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간 화요일>(2009. 10. 27. 화)
<겨자씨 같은... , 누룩 같은...>
옛날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운전할 때마다 욕을 너무 많이 해서 스트레스가 잔뜩 쌓였던 어떤 부인,
결국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차를 몰고 도로에 들어서는 순간,
어떤 차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급정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 순간적으로, "에잇, 썅, XXX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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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으로,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욕설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화살기도.
화살처럼 순간적으로, 짧게 드리는 기도라고 해서 화살기도라고 한다던데,
날마다 화살기도를 자주 바치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욕설이 쏟아져 나오는 입은 쓰레기 매립장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흘러나오는 입은 천국의 꽃밭입니다.
거창한 다른 기도들과 비교할 때,
화살기도는 '겨자씨' 같은 작은 기도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기도가 나를 성장시킵니다.
신앙과 삶을 성장시킵니다.
그리고 그 작은 기도가 큰 기도의 바탕이 됩니다.
평소에는 기도를 하지 않다가
갑자기 백일기도, 천일기도 바친다고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화살기도의 내용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그냥 자신의 느낌, 감정을 표현해도 좋고,
감사합니다, 라고 한 마디 해도 좋고,
도와주십시오, 라고 한 마디 해도 좋습니다.
전에 어떤 분의 차를 타게 되었는데,
시동을 걸기 전에 성호를 긋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시동을 끄기 전에 다시 성호를 그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무슨 기도를 바쳤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는 운전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분의 운전 자체가 저에게는 기도로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화살기도를 자주 바칩니다.
그냥 짧게 말씀을 드린다고나 할까...
아니면, 바로 옆에 계신 하느님과 대화를 나눈다고나 할까...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말 좋은 기도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화살기도는 겨자씨처럼 작고, 짧고 간단한 기도이지만,
짧은 만큼 빠르고,
또, 꾸밈이 없기 때문에 더 강렬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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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라면 성가를 자주 불러야 합니다.
만일에 신자가 유행가는 잘 알면서 성가를 모른다면 그건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행가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중가요도 좋은 음악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가는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성가란 기도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성가란 노래로 바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라면 당연히 성가를 잘 알아야 하고, 잘 불러야 합니다.
평소에 성가를 흥얼거릴 정도가 된다면 아주 좋은 일입니다.
성가는 신자들의 삶에서 누룩 역할을 합니다.
날마다 자주 성가를 부르면 분명 생활에 변화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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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병원의 어머니를 뵙고 본당으로 되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운전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성가 151번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가 너무 슬펐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떠나실것이라고 예감했습니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울면서도 속으로는 계속 성가 151번을 불렀습니다.
그때 그 노래는 그대로 기도가 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장례식이 모두 끝난 뒤에 한동안 제가 자주 불렀던 성가는 58번이었습니다.
그 노래의 중간 부분이 너무 슬퍼서 저절로 울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혼자서 오르간을 치면서 부르던 성가 58번...
저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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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어떤 일이 있어서 밤에 혼자서 고속도로를 운전하며 가던 날,
오가는 차도 없고, 온 세상이 어둠에 잠겨 있고,
마치 혼자서 밤바다를 떠 가는 조각배 같은 적막감을 느꼈습니다.
그때 떠오른 성가가 61번이었습니다.
성가 61번을 부르면서
슬픈 감정이 아니라, 영적인 감동에 젖어서 저절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성령 세미나 강의를 하러 갈 때마다 차 속에서 불렀던 성가는
436번이었습니다.
그 성가를 부르면서 힘을 얻고, 그 힘으로 강의를 했습니다.
언젠가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특강을 하던 날,
강의 중간에 성가 517번을 함께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성가를 부르다가 차츰, 재소자들이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교도소 사목을 하던 시절,
재소자들을 웃기는 것은 쉬웠는데, 울리는 것은 아주 어려웠습니다.
강론이나 강의로 재소자들을 웃긴 적은 많아도 울린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가 하나로 그들을 울게 만들었습니다.
성가를 부르면서 운다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우는 것입니다.
성가를 자주, 아니, 항상 부른다는 것은
항상 기도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성가는 분명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누룩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부터 기도의 힘으로 성장하고,
성가의 힘으로 변화된다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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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속세와 분리되어 떨어져 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속세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속세에 묻혀서, 속세의 영향력에 시들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 속세라는 것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로.
우리 자신이 겨자씨가 되어야 하고,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성장해야 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화살기도와 성가를 추천합니다.
더 좋은 방법을 추천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그 방법이 가장 쉽고, 가장 좋은 방법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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