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간 금요일>(2009. 9. 4. 금)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에는
언제 이 훈련이 끝나나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때에는 이등병 계급장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훈련소를 떠나는 날, 인솔 조교가,
다시 오지 않을 곳이니 연병장과 내무반을 한 번 돌아보라고 할 때에는
왠지 떠나기 싫다는 느낌이 불쑥 들었습니다.
전방의 낯선 곳으로 가야 한다는 두려움과
훈련 기간 동안 그런대로 정들었던 곳을 떠난다는 아쉬움.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던 훈련소인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병장 말년 시절은 참 편하고 좋았습니다.
그러니 만기 제대를 하고 집에 갈 날이 가까워질수록
뭔가 미련이라고나 할까, 아쉬움이라고나 할까,
그런 감정들이 조금씩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초조하게 제대 날짜만 기다렸었던 것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신학교를 졸업할 때에도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신부가 되어서 한 본당에서 다른 본당으로 떠날 때에도 그랬습니다.
벌써 열 번째 인사이동을 겪었습니다.
정들었던 곳을 떠나는 것은 늘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마치 인사이동 명령을 받고 떠나듯이...
과연 그때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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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구약시대의 신앙생활에 젖어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새로운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옛날 방식이 더 좋다고, 옛날식대로 살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새로운 생명을 원한다면 있던 곳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정들었던 생활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떠나지 않으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이란 항상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나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을 몰랐던 시절의 삶을 버리고,
예비신자 시절의 삶을 버리고,
새 영세자라고 불리던 시절의 삶을 버리고,
계속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은 어제와 달라야 하고, 내일은 오늘과 달라야 합니다.
그냥 다른 것이 아니라 새롭게 달라져야 합니다.
그것이 곧 회개입니다.
회개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면
이제 막 시작한 사람보다 더
예수님의 새로운 기운으로 충만해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만일에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덜한 사람보다 더 낡아져 있다면
그건 신앙생활을 잘못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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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율법 중심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고
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일에 정성을 다 쏟았습니다.
기쁨은 없었습니다.
숨 막힐 정도로 엄숙하고 엄격함만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약시대는 사랑과 기쁨 중심의 신앙생활입니다.
얼마나 더 사랑하느냐? 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기쁨이 삶의 중심에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일도 사랑하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고,
그것을 지키는 과정에서 기쁨을 얻기 때문에 지킵니다.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신앙생활에 기쁨은 없고 지옥에 가지나 않을까, 라는 두려움만 있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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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고,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러 오셨습니다.
그것은 세속의 재미나 즐거움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가 다니는 본당이 재미없다고 험담하는 사람들을 보면
비신자 시절의 삶을 버리지 못하고
비신자 시절에 살던 모습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을 흔하게 봅니다.
모여서 기도하는 것은 재미없고, 모여서 술 먹고 노는 것은 재미있고,
성가는 재미없고, 유행가는 재미있고,
미사는 재미없고, 음악회는 재미있고,
성경책은 재미없고, 월간 잡지는 재미있고,
묵주기도는 재미없고, 티브이 드라마는 재미있고...
정말 그렇게 여긴다면 신앙생활을 아주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지오 회합이 끝난 뒤에 술집에서 이차 모임을 하면 재미있다고 하고,
그냥 집으로 조용히 흩어져 가면 재미없다고 하고...
그런 것을 불평한다면 차라리 레지오에서 빠지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꾸는 새 포도주입니다.
우리의 삶이 낡은 모습을 버리지 못한다면
새 포도주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정들었던 것, 익숙한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지 않으면
예수님의 새로운 정신, 새로운 생명력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저 앞에서 걸어가고 계신데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들, 낡은 삶을 버리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면서
예수님보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시라고 소리치는 모습...
다 버리면 홀가분하게 빈 몸이 되어 쉽게 따라갈 수 있는데,
지라는 십자가는 질 생각도 하지 않고,
버려야 할 세속의 잡동사니들은 아까워서 움켜쥐기만 하는 모습...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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