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간 수요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2009. 9. 16. 수)
<형식과 본질>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만 보고, 판단하면서
본질적인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생활 중 일부만 보고서 예수님은 그런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이 무엇인지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만 보고, 자기 생각대로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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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들은 겉으로는 잘 생겼고, 멋있습니다.
말도 잘합니다.
뭔가 있어 보이는 모습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겉모습에 잘 속게 됩니다.
사람들을 진리와 진실로 인도하는 예언자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때가 많습니다.
듣기 싫어하는 말도 많이 합니다.
세속적인 유행을 따르지 않습니다.
예언자들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 주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신념대로만 행동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는 일이 많습니다.
사이비 종교는 겉모습은 그럴듯합니다.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 있는 모든 장치를 다 동원합니다.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싫어하는 것은 말하지 않고 시키지도 않습니다.
사이비 종교의 가르침은 듣기에 참 편하고 즐거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사이비 종교에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나 참 종교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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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이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고 작정했다면
아마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지하 감방에서 목이 잘렸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어서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예수님 당대에 메시아라고 자칭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던 사람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는 모여들었던 군중은 흩어졌고,
그들의 이름도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대중의 인기는 바람 같은 것입니다.
한 번 흩어지면 자취도 찾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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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에 신부가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고 노력한다면
그건 어리석은 정도를 넘어서 아주 불쌍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 정도가 지나치면 사기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책 몇 권을 쓰고, 강의 몇 번을 하다가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베스트 셀러 작가라고 유명해지고,
명 강사라고 유명해질 때,
그때 성직자, 수도자들은 긴장해야 합니다.
'세속'이라는 이름의 사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있습니다.
대중의 비위나 맞추면 금방 사이비 종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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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방향을 조금 바꿔서,
우리 교회 내부의 걱정스러운 점들을 생각해봅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청소년, 청년층은 거의 대부분 냉담 상태에 있습니다.
비율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건 그들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입시제도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입시제도를 무시할 수 없는 부모들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부모들 자신은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입시를 앞둔 자녀가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것을 막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얼마든지 성당에 다닐 수 있다고? 거짓말입니다.
입시를 이유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했던 청소년이
다시 성당에 돌아오는 비율은 십퍼센트 정도나 될까?
부모들이 자녀를 냉담자로 대량생산합니다.
그건 부모들의 신앙생활이 형식적이라는 증거입니다.
겉으로만 열심하고,
본질적으로는 열심하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이 냉담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입시제도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항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왜 교회에 항의합니까?
정부와 교육당국에 입시제도의 문제점들을 항의해야지.
하긴 뭐, 좋은 대학 들어가서 출세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으로는
성당보다는 학교가 더 중요할 것이고...
(입시제도의 문제보다는 그 욕망이 더 큰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본질적인 이유는 잊어버리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형식을 유지하는 것에만 집착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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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의 성서 운동 프로그램들의 문제도 생각해봅니다.
정말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습니다.
이젠 이름도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 그 내용은 비슷합니다.
성서 한 대목을 읽고 와서 모임을 갖고
모임에서 말씀 나누기, 생활 나누기를 하고, 기도를 하고... 흩어지고...
그런 정도의 형식인데,
이런 저런 이름의 프로그램들이 여기저기서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지금도 프로그램이라는 형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읽는 것 자체입니다.
성경을 읽도록 인도하지는 못하고, 사람들을 모으는 일에 집중하는 것은...
형식만 중시하고 본질은 잊어버리는 모습입니다.
어떤 이는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지도 않고서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의 전 과정을 다 끝까지 마쳤다고 잘난체 하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지도 않고서 성서 프로그램의 과정을 다 마쳤다고?
수료증을 받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입니까?
예비신자 교리도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소공동체 운동도 그런 식입니다.
도시와 시골의 생활이 다르고, 서울과 지방의 여건이 다릅니다.
직장인과 농부의 생활이 다르고, 노인과 젊은이의 생활이 다릅니다.
어떤 한 가지 프로그램이 서울에서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그대로 베껴서 시골 본당에 강요하고...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먼 나라 외국에서 성공했다는 프로그램을 들여와서
겨우 몇 군데 본당에서 테스트 해보고
그리고는 전체 본당에게 다 그것을 따라 하라고 하는 경우.
제가 사제생활을 그렇게 길게 한 것도 아닌데,
처음 신부가 되던 그 시절에 시행되고 있던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프로그램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중간에 흐지부지 되거나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되거나...
거의 다 유통 기한이 짧습니다.
교구에서 만들고 보급하는 프로그램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은
본당신부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냥 따라갑니다.
어떤 본당 신부님들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저도 제가 있던 본당에서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자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한 본당에서 큰 성공을 거둔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그 본당의 일이고, 다른 본당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이라는 형식이 아니고, 그 안에 담긴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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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본당 신부로 살면서 가장 답답했던 건,
왜 그렇게 '말씀 나누기' 라는 방식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성서 모임에서도, 구역 모임에서도, 예비신자 교리 시간에도...
그 외에 다른 프로그램들에서도...
왜 그렇게 '말씀 나누기' 라는 형식을 꼭 집어넣어서
참석자들에게 말하기를 강요하는 것인지...
솔직히 신부인 저도...
말씀 나누기 순서에서 말하기 싫을 때가 많습니다.
그냥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싶을 때 말하기를 강요받으면,
마음에 없는 말을 하게 되고, 어디서 주워들은 멋있는 말을 빌려오기도 합니다.
자신의 묵상 내용을 그렇게 꼭 공개적으로 말해야 하는 것인지...
왜 그걸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집착하는지...
말 안 하고 그냥 지나가면 안 되는 것입니까?
형식에 집착하고 본질은 뒤로 밀리는 모습... 숨막히기만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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