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강론.묵상

[스크랩] <공짜가 없는 사랑> 조영만 세례자요한 신부님

도구 Ludovicus 2008. 7. 16. 05:51
    2008년 7월 15일 성 보나벤뚜라 주교학자 기념일 ♡♥:*:..조영만 세례자요한 신부님 ..:*:♥ <성 보나벤뚜라 주교 학자 기념일> (INTRO) 수도회 신학박사 출신의 보나벤뚜라 신부는 탁월한 권의의 가르침으로 덕망이 자자했고 이를 들은 교황은 그를 알바노의 추기경으로 임명하기로 결정하고 추기경을 상징하는 붉은 색 모자를 보나벤 뚜라 성인에게 전달시켰답니다. 교황 사절이 수도원에 도착하자 마침 설거지를 하고 있던 성인은 교황 사절에게 내가 설거지를 다할 때까지 그 모자를 벽에 걸어두라 하시고는 하던 설거지를 마치 셨다고 합니다. 자리를 탐하면 사람 버리기 십상이고 욕심이 지나치면 작은 것은 보이지 않는 법입 니다. 사실 우리의 하루를 결정짓는 것은 아주 대단한 사건들이 아니라 작은 일들을 꾸준히 해나가 는 연속, 아니겠습니까? 잠시 침묵 중에 나의 하루는 충분했는지 되짚어보도록 합시다. (강론) <공짜가 없는 사랑> 어제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미사에 갔다가 이제 8개월의 만삭이 된 신혼부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6살 차이의 이 부부는 남자가 주일학교 교리교사로 있을 때 학생이었던 아내를 일찌감치 ‘찜하고’ 그 때부터 ‘밀착 경호’를 시작해 주변에 남자 친구가 들끓지 않도록 노심초사 감시하면서 세상에 남자는 자기 밖에 없다고 쇄뇌를 시켰답니다. 있는 공 없는 공 다 들였지만 사람이 묶어놓고 기를 수 있는 짐승이 아닌 다음에야 여자가 대학을 가자 너무 지나친 관심과 사랑이 부담스럽다며 남자 를 떠나게 되고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 생긴 것도 머슴처럼 생긴 이 남자는 고래심줄처럼 이 여자를 기다렸고, 그 세월에 감동을 받은 여자는 이게 인연인가보다 하고는 지난 가을 결혼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남자가 그럽니다. 다른 여자랑 결혼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버리고 나면 나중에 죽을 때 내 마음 속에 는 당신 밖에 없어, 라는 말을 차마 아내에게 할 수 없을 것 같아, 이 여자가 아니면 결혼을 포기하 고 있었다고 담담히 이야기합니다. 여자는 그럽니다. 15년 동안 이 사람이 나를 너무 사랑해줘서 그게 싫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이제 는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이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수줍게 고백합니다. 제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혼자 사는 신부 앞에 두고 뭔 지랄들이고? 염장 지르지 말고 치아라!” 겉으로 이야기 했지만 가슴 속은 예, 참 따뜻했습니다. 천년만은 같은 마음으로 살지는 못한다 할지 라도 지금의 이 사랑 이야기를 이 사람들이 아주 오랫동안 간직했으면 하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사랑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그냥 퍼주고 그냥 베푸는 사랑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사랑은 그 값을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하고, 5리를 가자하면 10리까지 따라가 주어야 하는 사랑의 공식이 사실 따지기를 잘하고 비교하기를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통하지 않습니다. 똑똑하다는 사람, 잘 나가는 사람, 높은 사람들 중에 참다운 신앙인을 만나기 힘든 까닭입니다. 버 릴 것이 많아 힘들고, 낮추지 못하니 힘듭니다. 어린 아이처럼 되어야 하는데, 잘나고 높은 사람들 은 근엄하게 늙어가는 일을 마치 하나의 권위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던져진 이유는 고상하게 늙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일을 새롭게 살아 마침내 어린아이와 같은 영혼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라고 많은 성인들은 가르쳐 온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코라진, 베사이다, 가파르나움은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도시이자 무역으로 경제가 활성화되고 또 높은 학식으로 현자들이 많았던, 잘 나가던 동네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회개할 수가 없었습니다. 잘 나가던 삶을 중단할 수 없었고 높은 자리를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가진 것을 내 놓을 수도 없 었습니다. 수많은 기적들을 베풀었지만 그들은 기적의 단물만 빼먹고 등을 돌렸습니다. 셈을 하기 에 급급했습니다. 사랑에는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잊은 것입니다. 사랑 받은 만큼 사랑해야 합니다. 용서 받은 만큼 용서해야 합니다. 자비를 입은 만큼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반드시 그 인생은 탈 이나게 되어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이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부족함만을 찾고 내 한 육신의 보위 만 챙기고 더 높은 성공과 쾌락에서 과감히 일어서지 못한다면 우리도 코라진, 베사이다, 가파르나 움의 저주로부터 한치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도 폐허가 되고 말 것입니다. 뜨끔합니 다.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로 이렇게 사제 생활을 연명해가고 있는 저부터 회개해야겠다, 싶어집니다. 서로간의 사랑 값을 치르느라 행복의 비명을 지르던 그 젊은 신혼부부가 이구동성으로 자기는 결혼 전도사가 되겠다고, 망설이는 후배들에게 꼭 결혼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는 그 녀석에게 살짜기 따 로 불러 말해주었습니다. “그래, 3년이 지나도 너 그 소리 계속하나 두고 보자. 이놈아.” 신부라는 작자가 이렇게 속이 좁아 터져서야, 참 회개, 멀고도 먼 길입니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글쓴이 : 五餠二魚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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