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메시아이시다’라는 사실이 온 천하에 선포되어 분명하게 밝혀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요한의 출중한 증언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사실상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던 요한은 맡은바 자신의 역할을 온전하게 수행한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대한 증언을 통해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그들이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명확하게 제시해 준 믿음의 길잡이였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에 관해서 증언한 첫 번째 내용은‘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증언한 하느님의 어린양은‘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십니다(1,29). 그 같은
증언은 죄로 얼룩진 세상을 정화시킬 메시아에 관한 에세네파 사람들의 전승과 승리자
어린양에 관한 묵시 문학적인 전승을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요한이 예수님을‘하느님의
어린양’이라 칭한 것은 그분이 파스카 어린양이시며 하느님의 종이시라는
사실을 표명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그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가야 할 최종 지점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자기 제자들에게 그분께 다가가 그분을 메시아로 맞아들이도록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승의 안내를 받아 예수님께 다가가게 될
요한의 제자들은 죄로부터 인간과 세상을 해방시키실 메시아를 만나게 됨으로써 새로운
삶을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라고 외친 안드레아의 감격에 찬 고백이야말로 예수님과 함께
이제부터 의욕적으로 펼쳐가게 될 새로운 삶에 대한 벅찬 기쁨을 토로하는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새로운 삶을 가슴 벅찬 기쁨으로 살아가게 될 제자들이야말로 진정
예수님을 만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이 될 이들은 우선적으로
요한을 추종하던 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행복의 길을 열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그들의 스승 요한이었습니다. 요한이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적인
욕심과 관심을 송두리째 던져버릴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한의
위대함을 봅니다. 요한은 자기의 자리를 지킬 줄 알았고 자기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지 않는 절제된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고 듣고 그래서 증언해 주는 것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메시아로 만날 수 있게 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본질적이고 중요한 요소인지를 일깨워 준 요한의 모습을 바라보며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3-14)
그렇다면 우리 믿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요한처럼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 하고 있는지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요한이 보여준 모습이야말로 이 순간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만 사회의 복음화도 가능해질 텐데 과연 우리는 사명감을 갖고
그렇게 하고 있는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