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수들의 모함과 예수님의 반격
-박상대신부-
예수님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그분의 발걸음은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을 향한 그분의 걸음이 빨라질수록 예수와 그 반대자들의 대립과 긴장은 고조된다. 적수들의 모함도 더 노골적이다. 그 가운데 예수님은 확실한 선택을 요구하신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며,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23절) 오늘 대립의 발단은 예수께서 사람을 언어장애자로 만든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면서부터 시작된다. 예수를 반대하는 자들은 예수가 마귀의 두목 ’베엘제불’의 사주를 받아 마귀를 쫓아낸다고 함으로써 예수의 능력을 격하시킨다. 베엘제불은 직역하면 ’집주인’이란 뜻이지만 ’오물의 신’으로 널리 쓰였다. 아마 유대인들이 이교도들의 신명(神名)을 경멸하려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대자들의 모함에 대한 예수님의 반격은 3단계로 진행된다. ① 마귀가 마귀를 쫓아낸다면 마귀세력의 내분(內紛)과 와해(瓦解)를 초래할 것이 뻔한데 아무리 마귀라 할지라도 그런 어리석은 일은 할 리가 없다. ② 예수가 마귀의 사주를 받았다고 주장한다면, 마귀를 쫓아내는 그 누구라도, 즉 바리사이파 사람들 자신들과 그 자식들까지도 마귀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만약 그들이 다른 어떤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낸다면, 예수의 능력 또한 마귀와 별개의 것으로 인정해야 함을 피할 수 없다. ③ 힘센 자의 무장을 해제하려면 그 보다 더 힘센 자가 요구되듯이, 마귀를 추방하는 데는 마귀 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능력이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며, 원문에는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기록되어 있다.
적수들의 모함에 대한 예수님의 3단계 반격은 결국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음"(20절)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하느님나라의 도래(到來)는 메시아의 도래로 실현되는 것으로서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기뻐 뛰고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며, 사막에 샘이 터지고 황무지에 냇물이 흐르는 때"(이사 35,6)이다. 따라서 벙어리 마귀의 구마는 메시아 도래의 상징적 행위에 속한다. 예수께서 벙어리 마귀를 구마(驅魔)하심은 곧 사람에게 인간본연의 품위와 자유, 하느님 말씀의 경청(傾聽)과 발설(發說)을 돌려주시기 위함이다. 이 일을 예수께서 하신다면 그는 하느님이시며, 그로 인해 이 땅에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한 것이다.(20절)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인정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 편에 서는 사람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음을 믿고 있다. 이 믿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그 어떤 힘도 하느님의 손가락을 능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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