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강론.묵상

[스크랩]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 방효익 신부님

도구 Ludovicus 2008. 11. 9. 07:43

오늘 제1독서(에제 47,1-2.8-9.12)는
바빌론 유배가 끝나면 이루어질 일을 예언합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예루살렘 대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죽음의 바다인 사해로 흘러들어가 단물로 변화시키는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성전에서 생명의 샘물이 흘러나오게 되면
모든 생명체가 생기를 띠고
참된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유배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흐르는 물이 지나가는 곳 어디에서나
온갖 생물이 번창된다고 하는 것은
장차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오게 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백성들이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야훼 하느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반드시 이스라엘 왕국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힘차게 일어서는 곳이며,
그렇게 될 때 마치 강가에 심어진 과일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듯이
항상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풍요로움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1코린 3,9ㄷ-11.16-17)는
우리 모두 하느님의 건물을 구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성전의 기초가 되어야 하며
우리는 모두가 능숙한 건축가가 되어 하느님의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성당의 중심은 늘 그리스도를 모시는 감실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인 것입니다.
성당의 모든 중심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를 향해야 하는 것이며,
모든 전례의 핵심적인 부분도 제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서
우리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령께서 살아계시는 성전이기 때문에
비록 우리의 몸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다룰 수는 없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고 있는 성전이 거룩하듯이
우리 역시 거룩해져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근본적인 사명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초이므로 다른 기초를 쓸 수 없다는 것은
다른 존재를 하느님처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요한 2,13-22)은
성전 정화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장차 겪으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직전에 하신 것으로 나타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세 번에 걸친 예루살렘 순례 여정에서
첫 번째 순례 때에 있었던 것으로 설명됩니다.
아마도 요한복음의 내용이 더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유다인으로서,
선택된 민족들이라고 하는 유다인들이
이집트에서의 탈출을 감사드리기 위해 기도하는 예루살렘에 순례를 오셨습니다.

유다인들의 성전(14절)에서 아버지의 집(16ㄱ절)으로,
아버지의 집에서 거룩한 집(성전: 19절),
거룩한 곳(성전)에서 당신 몸(21절)으로 점차 바꾸시어 말씀하시는 데
14절에서 말하는 유다인들의 성전과
21절에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라고 하시는 성전은
전혀 다른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매일 희생 제물을 판매하고 축제를 지내는 성전과
기도하는 성전이 구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성전은 봉헌될 제물을 판매하고
봉헌될 동전을 바꾸기 위한 장소까지 포함하는 것으로서
성당 울타리 안을 말하는 것이고,
본질적인 의미에서 성전은 가장 거룩한 장소,
우리로 말한다면 성당 건물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성전 경내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을 쫓아버리셨다고 합니다.
성전이라는 곳은 하느님의 집이요,
거룩한 곳이요,
기도하는 집이요, 사랑의 집이므로
늘 깨끗해야 하고, 맑아야 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열정이 되살아나야 하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이 준비한 제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봉헌 제물이 되실 것이기 때문에 치워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가 아니라
진정으로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채찍으로 쫓아버리신 것은
당신이 예루살렘 성 밖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격으실 일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이렇게 무뢰한 짓을 저지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유다인들은 단순하게 자기들이 제물을 봉헌하지 못하게 하는 불경한 짓으로 생각했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봉헌 제물임을 드러내시는 것이었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시면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유다인들은 물론 제자들까지도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1 독서의 말씀처럼 생명의 샘물이 흘러나오는 성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8)라고 하신 것이고,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 19,34)는 것은
바로 생수의 강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침묵 가운데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집”을 말씀하실 때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시편 69,10)라는 말씀이
생각났다고 하는 것과
“이 성전을 허물어라.”라고 말씀하실 때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부활하신 뒤에서야 비로소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고,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대단한 분이심을 알아차렸으나
‘성전을 허물면 당신이 다시 세우실 것’이라는 말씀을 그 때에는 알아듣지 못했고,
본격적으로 깨닫고 믿게 된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로마의 5대 대성당 중의 하나이며
가장 오래된 교회 건물인 라떼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왜 이 대성전 봉헌 축일을 지내야 하는가?” 의아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313년에 로마의 300년 박해를 마치면서
밀라노에서 칙령을 반포하고
종교의 자유를 주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라떼라노 궁전을 헌납할 때에
함께 대성전을 하나 지어서 교황 성 멜키아데스에게 기증한다고 약속을 하였고,
324년 교황 성 실베스텔 1세가
구세주 그리스도께 봉헌하여 으뜸 성당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당은 898년에 지진으로 붕괴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910년경에 교황 세르지오 3세가 재건하여 세례자 요한에게 봉헌합니다.
이때부터 시작하여 1309년 교황이 아비뇽으로 옮겨갈 때까지
모든 교황이 이곳에서 착좌식을 거행했으며, 그곳을 교황들의 무덤으로 썼습니다.
5번에 걸쳐 세계공의회가 열렸으며,
1929년에 교황청과 무솔리니가 협약을 맺은 것도
바로 이 성당에서이기 때문에 의미가 더욱 깊습니다.
지금의 바티칸 성당은 1505년에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고
가톨릭교회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고 있는 성전이기 때문에
이 성당 축성일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말한 대로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젖는다는 것은
참된 성전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분의 향기에 젖는다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향기에 젖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게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고 있는 살아 있는 성전입니다.
우리는 단순하게 집을 짓는 자들이 몹쓸 돌이라고 내버렸던 돌,
즉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삼고 세워진(마태 21,42) 성전의 살아 있는 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인들이 죽인 그리스도를 우리의 기초로 삼고
그 위에 솟아있는 하느님의 성령의 거룩한 성전인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말씀대로
성전 안에서는 물론이요 우리 안에서 생명의 말씀이 퍼져나가야 하며,
기도 소리가 울려 퍼져야 합니다.

성전은 무엇보다도 생명의 샘이 넘치고 기쁨과 평화가 깃들어 있어야 합니다.
성전에서 풍기는 향기는 늘 매혹적인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성전은 조화가 이루어져 있어야 합니다.
유다인들이 말하는 성전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이 다르듯이
보이는 건물인 성전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성전을 구성하고 있는 우리 공동체입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들리는 소리는 불협화음이 아니라
늘 조화로운 기쁨의 소리여야 하고,
우리 공동체에서 풍기는 향기는 매혹적이어야 하고,
늘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성전에서 들리는 소리는 흩어버리는 소리가 아니라
불러 모으는 소리여야 합니다.

가장 기초적인 보이지 않는 성전,
즉 그리스도를 주춧돌로 삼고 있는 가장 작은 교회는 가정입니다.
가정에서부터 기쁨과 평화가 넘쳐야 하고,
가정에서 풍기는 향기는 늘 매혹적이어야 하고,
가정에서는 늘 사랑이 넘쳐야 할 것입니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글쓴이 : 구절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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