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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톨릭교회의 특징-그리스도론

도구 Ludovicus 2009. 3. 3. 09:42

삼위일체의 신비
하느님과 인간을 비교하면 그 격차는 무한하다. 즉 하느님은 우리의 이해를 넘는 존재다. 인간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하느님이라면 인간의 한계 안에 있는 하느님, 인간 수준의 하느님이지 참 하느님이 아니다. ‘삼위일체’는 인간의 이해를 넘는 부분 중 하나다. 여기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세 분의 하느님이 아닌 한 분이신 하느님이다. 다시 말해 ‘일체’의 하느님이다. 하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몸, 곧 일체를 이루면서 세 분이 존재하는 ‘삼위’인 것이다. ‘삼위일체’는 ‘세 분이 한 하느님’이라는 의미다. 이 세 위격의 성부·성자·성령은 각각 똑같이 하느님이시다. 똑같이 영원한 존재이시며, 그 안에서는 더 높은 분도 더 낮은 분도 없고, 누가 먼저고 누가 나중인 것도 없다. 그러나 각각은 ‘다른 분’이다. ‘성부’는 모든 것의 ‘근원’이며, 성자도 성령도 성부께로부터 나왔다. ‘성자’는 성부와 함께 성령의 근원이 되었으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왔다. 또한 요한복음서의 서문은 하느님의 아들, 성자이신 예수의 영원한 존재를 이해시키기 위해 성자를 ‘(성부의) 말씀’이라 부르고 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다.”(1,1-14) 이것은 성자의 존재를 설명하는 명문이다. 또한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사랑 안에서 생겨난 선물이라 부른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있어서는 신성(거룩함)과 영원한 생명의 샘이며, 예술 작품 속에서는 예로부터 타오르는 불꽃이나 비둘기 형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삼위일체의 가르침은 성서에 분명하게 나와 있다. 이 삼위일체의 가르침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다. 삼위일체가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성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적절하게 조치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서의 의미는 이것을 통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강생구속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다.
기원전 4년경 별빛이 유난히 밝던 그 밤, 세상은 고요 속에 묻혔으나 인류의 역사는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유다 지방의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었던 것이다. “‘동정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태 1,23)

역사의 예수
“그 무렵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온 천하에 호구 조사령을 내렸다. 이 첫번째 호구 조사를 하던 때 시리아에는 퀴리노라는 사람이 총독으로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등록을 하러 저마다 본고장을 찾아 길을 떠나게 되었다.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 동네를 떠나 유다 지방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곳으로 갔다. 베들레헴은 다윗 왕이 난 고을이며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는데 그때 마리아는 임신중이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첫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루가 2,1­7)
루가는 예수께서 탄생하시던 때의 역사적 상황과 지리적 배경을 비교적 자세하게 전해 주고 있다. 즉 예수께서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서기 14년) 치하의 팔레스티나 유다 지방에서 탄생하였고, 티베리오 황제(서기 14­37년) 때 활약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는 전설이나 신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 역사 안에 실존했던 분임을 알 수 있다.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나신 분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이라는 동네로 보내시어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는 남자와 약혼한 처녀 마리아를 찾아가게 하셨다. 천사는 마리아의 집에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하였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루가 1,26­28. 31­32) 처녀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마리아의 질문에 천사는 그 일이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대답한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실 것이다.”(1,35) 천사에게서 잉태 예고를 받은 마리아는 처녀가 아기를 낳으면 중형을 받게 되는 엄격한 율법사회에서,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확고한 신앙으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라고 응답한다. 마리아는 마치 수천 년 전 그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떠난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예수의 모친이 되었고 위대한 인류 구원의 서막을 열었다.

하느님이신 그리스도
인류가 그렇게도 오래 기다리던 구세주가 탄생하였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고 낮추어서 사람이 되신 이 놀라운 사건을 우리는 ‘육화(肉化)의 신비’ 또는 ‘강생(降生)의 신비’라고 한다. 인간의 언어로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신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시다. 석가모니·공자·소크라테스·모하메드 등 세상에는 많은 성현들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과 다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하느님인 동시에 인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인류의 위대한 성현들은 길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참 생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이들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길’ 자체이며 온전한 ‘진리’이고 참 ‘생명’인 분이시다.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6­7) 예수께서는 하느님이면서 철저한 인간이셨다. 하느님의 일을 하기 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지내면서 극도의 굶주림을 체험하였고, 재물에 대한 유혹도 겪었으며, 세상의 권력에 대한 악마의 집요한 유혹도 경험하셨다. 그리고 한때 수제자 베드로의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듣고 무척 흐뭇해했고,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내면서 세월의 흐름을 감지했으며, 사랑하던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렸고, 때로는 사람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사는 기쁨을 맛보기도 하셨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깊이 철저하게 경험한 분이셨다.
그분의 인간적인 모습을 가장 절실하게 드러내는 부분은 바로 십자가상에서 죽음을 앞두고 육체적·정신적 고통의 절정 속에서 울부짖는 모습이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 27,46)

아담의 원죄와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그 죄는 죽음을 불러들인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올바른 행위로 모든 사람이 무죄 판결을 받고 길이 살게 되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죄는 세상에 군림하여 죽음을 가져다 주었지만 은총은 군림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게 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한다.(로마 5,12­21 참조)

- [PD 하느님 DJ 예수님 - 바오로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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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금낭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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