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1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묵상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3,7ㄱ.8-15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안다고 증언하는가?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도 가장 하기 싫은 것이 공부하는 것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정말 가난해서 공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집중해서 공부하지를 못하였습니다. 언제나 마음으로는 공부에 몰두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소설을 읽거나 한문 공부를 하거나 엉뚱한 곳에 마음을 다 쏟고 살았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공부에만 완전히 몰두한 친구를 보면서 많이 부러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결혼을 하고 아내가 헌신적으로 학부모가 되어 주어서 그 때부터 정말 공부하는 재미를 붙여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원 없이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쓸데없는 것만 공부한 것이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허울만 박사이고, 교수이지 내가 정말 아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느낍니다. 공자의 제자 증자는 이름을 삼(參)이라고 하고 노나라 사람이며, 효도에 뛰어났고 특히 공자의 심법(心法)을 올바르게 전수받은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논어에서 이렇게 자신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吾日三省吾身; 爲人謨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라고 말합니다. <나는 매일 자신에 대하여 세 가지를 반성하는데, 남을 위해 일을 함에 있어 불충실하지 않았는가? 친구들과 사귐에 있어 신의를 잃은 일은 없는가?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익히지 않은 것은 없는가? 이다.> 증삼은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현자로서 항상 자신을 반성하면서 그렇게 성실하고 올바르게 살았을 것입니다. 특히 그가 반성하였다고 하는 그 세 가지 덕목은 크리스천으로 살고자 하면서 매일 묵상하는 복음에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하고 있는 사랑의 덕목입니다. 그런데 나도 논어를 배우면서 이 말씀을 언제나 새기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매일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자신을 더욱 쇄신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마음에 걸리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내가 교단에 서면서부터 이 말이 더 새록새록 생각나는 것입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내가 봉급을 받으면서 그만큼 일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많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 일에 몰두하지 못하였고, 맡은 일에 충실하지 못하였던 것이 더 많이 생각납니다. 정치를 하거나 공무원을 하거나 회사에 다니거나 봉급이 적다고 언제나 불평불만으로 살았던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봉급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교회에서 봉사할 때에도 내가 맡은 직책을 정말 성실하게 수행했는지 생각하면 성실하지 못하였던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합니다. 자신의 명예나 자신의 의견으로 봉사했음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사귀거나 사람들을 사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의(信義)라고 합니다. 결혼생활도 그렇고, 사회생활에서도 그러하며, 나를 믿고 의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로 믿음이 가도록 살았는지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고, 신의를 가볍게 여기고, 불신을 심어 주어서 믿음이 가지 않는 생활을 한 것이 더 크게 생각납니다. 나는 전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많이 결심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하였지만 말에서도 신의를 저버리고, 행동에서도 그렇게 보였으며,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표현은 전혀 다르게 기만하고 산 것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비위만 맞추려고 했었던 것도 지금은 장작불 앞에 있는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그런데 나를 가장 부끄럽게 하는 것은 배운 것을 다시 익히기 위해서 전혀 노력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좋은 글이나 묵상을 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배우면서도 그 것은 그냥 지식이었던 것이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복음을 묵상한지도 벌써 20여년이 됩니다. 그리고 매일 묵상한 것도 10여년이 되고, 묵상한 것을 글로 쓴 것도 3년이 다 되어갑니다. 매일 반성하고, 주님께 용서를 빌고, 새롭게 살겠다고 결심하면서도, 내 행실이나 마음가짐이나 말은 전혀 변하지 않고 그냥 그 상태에서 맴돌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엉터리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고 하셨습니다. 공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가르치고, 의심 없이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진리의 말씀을 공부해서 알았으면, 믿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것을 게을렀던 것이 나의 본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말로는 성경의 가르침을 잘 표현하면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잘못 살고 있는 세상을 보면서 입을 다물고, 귀를 막고, 어떤 것은 아예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자식들에게도 잘못 가르치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직업을 택한 것도 나의 큰 교만이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힙니다. 내가 믿지 못하고, 마음과 행동을 바로 세우지 못하니까 주님이 십자가에 들어 올리고, 목말라 하시며 죽으신 것입니다. 아무리 반성하고 뉘우쳐도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오늘은 많이 부끄럽습니다. ~이 창순 야고보 선생님의 묵상글 ~ -순교자와 함께하는 하루- “저희들의 종교는 하도 아름답고 참된 것이어서 상감과 대신들이 연구하려 하신다면 기꺼이 믿게 될 것입니다.” - 성녀 김 루치아(103위 성인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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