에 그렇게 변질되었지만

현대판 바리사이들은 자기 돈만 생각하는 이기심과 욕심으로만 살아갑니다.

 

공부를 하는 것도 돈을 벌기 위한 것이고,

성당에 다니는 것도 돈을 더 잘 벌기 위한 것이고,

투표도 누가 더 돈을 잘 벌게 해줄 것인가? 의 기준으로 하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더 위대한 사람이라고 자녀들을 가르치고,

돈,

돈,

돈....

 

어디 그게 속세만의 모습입니까?

 

신자들에게서 돈을 잘 걷어서 교구에 잘 바치는 신부가 유능한 신부로 평가되고,

시간 날때마다 여행 다니면서 돈 잘 쓰는 신부를 멋있는 신부라고 하고,

그리고... 기타 등등...

 

(분명히 서품식 때 가난하게 살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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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법이 주인이어서는 안 됩니다.

돈이 주인이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만이 사람 사는 세상의 주인이어야 합니다.

 

적어도 신앙인들의 공동체만이라도 그 정신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성당에서는 법 때문에, 돈 때문에 숨막히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속세에서 악법과 돈이라는 사탄에게 쫓겨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적어도 성당에서는 피신처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속세에서 갈 곳 없는 피신처로서의 성당,

그 성당은 건물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그 피신처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피신처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야 하고,

돈의 마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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