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2008년 4월 1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도구 Ludovicus 2008. 4. 1. 08:06
2008년 4월 1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4,32-37

3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6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37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복음 요한 3,7ㄱ.8-15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저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봄이나 가을을 좋아합니다. 즉, 아름다운 꽃이 피는 봄을 그리고 예쁘고 멋진 단풍을 볼 수 있는 가을을 좋아하지요. 더군다나 이 시기는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생활하기 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저 없이 봄이나 가을을 좋아하는 계절로 꼽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렇게 길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봄이 왔다 싶으면 어느새 더운 여름이고, 가을이 왔다 싶으면 어느새 추운 겨울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계절만 그런 것이 아니네요. 좋은 시간일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시간, 청춘의 시간, 노는 시간, 여행하는 시간 등은 왜 이렇게 짧다고 느껴질까요? 이러한 시간들은 좀 더 길고 영원했으면 좋겠는데 참 빠르게 지나가는 반면에 고통과 시련의 시간은 항상 길게만 느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짧게 느껴지는 그 좋은 시간들이 정말로 짧은 것일까요? 아니지요. 생각하면 그 짧은 시간 안에 오히려 영원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짧게 지나가버린 시간 같지만 우리들의 머릿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남아서, 순간순간에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짧다고 하면서 아쉬워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짧다면서 아쉬워하는 것이야말로 영원한 가치가 있음을 기억하면서 열심히 살아간다면 우리들은 지금 이 시간을 보다 더 의미 있고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매 순간을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짧다고 느껴지는 그 시간들에 대해 아쉬움만을 간직한 채 끊임없이 과거에 연연하기 때문에, 지금 행복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가져오면서 더욱 더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불완전한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그래서 제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해 참되고 영원한 가치를 지니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들어 올려 졌습니다. 즉, 광야에서 뱀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지 않았던 것처럼, 들어 올려진 예수님을 믿고 바라본 사람들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천년이라는 역사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굳은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지요. 그 역사를 통해, 우리 역시 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완연한 봄입니다. 실내에만 있지 마시고 밖에 나가서 봄을 느껴보세요.



벽돌 두 장(아잔 브라흐마,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중에서)

나는 모든 벽을 완벽한 형태로 쌓아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첫 번째 벽돌 벽을 완성한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감탄의 눈으로 내가 쌓은 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제야 나는 중간에 있는 벽돌 두 장이 어긋나 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주지 스님에게 그 벽을 허물고 다시 쌓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주지 스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을 다 짓고 서너 달쯤 시간이 흘렀다. 한 방문객과 절 안을 거닐다가 그가 그 벽을 보고야 말았다. 그 남자는 무심코 말했다.

“매우 아름다운 벽이군요.”

“선생,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가요? 벽 전체를 망쳐 놓은 저 잘못된 벽돌 두 장이 보이지 않나요?”

내가 놀라서 묻자 그가 말했다.

“물론 내 눈에는 잘못 얹힌 두 장의 벽돌이 보입니다. 하지만 더없이 훌륭하게 쌓아 올려진 998개의 벽돌들도 보입니다.”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석 달 만에 처음으로 그 두 개의 실수가 아닌, 벽을 이루고 있는 훌륭하게 쌓아 올려진 수많은 벽돌을 바라볼 수 있었다.

스무 해가 지난 지금도 그 벽은 그곳에 그대로 서있다. 이제는 그 잘못 얹힌 벽돌 두 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잊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더 이상 그 벽에서 잘못된 벽돌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