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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중제16주간목요일(090723.목)

도구 Ludovicus 2009. 7. 23. 11:59

<연중 제16주간 목요일>(2009. 7. 23. 목)

 

<깨달아야 한다는 것>

 

만일에 갓난 아기가 날이 시퍼렇게 선 부엌칼을 가지고 놀고 있다면,

부모님들은 놀라서 그것을 빼앗을 것입니다.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설명할 틈도 없고,

설명한다고 해도 알아들을 수도 없기 때문에 일단 뺏고 보는 것입니다.

그건 그 갓난아이를 위한 것입니다. 일단 뺏는 것이 사랑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따먹으면 죽는다, 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설명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따먹게 됩니다.

하느님보다 사탄의 말을 더 믿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홍수가 날 것에 대비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비올 조짐도 없고...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만 묵묵히 따릅니다.

바로 그것이 믿음입니다.

당장에 이해가 안되어도,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순명하고, 기다리는 것...

 

하느님의 사랑을 믿으면 깨닫게 될 때가 오지만,

믿지 못하면, 계속 이해하지 못한 채, 하느님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이나 노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지만,

나는 한 번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고 따질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 이야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끝부분의 요셉 이야기.

요셉 입장에서는 원통하고 억울하고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도대체 내 인생이 왜 이러냐, 라고 했을 것입니다.

형들의 음모에 빠지고, 노예로 팔려 가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그 과정에서 하느님께서 요셉에게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도대체 내 인생이 왜 이러냐, 라고... 억울하고 원통하고 기가 막힌 인생...

잘못한 것도 없는데 병에 걸리고, 사업에 실패하고, 기타 등등...

 

요셉은 나중에 그 모든 일들이 다 하느님의 섭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민족을 살리기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었다고...

 

우리도 언젠가는 그렇게 깨달을 때가 올 것입니다.

 

누군가는 또 따질 것입니다.

그건 요셉이 임금 다음 자리까지 출세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아니냐? 라고...

나는 출세는커녕 하루 세 끼 밥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그렇게 따지는 사람에게 특별히 대답해줄 말은 없습니다.

요셉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 세월이 꽤 길었다는 말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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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든 자녀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압니다.

철이 덜 든 아이들은 이해가 안되면 무조건 떼를 쓰게 됩니다.

부모님 말씀을 안 듣고 자기 고집과 자기 욕심만 부리는 것,

그것이 철이 덜 든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도 그런 식입니다.

철이 덜 든 신앙인은 자기 기준으로만 이해하려고 하고,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면 무턱대고 떼를 씁니다.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과 떼를 쓰는 것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종파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설교를 하더랍니다.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집이 보이고, 그 집을 갖고 싶다면 기도하라고...

날마다 그 집 대문을 붙잡고서

'하느님, 이 집을 저에게 주십시오.' 라고 열심히 열심히 기도하면

언젠가는 그 집을 갖게 될 것이라고...

 

더 말 할 것도 없이 그건 사이비 종교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시간에 일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백배 낫습니다.

왜 남의 집을 하느님의 힘으로 뺏으려고 합니까?

그건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도는 어떻습니까?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것은 아닙니까?

멀쩡한 남의 집을 자기가 갖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것처럼,

갓난 아기가 칼을 가지고 놀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것처럼,

독약인데 보약인줄 알고 먹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것처럼

그렇게 떼를 쓰는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걸 어떻게 식별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담에게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분명한 명령이 있었지만,

나에겐 그런 명령이 없었다, 라고... 그러니 나는 그냥 내 기도를 할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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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별 방법이 왜 없습니까?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기도를 하는지 여부입니다.

둘째는, 기도하면서 기쁨을 느끼는지 여부입니다.

셋째는, 그 기도의 지향에 이웃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이미 받은 은총을 깨닫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른다면

다른 것을 더 청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입니다.

청원의 기도를 하기 전에 먼저 감사기도를 할 일입니다.

묵주기도 9일기도 책을 보면 청원의 기도를 한 다음에 감사기도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

저는 그 순서를 바꿀 것을 권합니다.

감사기도를 먼저 바치고 청원의 기도는 나중에 바치든지, 생략하든지...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효도의 첫걸음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것이 신앙의 첫걸음입니다.

그냥 맨날 달라고만 하고, 받은 것은 고마워할 줄 모르면...

정말 그건 철이 덜 든 것입니다.

 

기도는 기도 자체에 기쁨이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속터지는 느낌만 받는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슬플 때, 억울할 때, 괴로울 때... 등등...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기도 자체에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사형 당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기도하면서 기쁨과 위안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기쁨은 없고 답답하기만 하다고요?

그럼 감사기도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지향에서 이웃이 빠져 있으면 그건 이기적인 욕심으로 그칠 것입니다.

사업이 잘 되도록 기도하면서, 이웃이야 망하든지 말든지... 라는 마음이라면,

차라리 기도하지 마십시오,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면서, 남이야 죽든지 말든지.. 라는 마음이라면,

그냥 아픈 채로 있는 것이 낫습니다.

자신이 건강하게 퇴원하기를 바란다면 다른 병자의 퇴원도 기도해야지요.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 나만을 위한 것인지 모두를 위한 것인지,

우리는 항상 그 점을 반성, 성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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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덜 든 사람은 부모를 피곤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합니다.

죄는 짓지 않더라도 철이 덜 든 신앙인은

아마도 하느님을 피곤하게 하고

수호천사도 수호성인도 피곤하게 만들 것입니다.

 

믿음은 감사함이고,

믿음은 기다림이고,

믿음은 기쁨입니다.

 

자기 인생이 자기 뜻대로 안 되더라도

우선 먼저 할 일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 하느님의 사랑을 먼저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내가 바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자기가 바라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일 수는 없습니다.

그건 그냥 자기 혼자 바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여쭤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만 내세우면서,

하느님을 의심하고,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는 신앙인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과 자기를 비교하면서 억울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내실 때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하느님께는 내가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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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r.송영진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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