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못말리는 젬마 선교사님.
대상 : 김 명 옥 젬마 선교사.
나는 이제 평범하지만,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한 평신도 선교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러한 기회를 주신 하느님과 사목연구소에 감사드린다.
김젬마 선교사(62세. 현 안산 본오동 성당 소속 선교사)는 평신도 선교사로서 40여년의 삶을 살아오고 있는 분이다. 선교사가 되게 된 동기는 서울 교리신학원을 나와서 자격증을 받았기 때문이며, 이후 교리 교수와 여러 본당 활동에 참여하면서 선교사로서의 활동을 해오게 되었다.
아직도 평신도 선교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한국 천주교, 특히 수원교구내의 본당에서 활동하면서 참으로 많은 말못할 억울한 일, 속상한 일, 소외당하고 정당한 대접조차 받지 못하고 살아온 일들이 많다고 한다. 예를 들면, 하고 있던 교리반 강좌를 수녀님이 간섭하여 하지 못하게 되었다든지, 1년가까이 예비자 교리교수를 하여 수십명을 영세시켰는데도, 누구하나 챙기는 사람없어 꽃다발 하나, 사진 한 장 영세자들과 함께 찍지 못하고 옆에서 구경만 해야 했던 일들이 그러한 수많은 예들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이분을 그러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이 몸은 비천한 주니의 종입니다. 그저 제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하는 자세로 누구에게 탓을 돌리거나 불평하지 않고 항상 감사하고 무엇이든 교회(성당) 내에서 할 일이 있으면 스스로 찾아서 궃은 일을 해내는 분이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참으로 진실되고 속이 깊고 변함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나하고는 내가 첫보좌 신부로 발령받은 성남 수진동에서 만났는데, 그 때에는 선교사라는 명칭도 없이 교리교사일을 부분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성당의 여러 가지 일에 항상 관심가지고 함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후 1997년에 내가 하남 신설본당에 발령을 받고, 첫 주임신부로 파견되었는데, 수녀도 없고 양성된 봉사자도 쉽게 찾을 수 없어서, 선교사를 요청하여 상근 선교사로 일을 하게 되었다. 교리 교사일을 중심으로 제반 여러 가지 성당일 특히 신자 재교육에 관한 일들을 함께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목위원들이 외부에서 선교사가 와서 일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겼다. 텃세라고나 할까 고의적으로 무시하고 심지어 배척하는 모습도 역력했다. 그러나 이 선교사는 그동안 하도 본당에서 그러한 일을 많이 겪어봐서 그런지 잘 참아내며, 그 잘난 사목위원들이 하지 않는 성당 청소, 화장실 청소 , 계단 청소등도 수시로 하면서 맡은 바 일을 꾸준히 해나갔고, 마침내 사목위원들과 신자 모두들로부터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에 신자들의 요청으로 수녀님을 모셔오게 되었다. 본당수녀님이 부임하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선교사 무용론(無用論)이 제기 되었고, 내가 본당을 떠나자 마자 곧 바로 선교사의 본당 활동도 중단되게 되었다. 후임 본당신부나 사목위원 모두 선교사 활용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하남 성당을 떠나서 교구 청소년국 청년성서부를 창설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역시 함께 일할 봉사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양성된 봉사자들은 모여서 서울 이야기만 하고 쉽게 협조하려 하지 않았고, 좀 나이가 든 봉사자들은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여 제대로 일을 하기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당시 50대에 들어선 이 선교사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모든 일을 기도부터 우선시 하는 분이기에 옆에서 보고 기도만해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나와 직원 한명과 꼬박 3년동안 교구 청년성서부활동을 함께 하며 교구 청년성서의 기초를 놓은 일을 해내었다. 청년들로부터도 청년들과 보조를 잘 못맞추고, 감각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수없이 많은 구박 아닌 구박을 받고, 지도신부인 나로부터도 쓸데없는 잔소리한다고 많은 핀잔(?)을 받았지만, 항상 지도 신부 안에 예수님께신 것을 굳게 믿고, 청년들 한결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잘 견디었고, 항상 청년들과 지도신부의 든든한 영적 후원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셨다. 내가 교구 청년성서부를 떠나자 역시 선교사도 청년성서부 활동을 그만두어야 했다. 새로이 전담수녀님이 부임하여 모든 것을 주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다시 내가 새로 부임하게된 본오동 성당의 상근 선교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노인대학 성서를 3년동안 강의하면서 거의 100여명의 수강자들 수준을 유지하고, 어르신들에게 성서를 재미있고 유익하며 영성저으로 가르치는데 거의 입에 거품이 나올 정도로 매번 열심히 강의하신다. 또한 예비자 교리에 대한 강의도 꾸준히 맡아서 진행하고, 주로 어른들 강의를 주로 맡지만, 사정에 따라서는 중고등부 교리를 맡기도 하엿는데, 항상 결과는 아주 좋은 편이었다. 이 선교사님과 함께 활동하면서 나도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바가 아주 많다. 그러나 정말로 그분의 내적인 신앙심과 교회 사랑, 무엇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얼마나 배우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분의 영적 삶의 특징을 몇가지 살펴본다.
첫째, 돈에 대하여 무식할 정도로 욕심이 없다. 내가 스스로 돈이 없고, 본당예산도 마음대로 쓸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매달 30만원 정도 활동비(교통비)를 드리는데, 교구청년성서부 3년동안 매일 나와 일을 하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그돈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을 청년성서 후원금으로 내놓았다. 내가 교구에서 받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활동비 또는 후원금에서 주기 때문에 신부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본당에서도 30만월 활동비 외에 노인대학 강사료를 20만원 별도로 책정해드렸는데, 거의 고스란이 이 돈을 노인대학 후원금으로 내놓았다. 참으로 특이한 분이었다. 자신의 노후문제등을 위해 저축을 해도 모자랄터에 ‘오늘 걱정은 오늘만’의 말씀을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항상 모든 후원금을 조사해보면 수억원을 버는 사람보다도 매달 30만원 월급의 젬마 선교사가 1등 아니면 2 등이었다.
둘째, 기도의 사람임을 우리 모두는 공감하고 인정한다. 나는 항상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선교사와 상의하고 기도를 부탁한다. 교구에 있을 때는 청년들조차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선교사님에게 부탁하는 모습을 자주 보앗다. 마치 집에서 자녀가 엄마에게 어려운 일을 이야기 하듯이. ..! 선교사는 단순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깊이 기도하고 성체조배를 매일 빼어놓는 일이 없이 한다. (매일 미사 참례 한번은 최소한의 기본이다) 묵주기도와 성서 묵상 등을 매일 열심히 하시기에 어떤 문제를 부탁하면 잘 해결되도록 도와주는 것을 여러번 체험하였다. 본인은 동정녀이기에 딸린 자녀 손자가 없지만, 함께 사는 언니(약87세의 안젤라 할머니)의 자녀 (선교사에게는 조카)와 그 손자손녀들 신앙을 항상 걱정하며 기도를 빼놓지 않는다.
셋째, 뛰어난 독립정신이다. 왠만해서는 절대로 남에게 신세를지지 않으려 한다. 여러 복음화 관계 일을 봉사자들과 늦게까지 일하다보면 성당에서 전철역, 교구청사무실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승용차로 데려다 주려고 여러 번 권유한 적이 있지만, 단 한번도 순순히 이를 받아들인 적이 없다. 행여나 다른 사람이 보고서 안좋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당신의 다리로 충분히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은 청년들이나 다른 봉사자들이나 지도신부가 정류장까지 또는 집까지 태워준다고 하면 좋아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고, 혹 교통비나 활동비 봉투를 주면 순순히 감사하게 잘 받아들이는데, 이 선교사님은 얼마나 그것이 어려운지 모른다. 대부분 포기하고 마는경우가 많다. 나는 이분의 생생한 영적 생명력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오랫동안 관찰해본 결과 이 ‘영적 독립성’에 중요한 원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넷째, 가장 비천하고 가난한 위치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신부나 수녀는 그 신분과 지위를 인정받고 일을 한다. 어쩌면 반은 따놓고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당 신자, 또는 신자라면 누구나 그 옷을 보고, 그 신분을 보고 그 권위와 자격을 인정하기 때문에 본인이 안해서 못하는 것이지, 교리나 성서강의나 못할 것이 없고, 하기만 하면 신자들도 많이 모이게 되어있다. 그러나 이 평신도 선교사의 위치는 그러하지 못하다. 나이도 60세가 넘었고, 외모나 옷차람도 별로 특별히 나은 점이 없고, 처음보기에 말도 잘 못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아무에게서라도 인정받기 어려운 타입이다. 무슨 일만 생기면 제일먼저 야단맞고 핀잔받기 일쑤인 위치에 있다.(왜냐하면 제일 만만하고 또 뒤끝이 없으니까) 그러기에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을 잘 인내한다. 그리고 항상 궃은 일 남이 하기 어여운 일을 찾아서 한다. 미사 후에 성당 지저분한 것은 일주일 한번 성당 청소하는 날 외에는 별로 치우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자주 성체조배하시는 선교사의 눈에는 그것이 예수님께 죄송스러워보여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 된다. 지난 성탄 때는 성탄대축일 성탄 축제와 대미사 후에 모든 사람이 식사하러 가고 난 다음에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어지러워진 백 오십여 평 성당을 혼자 다 청소하시고 마침내 몸살이 나서 매우 고생한 적도 있다. 나는 이러한 분이 하늘나라에 가면 우리 신부 수녀보다도 더 윗자리에 앉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적어도 나와 비교해서만 보아도 그러하다. 본당신부는 조금만 수고하면 사람들이 모두 와서 ‘수고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인사하고 또 인사 받기에 바쁘다. 항상 식사를 챙겨주고 모든 것에 대접받는다. 그러나 정말 해야할 일에는 게으름 피우기 일쑤이다. 그러나 선교사는 똑같이 일을 하고도 누가 챙겨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정말 그분의 속마음을 알고, 그 사정을 아는 사람들 몇 사람이 알아줄 뿐이다. ‘비천한 종을 들어높이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위해 비천한 삶을 기꺼이 살고 있는 이 가난하고 비천한 선교사를 마침내 하느님 나라에서 높이 들어올려주실 줄 확신하며 또 영적으로 내다볼 수 있다.
다섯째, 뛰어난 모험심이다. 이분과 가까이 지내면서 놀라운 것은 나이나 육체적 조건에 걸맞지 않게 뛰어난 모험심을 갖고 계시다는 점이다. 2000년 대희년 여름에 교구 청년성서부에서는 로마 세계 청년 대회에 교구 대표로 참여하게 된 적이 있었다. 인원이 다 채워지지 않았을 때, 선교사님도 함께 가기를 원하여 자비 부담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로마의 여름은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더위였고, 많은 청년들이 계속되는 프로그램과 행군으로 지쳐 허덕였지만, 선교사는 정말 무서운 인내심과 기도의 힘으로 청년들과 모든 것을 함께 했으며 오히려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놀라운 것은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T.V.에 행글라이더나 수상스키 타는 장면 등이 나오면 도전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자주 표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겨울 스키는 청년들과 똑 같이 배워서 어느 정도 타는 수준까지 도달하시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분과 함께 살고 활동하면서, 중요하게 체험한 점은 성직자, 수도자의 삶이 참으로 무색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성직자 수도자는 그 제복과 교회내의 인정된 지위와 보장된 생활 등으로 인해 절박함도 간절함도 그리고 비천함도 배우기 어렵고, 몸소 실천하는 모범과 성실성은 아예 거리가 멀게 살아지는 경우도 우리는 많이 체험하고 있다. 몸보다는 손이나 입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우리 성직자 또는 수도자들에게 얼마나 쉽고 또 빈번한 것인가! 그러나 이 선교사는 제복에서 오는 보호막도 안정된 지위나 생활 수단도 없고, 권위를 찾을 거리조차 없지만, 항상 비천한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고 어렵고 힘든일을 몸소 실천하는 가운데,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그 삶의 모범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진정 하느님 나라는 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며, 주님께서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일이 많은 것이다’하신 말씀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과 스스로 부유하며 잘난 사람들을 비교하며 하신 말씀이 아닌가 한다. 나는 이글을 통하여 성직자 수도자의 고귀한 삶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현세에서는 내가 본당신부로서 또는 지도신부로서 모든 면에서 윗자리를 차지하고 명령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내세의 하늘나라에서는 분명히 이분이 나보다 윗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더 많이 고생했고, 더 많이 겸손했고 비천했으며, 더 많이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건강도 엄청 꼼꼼히 챙겨서 90살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으셨는데, 요즈음 안구 녹내장과 임파선에 문제가 제기되어 활동을 잠시 쉬고 계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의 기도에 힘입어 빨리 다시 전과 같은 활동력을 되찾을 수 있으시기를 기원한다. <끝>
글 : 수원교구 안산대리구 본오동 세례자 성 요한 성당
주임신부 전 합 수 가브리엘 신부 씀. (2007.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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