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승천 대축일>(2009. 8. 15. 토)
성모 승천...
사실 '승천'이라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창세기에 '에녹'이라는 인물이 최초의 승천자로 기록되어 있고,
엘리야도 엘리사가 보는 앞에서 승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도 승천한 것으로 믿고 있고...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모 승천이 승천으로서 유일한 일도 아니고 최초의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천은 하느님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에녹, 엘리야, 성모님은 인간이었는데도 승천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는데 승천했다는 사실.
그 사실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모두 다 '하느님과 함께 살았다.' 라는 점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느님과 함께 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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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이란 영혼만의 승천이 아니라 전인적인 승천입니다.
육체를 포함한.
우리는 하늘이라는 것이 대기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기권 위로 더 올라가면 그냥 우주공간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늘 위로 끝없이 올라가봐야... 우주 공간으로 나갈 것입니다.
승천... 영혼과 육체가 함께...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영혼만 승천한 것이라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로 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몸도 함께 승천했다고 하니... 영적인 세계도, 관념의 세계도 아니고...
어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곳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간단하게 말하면, 승천이란 하느님 계신 곳으로 간 것입니다.
그럼 하느님이 계신 곳은 또 어디냐? 라고 물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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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신다는 교리를 배웁니다.
어디에나 ... 라는 그 말,
그 말은 물질적인 세계, 영적인 세계, 현세, 내세...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승천하신 분들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어떤 곳으로 가셨다는 것이고,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니, 표현할 수 없습니다.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고,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표현해봅니다.
승천이란 '하느님의 영원성 안으로 영혼과 육체가 함께 들어가는 것'이라고.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영원의 세계(초월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곧 승천.
(승천을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떻든, '재의 수요일'의 '재의 예식' 때 머리에 재를 받으면서 듣게 되는 말,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
승천하신 분들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면제받은 분들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겪지 않고 곧장 승천하셨으니...
만일에 지금 종말이 온다면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겪지 않고 곧바로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승천하신 분들이 죽음을 겪지 않고 바로 승천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분들과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는 점,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또 다른 세상이 있고,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
그곳이 상상 속의 세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곳이라는 것.
그곳이 우리에게 무한한 희망을 주는 근거가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성모 승천을 경축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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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핵전쟁이 일어나서 호주를 제외하고 모두 멸망하는데,
호주의 생존자들도 방사능 때문에 차례로 죽어갑니다.
그리고 결국 인류 전체가 모두, 그리고 동물들도 모두 멸종하게 되는데...
그 마지막을 기다리거나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기다리지 못하고 자살하고,
어떤 이는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어떤 이는 기도하고, 어떤 이는 방사능을 피할 피난처를 찾아 헤매고.....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텅 빈 거리를
낡은 신문지 조각이 바람에 굴러가는 장면이었습니다.
지구라는 별이 실제로 그렇게 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류 전체가 그렇게 멸망할 수도 있습니다.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다면... 인류의 역사도 문명도 다 허무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SF 영화 말고...
우리의 현실로 눈을 돌리면, 그런 영화와 뭐가 다릅니까?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언젠가는 끝나는 것인데...
남은 사람들이 기억해주지 않으면,
지구에 존재했었다는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질 텐데...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고 해도 그 사람도 언젠가는 사라질 텐데...
하느님이 우리를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인생은 의미 없고 허무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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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 대해선 잘 모르겠고...
적어도 한국인들은 거의 전부 다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다.
저승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사후세계와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무조건 부르게 되는 애국가 가사에 '하느님'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애국가 가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말로는 하느님을 안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애국가는 잘 부르더군요.
천당도 지옥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귀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명절날 고향에 가고, 제사는 잘 지내고, 죽은 부모와 조상에게 정성을 다 하더군요.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무의식이든 잠재의식이든
영혼의 존재와 내세의 존재를 믿거나 기대하거나 느끼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부정해도, 삶이 허무하게 끝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 것입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무신론자나 유물론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유물론자 중에서도 대표적인 유물론자들인 공산주의자들도 비슷합니다.
그들도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이미 죽은 지도자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유훈통치'라는 것도 합니다.
그들이 신의 존재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같아도
그런 저런 모습들은 강한 긍정으로 보입니다.
어떻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두고 싶어 하고,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고, 남기고 싶어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기억해주기를 바라고,
자기가 먼지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싫어합니다.
그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성모 승천은 그런 우리의 마음에 근거 있는 믿음과 희망을 주는 사건입니다.
그것은 곧 인생이라는 것이 절대로 허무한 것이 아니라는 믿음과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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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 엘리야, 성모 마리아처럼 살면 그렇게 승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승천까지는 바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분들이 있는 곳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은 가질 수 있습니다.
그곳으로 직행하기엔 너무 자격이 부족하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보속할 기회는 남아 있으니까.
직행을 못하면 보속 기간을 거쳐서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하여간에 우리는 가볍게 살아야 합니다.
온갖 속세의 짐들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곳에 가려면 우선 몸도 마음도 영혼도 가벼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 하셨습니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필요한 것 외에는 모두 버리는 것입니다.
집착, 욕심, 이기심, 허영, 원한... 버리면 됩니다. 그래야 가벼워집니다.
필요한 것은 십자가뿐입니다.
여기서 십자가란 고통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뒤를 따르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마음 자세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예수님 뒤를 따라가면 됩니다.
성모님은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뒤를 따른' 분입니다.
맨 앞에서.
그래서 성모님에게 승천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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