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강론.묵상

[스크랩] <끝까지 사랑한 사람> 조영만 세례자요한 신부님

도구 Ludovicus 2008. 7. 23. 04:52
    2008년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 ╆♡╆ 조영만 세례자요한 신부님 ╆♡╆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 살면서 쓰지 말아야지, 마음먹은 단어 중에 하나가, ‘호상’이라는 단어입니다. 어르신이 제 아 무리 천수를 누리고 떠나가셨다 할지라도 누군가 하나에게는 그 이별이 좋을 수 만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호상’이라고 부르는 상가에 문상을 갔을 때 병원 입구에서부터 장례식장까지 빼곡이 조화가 들 어서있고 사장님에 교수님이신 자제분들은 모두가 몰려드는 조문객들을 맞느라고 삼삼오오 떼 지 어 앉아 호상이네 어쩌네 번잡스러운데, 정작 할머니의 영정 아래에는 막내딸만 검은 소복 입고 눈 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들들이 죄다 잘 살았지만 할머니는 이혼하고 혼자 사는 막내딸이 눈에 밟 힌다며 돌아가실 때까지 막내딸과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단촐하게 사셨다합니다. 말년에 풍이 와 서 거동도 제대로 못하시는 어머니를 두고 오빠들은 그냥 요양병원에 맡기자 했는데, 막내 동생은 그럴 수 없다며 끝까지 어머니를 모신 것이었지요. 아무리 잘 나가고 성공을 해도 부모님 제대로 못 모시면 좋은 소리 들을 수 없는 것이 그래도 한국 사람들의 정서인데, 아들들 입장에서는 여엉 편할 수는 없는 터에 오래 앓으시던 어머니께서 돌아 가셨다고 하니, 호상이네 뭐네, 하는 소리가 왜 그렇게 밉게만 들리던지요. 죄다 냉담하던 형제들 사이에 그래도 어머니 영정 아래 눈물 흘리던 그 막내 따님께 힘내시라 말씀드리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 기억이 생생합니다. 다 같은 자식인데, 왜 그랬을까? 부모 보낸 마음이야 한결 같겠지만, 그 사랑만은 다 똑같지는 못 한 것이 현실입니다. 부모한테 받은 것 없이 내가 잘나 출세하고 성공했다는 사람들치고 효자효녀 만나기 어렵습니다. 부모 모시는 일도 계산하기 바쁘고 설령 맘 좋은 며느리 들어오더라도 어지간 안 하면 부모 모시는 일로 형제들 간에 의 상하기 십상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끝까지 남느냐? 가장 사랑을 많이 한 자녀가 그래도 끝까지 남는 법입니다. 끝까지 남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던 어떤 성가의 가사도 마찬가집니다. 믿음과 소망은 하늘나라에서는 더 이상 소용이 없어질 터 이지만 사랑만은 영원할 것이다, 는 이 원칙이 바로 우리 종교, 그리스도교가 가지고 있는 절대 기준입니다. 오늘은 막달라 여자라고 불리 우는 마리아의 기념일입니다. 그녀는 ‘끝까지 남은 여자’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도, 그리고 모두가 끝났다고 낙담하고 떠나버린 그 무덤가의 새벽에서도, 이 여자 는 끝까지 남았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누가 나의 주님을 데려갔다고 정처 없이 동산을 헤매고 다녔 던 여자입니다. 그만큼 예수를 사랑했던 여자이고, 그만큼 예수만이 전부였던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 활 소식은 바로 그런 여자를 통해 첫 번째로 전파됩니다. 이는 아주 파격적인 대우였습니다. 왜냐 하면 당대의 여자는 재판정에서도 그 증언을 인정받지 못했을 만큼 대단히 무시당했던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런 여자의 증언을 통하여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온 세 상에 알리게 하셨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천사들이 알렸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를 통해 이루 어진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밉네 어쩌내 해사도 끝까지 곁에 남는 자식이 효자이고, 원수네 어쩌네 해사도 끝까지 곁에 남는 아내와 남편이 내 인생 가장 중요한 사랑들입니다. 참으로 보잘 것 없었던 한 여자 막달레나를 통 해 제자들이 돌아왔고, 절망했던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 십자가에 끝까지 남는 사람, 저도 그렇게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멘.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글쓴이 : 五餠二魚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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