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연중 제20주간 토요일)(2009. 8. 22. 토)
<자기 자리를 지키기>
루가복음의 '돌아온 아들의 비유'에서 작은 아들이 회개를 하고 돌아올 때,
그는 '이제 아들이라고 할 자격도 없으니 하인으로나 삼아달라고 해야겠다.'
라고 혼자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하인으로 삼지 않았고, 아들로 환영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작은 아들이 정말로 회개했다면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인이 아니라 아들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 성실하게 사는 것이 곧 회개이고, 겸손입니다.
아버지는 아들로 받아들이고 아들로 사랑하는데,
당사자인 아들은 자꾸만 노예가 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것도 죄입니다.
큰 아들을 보면, 아무도 그를 하인 취급하지 않았는데도,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하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아들이 아닌 하인으로 살아왔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니 큰 아들도 회개를 해야 합니다.
하인이 아니라 아들의 위치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를 아들로 사랑했는데,
그는 자기 스스로 하인이 되어 있었고, 그것 때문에 불평만 하고 있었습니다.
----------
겸손이란 자기 자리를 제대로 알고, 자기 자리를 제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무조건 낮추기만 한다고 해서 겸손은 아닙니다.
자기 자리에 있지 않고 더 낮은 자리로 가는 것은
'돌아온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두 아들 같은 모습이 됩니다.
우리는 겸손과 비굴함을 구분해야 하고,
겸손이 지나쳐서 자기비하가 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큰 전환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전환점은 바로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을 때입니다.
주님의 기도 이전에는 우리는 하느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 이후에는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이 아니라 자녀로서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서서 바치는 것이 원칙입니다.)
서 있는 자세는 당당한 자녀의 자세이며 자유인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면 자녀답게 처신해야 합니다.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너무 비굴한 자세를 취하고 노예처럼 행동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자기비하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하느님께 죄를 짓는 일입니다.
우리는 한때 죄와 죽음의 노예였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제는 해방된 자유인이고 자녀입니다.
겸손은 노예로서의 겸손이 아니라 자녀로서의 겸손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벌레만도 못한 존재'라고 한다든지,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다고 자학한다든지,
자기는 구원 받지 못할 것이라고 포기한다든지...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로서의 겸손은... 예수님 말씀대로 어린이처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품에 안긴 어린이,
하느님께 온전히 자기 자신을 맡기고, 믿고, 의지하는 모습의 어린이.
그것이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과 노예처럼 행동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8월 22일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의 위선을 비판하시는데,
그들은 하느님 앞에서 어린이가 되지 못하고,
자기들이 무엇을 좀 안다고 잘난체 했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요구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 독립하고 싶어 하는 어른이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했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교만이 되고, 위선이 된 것입니다.
그들의 가장 큰 잘못은 하느님 앞에서 어린이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이 그런 것이라면,
사람들 사이에서의 겸손은?
역시 무조건 낮추기만 한다고 잘하는 행동은 아닙니다.
자기 자리에 맞는 겸손을 실천해야 합니다.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겸손하게 처신한다고 주례사제석을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고,
교황이 겸손하게 처신한다고 교황청을 떠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대통령이 겸손하게 행동하면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청와대는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말단 공무원에게 청와대를 맡기고 대통령이 일선 동사무소로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 직무에 충실하고, 자기 위치에 합당한 처신,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한 겸손이어야 합니다.
아주 겸손하다고 소문난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건 혹시 거짓 겸손이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너무 불편하게 만드는 지나친 겸손,
너무 과장되어 있고, 격에 맞지도 않고, ... 가식적으로 보일 때가 있는 것입니다.
겸손도 방향이 잘못되면 위선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사랑과 겸손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일은 최후의 만찬 때, 딱 한 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날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수는 없는 일인 것입니다.
교만이라는 것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더 높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비굴함이라는 것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않고
더 낮은 자리에 가 있는 것입니다.
교만도 나쁜 일이지만, 비굴도 나쁜 일입니다.
스승이나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분명해집니다.
잘난체 하는 것도 보기에 안 좋지만,
너무 비굴하게 행동하는 것은 더 안 좋게 보일 것입니다.
-----
겸손에 대해서는 그렇고...
이제 교만이라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부심 또는 긍지와 교만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버리면 안 됩니다.
선택받았다는 자부심, 하느님의 자녀라는 긍지,
그 자부심과 긍지를 바탕으로 해서 품위 있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걸 교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교만이란, 자부심이 아니라 자만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하느님보다 더 높은 자리로 가려고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위선은...
껍데기와 속이 다른 것입니다.
실제로는 교만인데, 겉으로는 긍지로 포장하는 것, 그것이 위선입니다.
실제로는 비굴함인데, 겉으로는 겸손으로 포장하는 것, 그것이 위선입니다.
속으로는 존경을 받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면서
겉으로는 겸손한 척 하는 것, 그것이 위선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냥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이지요.
진짜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겸손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냥 자기 자리만 성실하게 지킬 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가톨릭- > 강론.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연중제21주간화요일(090825.화) (0) | 2009.08.25 |
---|---|
[스크랩] 성바르톨로메오사도축일(090824.월) (0) | 2009.08.24 |
[스크랩] 성베르나르도기념일(연중제20주간목요일)(090820.목) (0) | 2009.08.20 |
[스크랩] 연중제20주간수요일(090819.수) (0) | 2009.08.19 |
[스크랩] 연중제20주간화요일(090818.화) (0) | 2009.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