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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5년 모신 김추기경은 로맨티시스트

도구 Ludovicus 2009. 3. 3. 16:19
“25년 모신 김추기경은 로맨티시스트”

 

"김수환 추기경님은 로맨티시스트이자 센티멘털리스트"



"우리 추기경님 무슨 보속할 것이 그리도 많아서 이렇게 길게 고난을 맛보게 하십니까? 추기경 정도 되는 분을 이 정도로 족치신다면 나중에 저희 같은 범인은 얼마나 호되게 다루시려는 것입니까? 겁나고 무섭습니다. 몇 주일 전에는 '주님, 이제 그만하면 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추기경님 좀 편히 쉬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에서 말년의 추기경이 병석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절절한 육성으로 토해 내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 강우일 주교(64). 한국천주교 최고 의결 기구인 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그는 서울 대교구에서 25년간 김 추기경을 보좌해 온 최측근. 》

“코스모스 피는 것만 봐도 설레셨죠”

장례미사 때 절절한 고별사 강우일 주교


경기고 출신(59회)으로 추기경의 모교인 일본 조치대()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서울 대교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사제 서품 12년 만인 41세에 주교로 승품 된데다 가톨릭대학교 초대 총장과 서울대교구 총대리주교를 지내 일찌감치 김 추기경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거론돼 왔다.

평소 교회 밖 언론과의 인터뷰를 사양해 온 강 주교를 25일 오후 그가 교구장으로 봉직하고 있는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청에서 어렵사리 만났다.

-주교님께 추기경은 어떤 존재였습니까.

"육신의 부모님이 모두 미국에 생존해 계시지만, 추기경님은 제게 아버지 같은 분이셨습니다. 추기경님으로부터 정말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쩌자고 그런 고별사를 하셔서 사람들을 울리셨습니까.

"장례식 전날 밤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추기경님의 업적은 다른 분들이 다 말씀하실테고, 정형화된 고별사는 제 자신이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추기경님의 '영웅적 면모' 보다는 이런 '인간적 모습'도 있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내려 갔습니다."

-하느님께서 추기경을 '고통 중에' 데려가신 것이 지금도 섭섭하십니까.

"추기경님이 병상에서 배변도 제대로 못하실 때는 정말 그랬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추기경님의 선종을 아쉬워하는 것을 보면서 '주님이 추기경에게 고통을 주신 것도 다 이유가 있구나'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추기경의 선종은 한국 천주교에 어떤 과제를 던졌습니까.

"어떻게 하면 더욱 낮고 겸손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겠는가 입니다."

강 주교는 2, 4대 국회의원과 5대 참의원을 지낸 고 오위영선생의 외손자로 1959년 미스유니버스 대회에서 인기상 등 4관왕을 차지한 미스코리아 오현주씨가 막내 이모다. 오씨는 현재 투병 중이다.

-4대째 내려오는 천주교 집안으로 알고 있는데 처음부터 신부가 될 계획이셨습니까.

"아닙니다. 사라호 태풍으로 아버지가 하시는 수산업이 어려워졌고, 정권의 압력으로 은행 대출도 막혀 1964년 가족이 모두 일본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일본 대학 입학을 준비하면서 서서히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괜찮은 직장을 얻는 것이 과연 참 인생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한 번 뿐인 인생인데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에서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공계열에 가서 건축이나 토목을 전공했을 겁니다."


강우일 주교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선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왼쪽). 사진 제공 강우일 주교


-일반인이 잘 모르는 추기경님의 면모는….

"추기경님이 의외로 스피드광이세요. 운전기사가 퇴근한 뒤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모시고 다녔는데 제가 좀 와일드하게 차를 모는 편이어서 무척 좋아하셨어요."

-추기경님에 대해 잘못 알려진 일은….

"추기경님은 강한 분이 아니라 로맨티시스트이자 센티멘털리스트시죠. 가을에 코스모스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것만 봐도 가슴이 설렌다고 하셨어요. 신부들의 영명 축일에는 일일이 축하전화를 해 주셨지요. 50대까지만 해도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셨는데 60대를 지나 70대에 가까워지면서부터 자신도 '무장해제' 시키셨어요. 당신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넉넉히 품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신거죠. 나이가 드실수록 젊게 사셨고, 유머도 늘었으며, 노래도 더 많이 하셨죠."

-추기경님이 주교님께 주신 가장 큰 교훈은….

"말씀보다는 일과 후 저녁 때 홀로 교구청 작은 성당에서 오래도록 열심히 기도하시던 모습입니다."

-추기경님 추모사업 방향은….

"시간을 갖고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시성 시복이 되기 전에 그 분의 이름을 걸고 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드뭅니다."

-천주교회 안팎에서 말년의 추기경을 보수주의자, 심지어 '치매에 걸렸다'고 매도한 세력도 있는데….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마다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추기경님의 진심을 안다면 절대 그런 이야기는 하지 못했을텐데…."

-한국 천주교회를 이끌고 갈 차세대 지도자 중 한 분으로 거명되는데….

"참 부담스럽습니다. 그럴만한 그릇도 못됩니다. 하느님께서 아시고, 결정하실 일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제주교구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이 정말 고맙고 만족스러울 따름입니다. 제가 서울에 너무 오래 있었고 행정직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요."

-엘리트주의자라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서는….

"왜 그런 소리가 나도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식성도 까다롭지 않고, 말도 느릿느릿하고, 행동도 둔한 편입니다. 지위가 높은 분이나 엘리트들과는 잘 어울리지도 못합니다."

평소 강 주교를 '부잣집 아들로 명문고를 나온 엘리트 주교'로 생각했던 기자는 솔직 담백한 답변과 소탈한 태도를 보고 그에 대한 환상이 깨졌지만 되레 애정이 생겼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강 주교는 "추기경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어디 가서 자랑할 곳이 없어졌다"고 했다. 20세에 아버지를 여윈 기자도 슬플 때 보다는 기쁠 때 더욱 아버지 생각이 나곤했기에 선뜻 공감이 갔다. 하느님께서 왠지 그를 크게 쓰실 것 같은 예감이 든다.(동아일보)
출처 : 세계를 읽어주는 나뭇잎숨결
글쓴이 : 나뭇잎숨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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