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간 화요일>(2009. 8. 25. 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장사꾼들에게 꾸어 준 돈을 받아내려고 어떤 도시에 왔다가
돈을 받아내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던 돈도 다 떨어지고,
투숙하고 있던 여관에서 그만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여관 주인은 숙박비도 못받았는데 초상까지 치르게 되었다고 투덜거렸습니다.
그러자 누워서 임종을 기다리던 그 사람은
숙박비와 장례 비용까지 다 해결해주겠다고 장담하면서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신부님을 불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성당의 신부님이 연락을 받고 왔습니다.
그 신부님은 병자성사 전에 고해성사를 먼저 보라고 권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일생의 모든 죄를, 아주 작고 사소한 일까지 다 고백했습니다.
(사실은 거짓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병자성사를 받았고, 죽었습니다.
병자성사를 준 그 신부님이 장례미사도 집전했습니다.
그 신부님은 죽은 사람의 성덕과 신심을 칭찬하는 강론을 했습니다.
(사실은 그 사람을 잘 알지 못했고, 그냥 들은 고백을 근거로 추정한 강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론이 너무나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아무도 죽은 사람에 대해서 알지 못했지만,
신부님의 강론 때문에 그 사람이 정말 성인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헌금으로 여관 숙박비와 장례비용이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죽은 사람의 무덤에 가서 기도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뭔가를 체험했다고 느꼈고,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문이 점점 과장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무덤을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명, 수천 명이 몰려들다 보면
그중에 기적 비슷한 것을 체험하는 사람이 하나쯤 생길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병자들이 몰려들다 보면 그중 한 사람 정도는 우연히 병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온 나라에서 순례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 무덤은 성인이 묻힌 무덤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누구든지 그 무덤에서 기도만 하면 병이 낫는다고 사람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죽은 그 사람을 성인품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시복시성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은 죽은 그 사람은 아주 질이 나쁜 악덕 고리대금업자였습니다.
죽기 전에 고백한 것은 전부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백 내용이 아주 작고 사소한 잘못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내용이어서
그 신부님이 그 거짓 고백 내용에 감동을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교황청에서 시성식을 하거나 말거나 상관 없이
사람들은 죽은 그 사람을 성인으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려고 했는데, 좀 길어졌군요.
이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라,
'복카치오'의 소설 '데카메론'에 나오는 이야기 중의 하나로 기억합니다.
줄거리는 대충 제가 위에 적은 대로일 것입니다.
그 소설이 르네상스 최초의 근대소설이라나, 뭐라나... 뭐 그런 소설인데,
그 책에 실린 소설 백 편이 거의 전부 다 중세시대 가톨릭을 풍자하고 비웃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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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에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우리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이긴 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을 비판하는 말씀들이
사실상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라는 것.
물론 의도적으로 거짓 고백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거짓 고백을 하거나
위선적인 고백을 하고, 위선적인 회개를 할 때가 많습니다.
죄는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생각으로 지은 죄, 말로 지은 죄, 행동으로 지은 죄,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은 죄.
예수님의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은 '사랑하라.'입니다.
그렇다면 회개할 때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하는 건 '사랑의 실천'에 대해서입니다.
그 나머지 작은 실수들은 글자 그대로 작은 죄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작은 실수는 큰 죄라고 생각하고,
정말 중요한 계명은 거의 생각하지 않거나
죄가 되는 줄도 모르고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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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새 신부 때의 일입니다.
판공성사 중이었는데, 어떤 분이 고해실에 들어와서 하는 말이,
'고백할 죄가 하나도 없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백할 죄가 없다고 말한 것은 고백의 비밀이 아니겠지요??)
(그가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죄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그는 미사에 빠진 적도 없고, 기도를 거른 적도 없고,
신자로서의 의무를 안 한 것이 없고,
다른 사람과 다툰 적도 없고 욕한 적도 없고 미워한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죄가 되는 일은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죄도 없는데 왜 고해실에 들어오셨느냐고.
그랬더니 판공성사라 그냥 들어왔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성모님 외에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배웁니다.
죄를 지을 틈이 없이 그냥 죽어버린 아기들은 물론 죄가 없겠지요.
그러나 어른의 입에서 죄가 없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공무원이라는 대답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유신독재 시절에 시민들이 민주화 운동을 할 때 어디서 무엇을 하셨느냐고,
5공 정권 때 대학생들이 피흘리며 죽어갈 때 어디서 무엇을 하셨느냐고,
아프리카나 동남 아시아에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올 때 무엇을 하셨느냐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주변의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셨느냐고...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몹시 기분 나빠하면서 고해실에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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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라.'와 '이웃을 사랑하라.'가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고
그냥 의무감으로 미사에 참석해서 머리속으로 딴 생각이나 하고 있다면,
그게 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고
그저 체면 때문에 약간의 불우이웃 돕기 성금이나 내고
연말에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서류나 작성해달라고 요구하면,
도대체 칭찬 받을 일이 무엇입니까?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연말에 그 세금 감면 혜택이라는 것... 제발 그런 제도는 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교무금, 주일헌금, 무슨 헌금 다 합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들이
실제로 낸 것보다 더 많은 액수를 낸 것처럼 적어달라고 요구하는 모습,
한 두 사람도 아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하느님께 낸 헌금입니다.
정부를 상대로 세금 납부 거부 운동을 할 것이 아니라면,
하느님 앞에서 양심을 속이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세무 당국에서 종교기관을 의심하게 하는 짓들을 하는 것입니까?
제가 사무장도 없이 그런 일을 직접 하다보니,
온갖 비양심적이고 위선적인 모습들을 직접 겪게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성당들이 연말에 비슷한 모습들이라고 듣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나 다른 종파와 비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 앞에서 적나라하게 본색을 드러내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대체 세금을 얼마나 감면받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헌금을 하면서 머리속으로 그런 계산을 하고 있다면...
그게 순수한 마음으로 헌금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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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비판하셨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의 모습이
지금의 종교들에서 그대로 다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성직자들이 사는 모습은
성경에 나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아니, 천주교, 개신교 할 것 없이 종교 자체에 그런 모습들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
정말 예수님 뜻에 맞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따돌림 당하고,
세속적으로 처신 잘 하고, 사업 잘 하는 사람들은 유능하다고 칭찬을 받습니다.
건물 잘 지어내는 것이 유능한 성직자의 기준입니까?
돈을 잘 긁어모으는 것이 유능함의 기준입니까?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을 잘 끌어모으는 것이 성덕의 기준입니까?
누가 읽지도 않을 책을 많이 출판하는 것이 성덕입니까?
. . . . . . . .
그런 것이 기준이라면 예수님은 세상에서 제일 무능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집 한 채 지으신 적도 없고,
돈도 모으지 못했고,
권력자들과 친하지도 못해서 예수님을 위해서 구명 운동을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책 한 권 지은 적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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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닮고 싶다면 예수님처럼 살면 됩니다.
성모님을 닮고 싶다면 성모님처럼 살면 됩니다.
진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처럼 사는 것은 좋지만 현대 사회에서 차는 있어야 한다고 하고,
기왕이면 튼튼하고 좋은 차이어야 한다고 하고,
세상 소식을 알기 위해서는 티브이도 필요하고,
기왕에 들여놓는 것, 좀 더 좋은 것으로 들여놓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하고,
살다보면 이런저런 가전제품 다 필요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하고...
일을 열심히 했다면 쉬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고,
기왕에 쉬는 것, 좀 더 품위있게 쉬는 것이 좋다고 하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 여행이 필요하고,
기왕이면 더 많은 견문을 위해서 외국 여행도 자주 가는 것이 좋고,
성지순례 겸 지구 방방곡곡 다 찾아다니는 것이 좋고,
기타 등등...
토를 달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왕창 멀어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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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개혁하고 싶어 하셨던 구약시대의 유대교,
바로 그 모습을 더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엄하게 꾸짖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
그 위선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변명도 많아지고 핑계만 늘어납니다.
작은 벌레들은 걸러낸다고 하지만,
낙타가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하고 있으니, 삼키면서도 삼키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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