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일>(2009. 9. 13.)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부제들이 사제 서품을 앞두고 준비할 것이 많은데,
그중에 표어를 정하는 일이 있습니다.
사제로 살면서 일생 동안의 좌우명으로 삼을 표어를 정하는 일입니다.
대개는 성경에서 한 구절 골라서 좌우명으로 삼고,
그것을 상본에 인쇄해서 서품식날과 첫미사날에 신자들에게 나눠줍니다.
저는 시편 122편 1절을 골랐습니다.
"야훼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도 기뻤다." (시편 122,1 - 공동번역 성서)
성당은 만인에게 기쁨을 주는 곳이어야 하고,
우리는 성당에서 기쁨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재미가 아니라 기쁨입니다.)
저의 석사학위 논문의 제목도
"공관복음 안에 나타난 '기쁨'에 관한 연구"입니다.
그래서 저의 사제 생활의 좌우명은 '기쁨'입니다.
저 자신 스스로 기쁨 속에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신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목을 하고,
성당을 만인에게 기쁨을 주는 집으로 만들고...
그렇게 정한 것은 사실 저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최고의 기쁨을 얻었고,
그 기쁨을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거쳤던 본당의 신자들은 저를 재미없는 신부로 기억할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재능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속의 재미와는 차원이 다른
영적인 기쁨을 주는 사목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 이 블로그에 날마다 강론을 올리는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입니다.
하여간에 예수님이라는 분은
저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적인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저는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힘들 때 예수님께 기도하면 힘과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는 것은 압니다.
순수하고 참된 기쁨이 그분에게서 온다는 것은 압니다.
그것은 저의 믿음이고, 신념이고, 좌우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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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갑자기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은,
'너희는 왜 내 제자가 되어서 나를 따라다니느냐?'
라는 질문입니다.
베드로가 간단하게 한 마디로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예수님이 곧 구세주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제자가 되었고,
예수님 뒤를 따른다는 고백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배반자 유다만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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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어떤 본당에서,
어느 날 낮에 사제관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보니
어떤 아주머니가 상자에 성경, 성가, 기도서, 성모상 등을 담아들고 와서는
이제부터는 성당에 다니지 않겠다고,
그러니 그것들을 반납하려고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절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엄마로서 아들과 종교가 다르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들과 함께 절에 다니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책들과 성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 그 집에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병원에 입원하느라고 가정 방문을 못하고 말았는데,
그 뒷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자신의 종교를 그냥 여러 종교 중의 하나로만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태도입니다.
만일에, 나중에 그 아들이 다른 종교로 또 바꾼다면
아들을 따라서 종교를 바꿀 것이 뻔합니다.
그런 식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건 신앙도 무엇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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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어떤 본당에서는,
정말 열심한 어떤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날마다 매일 미사 참례를 했고, 레지오에도 가입했고,
성당의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나중에 그 할머니의 사정을 알게 되었는데...
아들이 무슨 중한 병으로 입원 중이었고,
성당에 다니면 혹시라도 아들의 병이 나을까, 라는 기대감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성당에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반 년 정도 열심했는데,
인내력이 반 년만에 바닥난 것 같습니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고 기도를 해도 아들의 병이 낫지 않는다고
거액을 들여서 굿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성당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가정 방문을 했지만, 저를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그 아들은 지금도 병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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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전주에서 보좌신부로 살 때,
어느 날 한 남자 신자가 저에게 인사를 왔습니다.
전직 국회의원이었습니다.
다시 선거에 출마하려고 한다면서 인사 드리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사무실에 알아보니,
교적이 그 본당에 있는... 분명 그 본당의 신자였습니다.
긴 세월 동안 성당에 나오지도 않다가 선거철이 되니까 나온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선거에서 떨어졌는데,
당을 잘못 선택한 탓도 있지만, 유권자들에게 전혀 인정 받지 못했습니다.
선거가 끝난 후에 그 사람을 더 이상 성당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전에 제가 주임으로 있었던 어떤 본당에서,
성당 뒷집에 살던 신자가 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당선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말리다가...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하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본당신부가 나서서 선거운동을 해줄 수는 없는 일이고,
그냥 미사후에 신자들에게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주었습니다.
선거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얻은 득표수를 본 그 신자,
성당의 신자들도 자기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는
삐져서 그 다음부터 냉담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본당을 떠난지 제법 긴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냉담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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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질문은
우리에게는, "너희는 왜 나를 믿느냐?" 라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대체 예수님을 왜 믿습니까?
성당에 왜 다닙니까?
자신이나 가족의 병을 고치려고?
선거에서 당선되려고?
주일날 따로 할 일이 없어서?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고?
죽어서 천당 가려고?
영혼의 구원을 얻으려고?
이유도 각각이고, 목적도 각각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예수님께 무엇을 바라는가?' 입니다.
기도해서 병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병이 나은 다음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선거에서 당선될 수도 있습니다. 당선된 다음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일날 취미 삼아서 성당에 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럼, 더 좋은 취미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음의 평화를 얻은 다음에는?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은 죽은 다음의 일이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혼의 구원'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도소 재소자들 경우에 신자가 되면 모범수로 인정 받는 것이 유리해지니까,
그래서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진짜로 믿음을 갖게 되기도 하고,
진실한 회개를 할 수도 있고, 정말로 크게 변화되기도 합니다.
처음 동기야 어찌 되었든,
그런 재소자들이 바로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모범수가 되고 싶어서 신자가 된 경우에는
출소한 후에는 그냥 성당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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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일회용 진통제가 아닙니다.
신종 플루 백신을 성당에서 구할 수는 없습니다.
성당은 정치판이 아닙니다.
자기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또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고
자기 인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병이 낫지 않아도, 선거에서 떨어져도,
그래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진짜 믿음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차원이 다른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현세에서 맛보는 잠깐의 행복과 즐거움은
성당이 아니라도, 예수님이 아니라도,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기쁨과 행복을 구해야 합니다.
살아서 이미 천당에서 사는 기쁨을 얻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내가 고난을 겪고 쓰러졌지만,
내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 믿음, 용기를 주시는 분.
현세는 고난과 슬픔에 가득찬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희망, 믿음,
그리고 그 희망과 믿음에서 오는 기쁨.
그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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