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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2월 7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독서 복음묵상

도구 Ludovicus 2007. 12. 7. 06:40

 

 

 

 

 

 

12월 7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독서 복음묵상

 

독서 이사 29, 17-24

좋은 나라의 조건, 혹은 좋은 도시의 조건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세계적으로 부정부패가 가장 적은 나라는 들자면

많은 사람들이 싱가포르를 들곤 합니다만

국민이 잘 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주제연설에서 싱가포르의 고촉동 전총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더욱 잘 사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두 가지가 뭔가 하면 깨끗한 화장실과 좋은 음악이다.’

국민들이 쾌적한 공중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

국민들이 음악을 즐겨듣게 하는 것,

그것이 보다나은 사회를 향한 조건이라는 얘기였습니다.


이 말은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공약과는 많이 다르지요.

하지만 생각해보면은 그 어떤 공약보다

실속이 있어 보입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어딜가나 깨끗한 화장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만큼 그 나라가 맑고 여유있게 산다는 얘기겠지요.

그리고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의 여유를 말해줍니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여유가 있고

미소가 넘치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은

사실 그 어떤 약속보다 알찬 약속일텐데요,

싱가포르에는 육교에 꽃이 심어진 걸로도 유명하지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평화로울 수 있도록 배려해 놓은 것,

그것은 단지 도시 미관의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면은

그 효과는 무척이나 크겠지요.


나라의 정책을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고려하고

사람의 정서를 생각하는 정책이 최고는 아니지만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는 메시아가 오시는 그날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하느님 앞에서 흥겨워하고

불의를 일삼던 폭군이 사라지게 됩니다.


복음 마태 9, 27-31

최근 멘토라는 말이 여러 곳에서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멘토의 부재에서 오는 것으로

풀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멘토는 고대 그리스 신화 오디세우스에서 유래된 용어로

그리스의 왕인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가장 믿을만한 친구에게

맡기고 떠나게 됐는데 그의 이름이 멘토였습니다.


멘토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십여년동안

왕자의 친구, 교사,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봐줬는데

이후에 멘토라는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사람의 의미로 사용돼왔습니다.

삶 속에서 믿고 싶고 따르고 싶은 인물의 대명사처럼 말이지요.


언젠가 한 교육학자가 쓴 글에서

부모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내 아이가 잘 자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아이 앞에 멘토로서 살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교육하는 사람이 가장 고민해야 할 문제인것 같은데

교육만이 아니지요.
선배는 후배에게 또 동료에게

따르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곳,

바로 지금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과

관심을 두어야 할지 돌아보는 땝니다.


다리를 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

그리고 말 못하는 이들을 고쳐주시고

측은지심으로 돌보셨던 예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는 우리 삶 전체의 희망이자

진정한 멘토, 구원자이십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저희와 대화를 하시고 싶어 합니다.

날마다 복음을 통해서 우연히 보는 신문기사나

식당에서도 저희에게 이야기를 걸어오시고

대화를 하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님 

하지만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때

예수님보다 저희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혹은 가족들과의 대화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람에게 자랑도 하고 칭찬도 듣고 싶어합니다,


예수님 

반대로 저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면

저희는 언제 그랬느냐느는 식으로

성서를 읽고 기도를 하며 작은 것 하나에서조차

주님의 표징과 기적을 찾으려고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기다리곤 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평생 아무런 걱정이나

문제거리가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넘어지지 않을 정도의 시험이나 걱정에서 살아가는 것이

축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 

시력을 회복시켜 달라고 막무가내로 소리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간청하는

앞 못보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눈 먼 이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청했을 때

당신은 그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저희도 저희 생각보다 먼저 와계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확고한 믿음으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주님과 동행하며 대화를 이어가게 하소서

아멘.

 

- 평화방송 기쁜소식 밝은세상에서 -

 

 

 

 

출처 :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
글쓴이 : 요하네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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