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간 수요일>(2010. 2. 10. 수)(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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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사람 안에서 나온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예로 음식에 관한 율법 규정을 말씀하십니다.
이 복음 말씀을 해석할 때,
예수님이 단순히 음식에 관한 구약 율법을 폐지하신 것으로만 생각하거나
음식 논쟁에 종지부를 찍으셨다고만 해석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음식에 관한 구약 율법을 폐지하셨다고 한다면,
사도들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그리스도 교회에서 음식에 관한 율법은 전혀 폐지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여전히 음식에 관한 율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저는 무엇이든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도행전 10,14)
예루살렘 사도회의 결과를 적은 공문을 안티오키아 교회에 보낼 때,
그 공문에도 음식에 관한 규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회의에서 먹을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은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였습니다.
이것은 구약 율법에 비하면 대폭 완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음식 규정은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회의 결과는 이방인 출신 신자들에게 적용된 것이고,
당시 유대교 출신 신자들은 대부분 음식에 관한 율법을 계속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들은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 모든 음식은 먹을 수 있다.’ 라는
마르코복음 7,19의 예수님의 가르침을 못 알아들은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면, 복음 말씀 해석을 다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음식을 예로 든 것은 글자 그대로 ‘예’로 든 것입니다.
‘모든 음식은 깨끗하니까 아무 것이나 다 먹어라.’ 라고 명령하신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분명히 예수님 당신 자신도 끝까지 돼지고기는 잡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음식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죄’에 관한 가르침으로 해석됩니다.
다시 말해서 ‘죄의 책임’에 관한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와를 유혹하고, 하와는 아담에게 권하고,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함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아담은 ‘여자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핑계를 대었고,
하와는 ‘뱀 때문에’ 라고 핑계를 대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와 뱀 모두에게 벌을 내리셨습니다.
뱀(사탄)에게는 인간을 유혹한 죄의 책임이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자기들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이 있었습니다.
유혹을 받았다고 해서 죄를 지은 사람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습니다.
물론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것은 더 큰 죄입니다.
배반자 유다도 사탄의 유혹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배반의 책임은 사탄이 아니라 유다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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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음식 문제로 돌아가서,
예수님은 음식에 관한 율법을 폐지하셨지만,
아무것이나 마음대로 먹어라, 라고 하지는 않으셨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일단, 금요일에는 고기를 먹지 말라는 교회법이 있습니다.
구약 율법과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어떻든 음식에 관한 규정입니다.
(평소에 고기를 별로 먹지 않는 저에게는 금육재 규정이 있으나 마나인데,
어떻든 그래도 금요일에는 고기 먹는 일을 피하고 있습니다.)
이웃에게서 빼앗은(훔친) 음식은 먹을 수 없습니다.
좀 넓게 생각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굶고 있는데, 배 터지게 먹는 것,
뇌물, 또는 부정부패, 횡령으로, 또는 탈세로 돈을 챙겨서 배 터지게 먹는 것,
그런 음식은 모두 죄가 되는 음식입니다.
또 한 가지, 정력 강장제라고 하나... 몸보신한다고 먹는 것들...
국가의 법으로 금지된 것들을 먹는 것은 역시 교회에서도 죄로 봅니다.
법을 생각하기 이전에, 명색이 신자들인데,
몸보신 한다고 야생 동물들을 먹는 것은 신자로서 너무 보기 흉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는 예수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모든 음식은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바로 어떤 상황이냐, 어떤 마음가짐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안에서 나온다는 예수님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음식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만물이 그 자체로는 ‘선’입니다.
하느님은 악한 것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들이 악한 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악한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병자들을 치료하는 목적으로만 사용되면 원자력은 분명 선한 것인데,
그걸 무기로 사용하면 아주 나쁜 ‘대량 살상 무기’가 됩니다.
마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에서 진통제로 사용하면 선한 것입니다.
사진, 영화, 비디오 등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에는
분명히 포르노 업자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뭔가를 너무 많이 했을 때 ‘중독’이라는 말이 붙는 것들,
대부분 그 자체로는 선한 것인데,
너무 지나치게 남용하거나 오용을 해서 악한 것으로 변하는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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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양심이 떳떳하다고 해서 아무것이나 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 행동이나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시 판단 기준은 ‘사랑’입니다.
초대 교회 시절,
음식에 관한 율법은 사도들에게는 무척 골치 아픈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도 그런 문제로 회의를 했지만
바오로 사도도 그런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런 절충안을 내놓았습니다.
“...... 여러분 앞에 차려 놓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으십시오.
그러나 누가 여러분에게 ‘이것은 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 하고 말하거든,
그것을 알린 사람과 그 양심을 생각하여 먹지 마십시오.
내가 말하는 양심은
여러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입니다.”(1코린 10,27-28)
이것은 이웃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교를 비롯해서 몇 몇 종교는 돼지고기 같은 것을 먹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초대해서 돼지고기를 대접한다면, 또는 보는 앞에서 먹는다면...?
그것은 이웃 사랑을 거스르는 죄가 됩니다.
우리가 왜 남의 종교 율법까지 배려해 주어야 한단 말인가?
라고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도 우리의 이웃입니다.
이웃이라면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었나?
그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원론이라면,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은 실무 지침 정도가 될 것입니다.
어제 강론에서도 말한 것처럼
모든 행동의 첫 번째 판단 기준은 ‘사랑’입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냐, 아니냐?
사랑을 거스르는 음식이라면, 그 음식은 먹을 수 없습니다.
만일에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어떤 누군가를 착취해서 얻은 음식이라면...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음식이라면... 그것은 먹을 수 없는 음식입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그 자체로는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고통을 준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몰랐다는 말은 변명일 뿐입니다. 무관심도 죄입니다.
결론 - 내 양심이 떳떳하다고 해도... ‘사랑의 법‘이 먼저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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