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강론.묵상

[스크랩] 연중제23주일(090906)

도구 Ludovicus 2009. 9. 6. 08:15

<연중 제23주일>(2009. 9. 6)

 

<에파타!>

 

전에 보좌신부 시절에 중이염을 앓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며칠 동안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불편함을 체험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청각 장애를 체험한 것입니다.

 

제일 불편했던 것은 역시 미사 때.

예를 들면,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라고 인사했는데,

신자들에게서 응답이 들려오지 않아서 당황하기도 하고...

 

처음 신학교에 입학해서 첫 성주간 때,

전체 신학생이 성삼일 사흘 동안 연속으로 대침묵을 지켜야 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밥을 먹을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대침묵을 지켰습니다.

입에서 소리가 나오는 때는 미사 때 기도를 하거나 성가를 부를 때뿐이었습니다.

 

그 사흘은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재미 있었던 것 같았는데,

마지막에는 온 몸 마디마디가 다 쑤시고 아플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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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장애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 못할 때,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할 때,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체험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것을 말하지 못해서 병이 난 이발사 이야기는

절대로 과장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거 군사 독재 시절에 언론의 자유를 잃고 살아갈 때...

그때 유행했던 노래가 '백치 아다다'였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큰 고통입니다.

그 당시 우리들은 신문의 행간을 읽느라고 머리를 써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기자들이 암호처럼 기사 속에 숨겨 놓은 말들을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미국의 타임지나 뉴스위크지는

검열당국에서 새까맣게 먹칠을 한 다음에야 시중에서 판매될 수 있었습니다.

그 먹칠이 되어 있는 기사를 해독하느라고 고생 좀 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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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이라면 하느님의 말씀을 즐겨 들어야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종교박해도 없으니

누가 강제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막는 일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자신의 귀를 하느님쪽에 기울이지 않고

세상쪽으로만 기울이고 있으니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 진짜 기쁨을 주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순간적으로 지나가버릴 즐거움이나 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프로야구 중계를 즐겨 보고 있는데,

그 중계를 보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 공부도, 강론 준비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시합이 다 끝나고나서야, 그때서야 서두르기 시작합니다.

신부라는 사람이 이 모양이니...

 

그나마 연속극에 빠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전에 언젠가 한 번은 교구 사제단 연례 피정 기간과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 기간이 겹친 적이 있었습니다.

프로 야구 때문에 피정을 망칠 뻔 했습니다.

저녁마다 야구를 좋아하는 신부들이 모두 모여서 티브이 중계를 보았거든요.

 

전에 어떤 본당에서 저녁마다 구역미사를 다니는데,

그때 정말 인기 있었던 연속극이 있었습니다.

제목이 '사랑이 뭐길래' 였나?

 

그 드라마가 시작하는 시간과 구역미사 시간이 같았습니다.

할머니들이 저에게 부탁했습니다.

연속극을 먼저 보고나서 미사를 드리면 안 되겠느냐? 라고.

 

저는 미사 준비를 다 해놓고선, 할머니들과 함께 연속극을 보았고,

그게 끝난 다음에... 밤 아홉시에 미사를 시작했습니다.

 

옛날 프로 권투가 아주 인기가 많았던 시절에,

권투 중계 때문에 신자들이 저녁 미사에 안 오니까

어떤 신부님은 아예 성당에 티브이를 설치하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그런 일들은 그냥 웃고 지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심각한 문제는...

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일들입니다.

 

이단 사상이나 사이비 종교에 현혹되는 일들,

인정 받지 못하는 사적 계시에 귀를 기울이는 일들,

죄가 되는 일들에 빠져서 귀가 아주 닫혀버리는 일들...

 

하느님 말씀에 자주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그 말씀을 듣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다른 데로 향하고 있는데도

하느님의 말씀이 저절로 들리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귀을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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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전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입과 혀는 말을 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침묵은 금이 아닙니다.

침묵은 죄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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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하느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무엇이 하느님 말씀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악마의 소리와 하느님 말씀을 구별하게 해줍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도 먼저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나섰다가는

자기 말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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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성경, 강론, 강의, 기도, 묵상 등의 방법으로...)

우리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뿐입니다.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고, 귀를 기울이면 누구나 들을 수 있습니다.

 

들었다면, 전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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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송영진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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