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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중제28주일(091011)

도구 Ludovicus 2009. 10. 11. 08:06

<연중 제28주일>(2009. 10. 11)

 

<낙타와 바늘 구멍>

 

전에 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가 처음으로 시행될 때의 일입니다.

그때 전국의 검사장들의 재산도 공개되었는데,

서울의 어떤 지검장의 재산이 가장 적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가 가난했던 것은 아니었고, 다른 검사장들보다는 재산이 적었다는 정도...

어떻든 청렴결백한 것으로 보이기는 했습니다.

 

기자들이 그 지검장을 찾아갔습니다.

찾아간 기자들에게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난 70년대에,

 10만여 평의 국유지를 헐값에 불하해 주겠다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돈이 없어 거절했었다.

 나중에 그 땅의 가격이 엄청나게 오르는 것을 보고 평소에 아쉬워했었는데,

 만일에 당시에 그 땅을 불하 받았더라면... 지금 큰일날 뻔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만사 새옹지마'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가 했다는 말, ‘아쉬워했다.’는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것은 돈이 있었다면 그 땅을 불하 받았을 것이라는 뜻이고,

그렇다면 재산이 많은 다른 검사장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는 진짜로 청렴결백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 라고 하셨습니다.

재산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마음으로 가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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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의 복음 말씀은 '낙타와 바늘 구멍의 비유'로 유명한 내용입니다.

낙타는 우리 자신이고, 바늘 구멍은 하느님 나라의 문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낙타가 바늘 구멍보다 더 작아지든가,

바늘 구멍이 낙타보다 더 커지든가...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 자신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든가,

아니면 아무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하느님 나라의 문이 넓어지든가...

 

그런데 아무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하느님 나라의 문이 넓어진다면,

그건 분명히 하느님 나라가 아닐 것입니다.

 

개나 소나 다 운전면허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게 어디 운전면허이겠습니까?

운전을 할 수 있는 실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주어야

그걸 면허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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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이 말씀은,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못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왜?

하느님 나라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들어가는 곳이니까...

 

여기서 말하는 '부자'는 단순히 재산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을 하느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재산이 많고 적고는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가 중요하게 됩니다.

 

그게 어디 재산만의 문제이겠습니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신앙인이라면

모두 다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 질문의 첫 대답이 '하느님'이 아니라면,

일단은 자격 상실입니다.

 

학생들에게는 눈앞에 다가온 시험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고,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시합이,

사업가에게는 회사의 일이,

정치인들에게는 선거가.....

 

결혼식이,

수술의 성공 여부가,

복권의 당첨 여부가.... 기타 등등....

 

어떤 사람은 떠나려고 하는 애인 때문에 하느님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집 나간 자식 때문에 하느님 생각을 할 수가 없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어휴.... 이렇게 죽 늘어놓기보다 그냥 소설을 쓰고 말지...)

인생살이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복음 말씀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라는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삶은 그런 고민을 할 겨를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할 일이 너무 많아서, 고민할 일이 너무 많아서,

당장 처리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제는 나중으로 미룰 수밖에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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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전에 있었던 어떤 본당에서 겪은 일입니다.

사순 시기를 맞아서 구역미사와 구역의 판공성사와 가정방문을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정말 바쁜 농번기와 겹쳤습니다.

 

우선 읍내에 있는 구역은 예정대로 했습니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신자가 많은 구역에서 건의가 들어왔습니다.

나중으로 미루자고...

(그 건의를 받아들여서 연기했는데... 결국엔 못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농사를 짓는 신자가 더 많은 다른 구역에 미리 물어보았습니다.

그 구역도 가정방문과 구역미사를 연기하기를 바라느냐고...

 

저는 당연히 연기하자고 대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뜻밖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신부님께서 가정방문을 오시면... 저희는 덕분에 하루를 쉴 수 있어서 좋지요."

"연기하지 말고 그냥 예정대로 하시지요."

 

저는 예정대로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신자들만 하루를 쉰 것이 아니라

그 동네 모든 주민이 (신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하루를 쉬었습니다.

신자들이 일을 하지 않으니까, 동네 전체가 일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정말 미안하기도 하고... 정말 기쁘기도 하고...

 

직장인이 직장을 하루 쉬는 것과

농사를 짓는 이들이 농번기 때 하루를 쉬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데 그 구역 신자들은 하느님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그런 사정을 본당신부가 미리 잘 알아서 조정했어야 합니다.

농촌 사정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그런데도 그 구역의 신자들은 아무 말없이 순종했습니다.

왜냐면... 사순시기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어느 구역이 더 농사를 잘 지었을까요?)

 

옛날 이야기라면, 하느님을 선택한 구역의 농사가 더 잘 되었다고 하겠지만...

어떻든... 가정방문을 연기해달라고 했던 구역의 농사가 더 잘 된 것도 아니고,

가정방문 때문에 하루를 쉰 구역이 농사를 망친 것도 아닙니다.

 

양쪽 구역 다 농사가  잘 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추수가 끝난 뒤에 더 흐뭇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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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이는 복잡합니다.

생각할 일도 많고, 처리할 일도 많고, 고민할 일도 많고, 걱정할 일도 많고...

 

그래도 우리는 잠깐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자동차에 악셀만 있고, 브레이크가 없다면... 큰일납니다.

 

인생살이가 악셀이라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브레이크입니다.

달리기만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닙니다.

가다가 속도를 줄여야 할 때도 있고, 멈추어야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바쁘게 사는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멈추어야 할 때 멈추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 못들어가는 것입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다가 총 맞고 죽은 대통령...

아마도 두고두고 역사에 그 교훈이 남게 될 것입니다.

그냥 두 세번만 하고 물러났다면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았을 텐데...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 라고 물었을 때

첫 대답에 '하느님'이라고 대답할 수만 있다면...

다른 일로 바쁘게 살고, 고민하고 걱정할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기본 자세는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최소한 자기 목적지는 잊지 않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눈앞의 현실에만 집착하고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열심히 달리기는 하는데 목적지도 모르고 달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을 모으는 일에 열중하면서도 왜 모으는지를 잊고 있다면,

아니, 아예 목적 자체가 없다면... 그는 돈의 노예일 뿐입니다.

돈에 관한 문제 말고도.... 세상 이치가 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목적지를 바로 알고 그곳으로 향해 가는 생활입니다.

 

신앙인들도 세상살이를 하긴 해야 합니다.

돈도 벌어야 하고, 사업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자녀 교육도 시켜야 하고, 건강에 신경 써야 하고... 기타 등등...

하긴 하는데... 최종 목적지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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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 바늘 구멍을 통과한 낙타들이 않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성인 성녀라고 부릅니다.

 

또 비록 성인 명단에는 오르지 못했더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그 바늘 구멍을 통과했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산다는 마음가짐만 갖추고 있다면...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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