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8년 7월 26일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도구 Ludovicus 2008. 7. 26. 06:22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7월 26일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제1독서 예레미야 7,1-11

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이다.
2 주님의 집 대문에 서서 이 말씀을 외쳐라. “주님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서는 유다의 모든 주민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3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겠다. 4 ′이는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 주님의 성전이다!′하는 거짓된 말을 믿지 마라.
5 너희가 참으로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치고 이웃끼리 서로 올바른 일을 실천한다면, 6 너희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않고 무죄한 이들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않으며 다른 신들을 따라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면, 7 내가 너희를 이곳에, 예로부터 영원히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땅에 살게 하겠다.
8 그런데 너희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된 말을 믿고 있다. 9 너희는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으로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 자신도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 10 그러면서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 안에 들어와 내 앞에 서서,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이런 역겨운 짓들이나 하는 주제에! 11 너희에게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이 강도들의 소굴로 보이느냐?
나도 이제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주님의 말씀이다.’”



복음 마태오 13,24-30

그때에 24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알렉산더 대왕이 친한 친구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선물은 잘 훈련된 사냥개 두 마리였지요. 평소에도 사냥을 즐겼던 대왕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어느 날 대왕은 사냥개를 데리고 토끼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개들은 사냥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했습니다. 달아나는 토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빈둥빈둥 누워만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알렉산더 대왕은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바로 옆으로 토끼가 지나가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사냥개는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그는 그 자리에서 사냥개를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대왕은 사냥개를 선물한 친구를 불러 호통을 쳤지요.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볼품없는 개들을 왜 내게 선물했는가? 그 쓸모없는 사냥개들을 내가 모두 죽여 버렸네.”

친구는 대왕의 이 말을 듣고 실망스런 표정을 짓는 것이었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대왕이시여, 그 사냥개들은 겨우 토끼나 잡으려고 훈련된 개들이 아닙니다. 호랑이와 사자를 사냥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훈련받은 값비싼 개들입니다.”

친구의 말을 듣고서 알렉산더 대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성급함으로 인해서 재능도 발휘하지 못하고 죽여 버린 개들에 대해서 미안함도 갖게 되었지요.

사실 이 세상에 과연 필요 없는 것이 있을까요? 물론 우리들은 ‘하느님께서 이것은 왜 창조하셨을까?’라면서 이 세상에 필요 없다는 것을 종종 이야기하고 또 제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것까지도 이 세상의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주님의 목적을 이루어 나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것이 가라지라 할지라도 지금 당장은 뽑아버리지 않겠다고 하시지요.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라고 이야기되는 세상 끝날 까지 주님께서는 기다려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주님의 이 기다리심을 얼마나 따르고 있었을까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래서 저 사람은 가라지라고 너무나 쉽게 단정을 짓고 지금 당장 우리 공동체에서 뽑아 버려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면 실수를 하고, 따라서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꼭 시간을 두고 신중히 생각하여 일을 결정하고 처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도 아직까지는 밀과 가라지를 구분하지 않으심을 잊지 맙시다.



다른 이들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맙시다.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좋은 글’ 중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참 좋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나보다 가진 것이 좋아도 남에게 배풀 줄만 아는 바보 같은 사람, 항상 당하고 살면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 자신이 부끄럽고, 못나 보이지만, 그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낍니다.

물론 그 반면에는 늘 실망감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나를 부담스럽게 하는 사람, 차라리 연락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인가 하고 말입니다.

남에게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나를 봄으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으면 하는 생각, 남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이란 노래 아시지요.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우리 가는 길에 아침 햇살 비치면
행복하다 말해 주겠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때론 지루하고 외로운 길이라도
그대 함께만 간다면 좋겠네

때론 즐거움에 웃음 짓는
나날이라서 행복하다고 말해 주겠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노래 가사만 보아도 행복해지지 않나요? 함께 있음으로 서로가 행복하다면 함께 있으면 잠시라도 떨어져 있기 아쉬운 사람, 보면 볼수록 진국으로 다가오는 사람, 그래서 그 사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해 지거나 가슴 촉촉하게 적셔오는 사람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면,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어도 우리는 이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님에게 님이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우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내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행복은 배려하는 나로부터 전염되는 아름다운 마음의 병입니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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