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8년 2월 24일 사순 제3주일 가해

도구 Ludovicus 2008. 2. 24. 08:50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2월 24일 사순 제3주일 가해

제1독서 탈출기 17,3-7

그 무렵 3 백성은 목이 말라, 모세에게 불평하며 말하였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려고 그랬소?” 4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었다. “이 백성에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에게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
5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원로들 가운데 몇 사람을 데리고 백성보다 앞서 나아가거라. 나일 강을 친 너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거라. 6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다. 7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비하였다 해서, 그리고 그들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 해서, 그곳의 이름을 마싸와 므리바라 하였다.



제2독서 로마서 5,1-2.5-8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5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복음 요한 4,5-42

그때에 5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이르셨다. 6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7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다.
9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10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11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두레박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 12 선생님이 저희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까? 그분께서 저희에게 이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물론 그분의 자녀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16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17 그 여자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한 것은 맞는 말이다.
18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
19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20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21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22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24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25 그 여자가 예수님께,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 하였다. 2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27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아무도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또는 “저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하고 묻지 않았다. 28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29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 30 그리하여 그들이 고을에서 나와 예수님께 모여 왔다.
31 그러는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께 “스승님,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였다.
32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하시자, 33 제자들은 서로 “누가 스승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리기라도 하였다는 말인가?”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35 너희는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수확 때가 온다.’ 하고 말하지 않느냐? 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 이미 36 수확하는 이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알곡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씨 뿌리는 이도 수확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다. 37 과연 ‘씨 뿌리는 이가 다르고, 수확하는 이가 다르다.’는 말이 옳다. 38 나는 너희가 애쓰지 않은 것을 수확하라고 너희를 보냈다. 사실 수고는 다른 이들이 하였는데, 너희가 그 수고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39 그 고을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 여자가 “저분은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혔습니다.” 하고 증언하는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40 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자, 그분께서는 거기에서 이틀을 머무르셨다. 41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42 그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저녁에 붉게 물든 태양과 한 낮의 밝음을 전해 주는 태양은 색깔이나 또 모양도 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일몰 직전의 태양은 가짜고 한 낮의 태양만이 진짜 태양일까요?

또 가을이 되면 숲은 고운 단풍으로 물들게 됩니다. 그나마도 좀 더 지나면 볼품없이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게 되지요. 그렇다면 봄날의 푸름과 여름의 무성한 나뭇잎을 가지고 있는 나무만 진짜 나무고, 고운 단풍으로 물든 나뭇잎과 나뭇잎이 떨어진 나뭇가지만 남은 나무는 가짜 나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또 다른 한 가지 예를 들어보지요. 여기에 시든 꽃이 한 송이 있습니다. 이미 시들었다고 해서 이 꽃에게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처럼 지금의 겉모습만으로 ‘진짜다, 가짜다’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지금의 겉모습으로만 쉽게 판단하고 단죄할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과정 안에서 아픔과 상처를 안고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금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 민족은 남북으로 분열되어서 남쪽에는 유다 왕국이 섰고 북쪽에는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남 유다의 수도는 예루살렘이었고, 북 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였지요. 이렇게 서로 반목하면서 살다가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 후 남 유다는 북 이스라엘이 이방인과 이방신을 받아들여서 혈통과 순수성을 잃었다고 하면서 배격을 하지요. 그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름길인 사마리아를 거치지 않고 요르단강 동쪽으로 돌아서 다녔던 것이지요.

따라서 사마리아 지방으로 들어선 예수님의 행동도 이해할 수가 없으며, 사마리아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자도 아닌 여자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깜짝 놀랄만한 큰 사건이 아닐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이 여인은 말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큰 스캔들을 일으킬만한 행동을 하실까요? 바로 예수님께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 그 자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문화적 요소와 규칙만을 중요하게 여겼지요. 그러다보니 세상의 기준인 돈과 명예에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 그 자체가 중요하기에 겉으로 보이는 관습과 규칙에서 자유로우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이 여인에게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바로 예수님께 드리는 호칭의 변화로 드러나지요. 처음에는 ‘선생님’으로 불리다가 ‘예언자’로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메시아’로, 결국 예수님 앞에 ‘세상의 구세주’라는 호칭으로 확대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알아가는 여인이었습니다. 율법에는 세 번까지 재혼할 수 있다고 되어있기에, 남편을 다섯이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죄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정오에나 물을 길을 만큼 숨어 지내던 여인이었지요.

사실 자신의 죄를 숨기려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이 여인은 변화되어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들을 이끌어 그들도 예수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고백하게끔 만듭니다.

겉모습이 우리에게 참된 삶을 건네주지는 않습니다. 진짜라고 생각되는 그것이 바로 거짓 그 자체일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알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들 역시 사마리아의 이 여인처럼 세상에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기.



혀를 사용하는 법(박성철, ‘행복비타민’ 중에서)

신은 세상에 인간을 만들면서 무척이나 고민을 하였습니다.

어떤 부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던 신은 천상의 신하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자네가 가서 양쪽에 날이 있는 칼 하나를 구해 오게나. 그리고 사랑을 담은 약과 독약을 준비해 오게.”

천상의 신하는 그것을 준비하여 신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신은 양쪽에 날이 있는 칼에다가 한쪽에는 사랑의 약을 다른 한쪽에는 독약을 발랐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신은 사람의 입을 벌려 혀를 만들었습니다.

천상의 신하가 보기에 흉하다고 말을 하자 신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더니 신은 성질은 그대로 둔 채 모양만 칼이 아닌 말랑말랑한 살로 만들었습니다.

천상의 신하가 물었습니다.

“어째서 혀에다가 그것을 넣어 두십니까?”

신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지.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것은 무서운 흉기가 되기도 하고 유용한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네.”

신은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혀는 칼날과 같아서 상대방을 찌르고 피투성이 상처를 내는 독약 같은 것이네. 반면에 이것을 잘 사용하면 의사도 고칠 수 없는 마음의 병을 고치기도 한다네. 상처 난 가슴을 치유하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 문제는 스스로가 어떻게 그 혀를 사용하는가라네. 나는 인간들이 그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칼의 형태로 만든 것이라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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