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버스 기다리고 150분 버스에 갇혀 있고 170분 추위 속에 걷고 …
[본지 박승희 기자의 7시간40분 출근기]
버스도 멈췄다 버스가 30분째 제자리걸음을 했다. 공교롭게도 손에 든 책은 앤서니 기든스의 『기후변화의 정치학』. 기든스는 후진국들의 ‘개발의 절박성’이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노력을 더디게 한다고 적었다. 내겐 ‘출근의 절박성’에 슬슬 불안감이 엄습했다. 넘겨야 할 기사, 야근 등의 일정이 머리를 스쳤다. 스노 체인도 없이 끌고 나온 승용차들이 미끄러져 도로를 가로막았다. 작은 언덕길조차 못 올라가고 낑낑대고 있었다. 버스 안이 자가운전자들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눈이 승용차를 가두고, 승용차들은 버스를 가뒀다. 내렸다. 걸었다. 버스보다 내가 더 빨랐다. 하지만 30분을 걷다 보니 너무 추웠다. 버스들이 슬금슬금 움직이는 기색이다. 다시 앞선 5000번 버스에 올라탔다. DMB 폰을 켰다. 고속도로 위 끝없이 밀려 있는 차들이 보였다. 다시 내렸다. 지하철을 타야 했다. 눈 맞으며 걷다 제일 가까운 역은 분당선 보정역이었다. 5500-1번을 올라탔다. 기사가 말렸다. 여기서 30분째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20분을 버텼다.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내렸다. 걸었다. 버스마다 사람들이 내려 행렬에 가담했다.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난다는 학생들이 승합차에서 내려 걷고 있었다. 가이드가 일단 보정역에서 집결하라고 했단다. 트렁크까지 끌고 가는 모양새가 흡사 60년 전 피난민을 방불케 했다. ‘더 로드’의 묵시록 같은 정경이었다. 전화로 자신의 처지를 알린 뒤 사람들은 자포자기한 심경으로 웃고 있었다. 반갑다 지하철 2시간쯤 걸었을까. 땀이 흘렀다. “덥네 더워.” 마침내 역 간판이 보였다. 역은 승객들로 붐볐다. 콩나물시루 같았지만 그나마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사람들은 아직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축복을 받았다. 수서역에 잠깐 내려 끼니를 때운 걸 포함해도 ‘불과’ 두 시간 만에 회사에 도착했다. 지쳤지만 기뻤다. 오늘은 회사 시무식이 열린 날이다. 2010년 1월 4일 내 시무식은 폭설 속에서 치렀다. 박승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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