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간 화요일>(2009. 7. 28. 화)
<자유의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해마다 연말이면
그 해에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해서 표지에 싣는데,
대개는 정치인, 경제인, 학자 등입니다.
그런데 이십여 년 전에 특이한 인물이 선정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은 인물이 아니라, 컴퓨터였습니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크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컴퓨터라는 뜻입니다.
유명한 정치인이나 학자보다도 컴퓨터가 더 영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현대 문명에서 컴퓨터를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타임'지가 컴퓨터를 선정한 것은
인간의 과학에 대한 자만심, 자화자찬으로 보입니다.
지금 우리 인간은 컴퓨터라는 기계를 발명해놓고서 자만심에 빠져있습니다.
마치 인간이 조물주라도 된 것처럼...
컴퓨터나 로봇은 인간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말도 잘 듣고 일도 잘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발달할 것이고, 거의 인간과 비슷한 컴퓨터나 로봇이 나올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뛰어난 로봇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나 로봇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 안에다가 영혼을 집어넣을 수도 없고, 양심을 집어넣을 수도 없습니다.
더 나쁜 것은 컴퓨터나 로봇이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오직 프로그램대로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주인이 착한 사람이면 좋은 일에 사용될 것이고,
악한 사람이 사용하면 악의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하면, 인류 전체에 큰 재앙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나 로봇은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대로 움직이는 기계일 뿐입니다.
컴퓨터나 로봇에게 잘했다고 칭찬할 것도 없고,
나쁜 일을 했다고 책임을 물을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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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라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자유의지'는 글자 그대로 보면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능력을 뜻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선과 악 앞에서 고민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입니다.
선한 일을 해도 자기가 결정합니다. 그래서 칭찬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죄를 지어도 자기가 결정합니다. 그래서 그 책임도 자기가 져야 합니다.
만일에 인간에게 죄를 짓고 안 짓고를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다면,
착하게 산다고 해서 칭찬 받을 것도 없고,
죄를 지었다고 해서 벌받을 일도 없습니다.
로봇에게는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로봇은 노예처럼 부려도 됩니다.
인간은 노예가 될 수 없습니다.
로봇은 기계입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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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밀밭에 가라지가 자라도록 내버려두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 악한 사람들도 많고,
착하지만 실수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보십니다.
그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악해졌다면 스스로 착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수했다면 실수를 바로잡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왜 악인들을 내버려두느냐고 하느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악인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느님의 속을 어찌 알겠습니까?
자녀가 악한 길로 들어섰을 때 그걸 보는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면서,
세상의 악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정을 짐작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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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성인 성녀도 많고 의인도 많고,
죄를 짓지 않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성덕이 더욱 빛을 냅니다.
태어날 때부터 성인이었던 사람은 없습니다.
천주교는 갓난 아기들은 죽으면 바로 천당에 간다고 믿지만,
갓난 아기들을 성인품에 올리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쌓은 성덕이 없기 때문입니다.
(베틀레헴에서 예수님 대신에 죽은 아기들을 순교자로 기억하기는 하지만
그 아기들 개인을 성인으로 공경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행과 성덕은 우리 자신이 각자 만들어가고 쌓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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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우리가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맨 처음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부터,
무엇이 죄이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인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갈림길에서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 결과에 대해서도 우리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왜 하느님은 인간이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는가? 라고
하느님께 책임을 돌리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죄를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자신이 로봇처럼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면
선행을 할 자유와 죄를 지을 자유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느님이 그 결정권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점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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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의 가라지는 제거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가라지는 제거 대상이 아닙니다.
끝까지 회개를 거부할 때에만 종말에 제거될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가라지가 밀로... 극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박해자 사울이 사도 바오로가 되었습니다.
타락했던 아우구스티노가 성인 아우구스티노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악인이 나중에 무엇으로 변화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남을 함부로 가라지라고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가라지로 보이는 그 사람이 나중에 사도가 되고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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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변절할 가능성도 늘 남아 있습니다.
지금 착한 밀로 보이는 사람이 나중에 가라지로 바뀔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에 사도로 뽑았던 유다는 스스로 배반자가 되었습니다.
그건 자기가 선택한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밀이 가라지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만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가라지라고 비판하고 있는 내가,
바로 내가 나중에 보니 가라지가 되어 있고,
가라지였던 그 사람은 밀로 변화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생이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을 향해서 걷고 있긴 하지만,
언제 발밑의 살얼음이 깨질지 알 수 없는 상황,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것이 곧 신앙인들의 삶입니다.
자만하고 방심하는 순간 얼음이 깨지면서 추락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날마다 회개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잘 걸었지만, 내일은 또 어떤 살얼음판을 걸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고 겁을 먹을 필요는 없겠지요.
혼자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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