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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중제22주일(090830)

도구 Ludovicus 2009. 8. 30. 09:33

<연중 제22주일>(2009. 8. 30)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전에 한 번은 서울의 어떤 신자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리를 가르치던 수녀님이 영성체에 관해서 가르치면서

성체를 받아먹을 때에는 절대로 씹어서 먹으면 안 되고

꼭 침으로 녹여서 먹어야만 한다고 강조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성체를 깨물거나 씹어먹으면 무슨 큰 죄나 되는 것처럼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신자분이 질문했답니다.

신부님들은 성체를 씹어먹지 않느냐? 라고.

그랬더니 신부님들도 절대로 성체를 씹어서 먹지 않는다고 대답하더랍니다.

그 신자분이 저에게 질문한 것은

신부님들도 침으로 녹여서 성체를 삼키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그 수녀님은 아마도 영성체는 경건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그렇게 가르쳤던 것이라고 짐작하기는 하는데,

그런 것도 교리라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일까???

 

저는 신부가 된 후에 지금까지 침으로 녹여서 삼킨 적이 없습니다.

사제용의 큰 성체는 그렇게 삼킬 수가 없습니다.

다른 신부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성체를 녹여서 삼킬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가능하면 그렇게 녹여서 삼키면 좋겠지만,

안 되면 그냥 음식을 먹듯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죄 짓는 것처럼 표현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그렇게 하면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 그것이 더 잘못입니다.

 

그런 것도 교리라고 가르치는 것은 진짜 바리사이파의 모습입니다.

 

성체를 받을 때 왼 손을 위로 하고 오른 손을 아래로 해서 받고,

받은 다음에는 오른 손으로 집어서 먹으라고 가르치기는 하는데,

그게 무슨 율법도 아니고,

사정이 있다면 손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 건 교리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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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고해를 하는 어린이들을 보면

고해성사 보는 방법을 외우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고해성사를 보는 방법이 아니라

통회하는 마음이어야 하는데,

그 순서를 외우느라고 무엇을 고백해야 할지 잊어버립니다.

무엇을 뉘우쳐야 하는지도 생각을 못합니다.

 

기도서의 그 복잡한 고해성사 양식,

저도 그걸 지킨 적이 없습니다.

그걸 그대로 지키라고 신자들에게 말한 적도 없습니다.

판공시기에는 필수적인 것 외에는 다 생략하라고 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제까지

기도서에 나와 있는 그 복잡한 양식대로 고해를 하는 신자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옛날 식으로 고해를 합니다.

사실 그게 더 편하고 실용적입니다.

실제 고해성사에서는 기도서에 있는 양식을 사용할 여유도 없습니다.

 

껍데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신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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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의 복음 말씀 내용의 핵심이 그런 것입니다.

껍데기 때문에 본질을 잊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

 

절차를 중시하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

전통을 강조하다가 하느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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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기도를 바칠 때,

기도를 하다보면 성모송을 열한 번 할 수도 있고, 아홉 번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게 그렇게 큰 잘못입니까?

정신이 딴 데 가 있어서 그런 실수를 했다면 딴 생각을 한 것이 잘못이긴 합니다.

그런데 정신을 집중해도 그런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성모송 열 번을 바치지 않고 다음 단으로 넘어간 것이

그렇게 큰 죄가 되는 사항입니까?

그게 큰 죄나 되는 것처럼 교리를 가르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어떤 분이

저에게 말해준 실화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 라고 따져 묻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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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비판하셨던 바리사이파의 모습들이

오늘날 천주교 안에도 많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런 것에 숨막혀 합니다.

 

기도나 전례 뿐만 아니라

제도나 조직에서도 그런 문제들이 많이 보입니다.

 

근본 정신을 잃으면 형식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왜 목욕을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면 그건 그냥 물장난입니다.

기도의 뜻을 모르면 그건 시간낭비가 됩니다.

전례의 뜻을 모르면 세속의 제사와 다를 것이 없게 됩니다.

형식주의, 율법주의가 종교를 죽입니다.

 

우리 종교의 근본 정신은 사랑에 있습니다.

그 사랑은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그 기쁨은 우리를 자유인으로 살게 합니다.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로 자유와 기쁨을 뺏지 말아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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