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간 목요일>(2009. 11. 19. 목)
<예루살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멸망을 예고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루살렘 멸망이란 사실상 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미 정치적으로는 망한 상태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예고는 종교적인 멸망에 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지만,
종교적으로는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면서 종교적인 독립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도 잃게 됩니다.
로마 정부가 유대인들을 그들의 고향에서 모두 쫓아내버린 것입니다.
탈출기 이후로 줄곧 하느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셨다고 자랑했던
그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 것, 그것이 예루살렘의 멸망입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고향 땅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의 특권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이천 년 전에 있었던 그 일이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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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예언과 경고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유효합니다.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신 때를 알지 못한다면...“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도 유대교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부패하고 타락하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종교는 중세기 때 이미 망할 뻔 했습니다.
그래도 위대한 성인 성녀들이 나타나서 교회를 살려냈습니다.
살아계신 성령께서 교회를 지켜주셨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분열된 것은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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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대인들이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아서,
그리고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배척했기 때문에 망했다고 표현합니다.
실제 역사를 보면 그런 이유로 망한 것은 아니고
로마제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하다가 패해서 망한 것입니다.
만일에 독립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망하지 않았을까요?
그건 모를 일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과거 역사가 아니라,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인류 역사에서 멸망해버린 제국이 어디 한두 개입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멸망한 도시가 어디 한두 개입니까?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었다가 되찾았다가 다시 잃었다가...
그런 일들도 여러 번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멸망 자체가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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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예수님의 예언대로 멸망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멸망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라는 정도로 강론을 마치면 참 편하고 좋겠습니다.
그러나 뭔가 자꾸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남들은 그러다가 망해도 그만?? 남들이야 망하든지 말든지... 일까?
예수님의 예언과 경고를
유대교라는 한 종교나 예루살렘이라는 한 도시에 관한 것으로만 생각하면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그냥 그랬나보다, 하면 그만입니다.
오늘날 우리 종교는 그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라고만 생각하면
그것도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만 정신 차리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예언이 어떤 특정 종교나 민족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향한 것이라면?
참 평화를 알지 못하고,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각자 자신의 이기주의에 사로잡혀서 살고 있는 인류 전체에 대한 경고라면?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장면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라자로의 무덤 앞에서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해석할 때 인간의 처지를 안쓰러워하시는 눈물이라고 해석합니다.
친구 라자로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전체 인간에 대한 안쓰러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멸망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 전체의 모습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종말이 오고 최후의 심판이 시작되면
누군가는 구원을 받고 누군가는 멸망하겠지만
예수님께서는 단 한 사람도 잃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에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가는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다면
그 몇 사람 때문에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그 몇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눈물은 지금 나 때문에 흘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떠납니다.
루카복음에서,
아버지가 작은 아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갔습니다.
큰아들은 토라져서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큰아들도 집 나간 작은 아들과 같은 모습이 된 것입니다.
바로 그런 모습,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자만심에 빠져서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신앙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하느님 자체를 외면하고 있고...
과연 몇 사람이나 최후의 심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예수님의 눈물은 ‘나’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만 생각하고, 나밖에 모르는 나,
그 ‘나’를 향한 눈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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