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가톨릭 성지

황새바위성지

도구 Ludovicus 2008. 10. 2. 18:03


대전주보 제626호(1983년 12월4일자)에서 시작하여 다음호에까지 [황새바위]는 [항쇄바위]라고 똑바로 불러야 한다는 내용의 제언이 있었다. 주요 논거로써 공주 읍지를 보고 지금은 그 황쇄바위가 없어졌지만 지명만은 황쇄바위가 분명하다고 확인했다고 필자가 말하고 있으나, 읍지에 지명이 기록된 것은 아니고 관계된 사람에게서 들었다는 것뿐이므로 확실성을 내세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천주학쟁이들을 죽일 때에는 강도들이나 절도범 등 다른 극악 죄인과 함께 죽였고, 그들의 시체도 어느 것이 순교자들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으며 무덤도 서로 분간할 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오히려 처형지는 대나무들 사이에 있는 공터로 보고 제민천 가장자리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순교자들의 시체들이 제민천에 비가 와서 그들의 피와 함께 하얀 모래벌이나 가까운 백마강으로 가져갈 때까지 매장되지 않은 채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제민천 둑이 쌓아지지 않았기에 넓이는 꽤 넓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공주 들머리 언덕에는 바위 위에 소나무가 밑으로 늘어져 황새가 서식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10여 키로미터 넘게 떨어진 정안면 보물리에는 얼마 전까지 황새들이 집단으로 서식했다 한다. 그렇다면 항쇄바위라고 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황새바위]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황쇄바위]라고 일반적으로 소개되어 책자에 나와있는데 [황쇄]에서 쇄는 옛낱말로 새와 같다고 풀이하는 이도 있다. 1955년도에 발행한 공주천주교회 연혁에도 분명히 [황새바위]라고 밝히고 있다.

이상의 여러가지 점들을 보아 공주 천주교회의 연혁이 크게 그릇되지 않았다면 [황새바위]로 그대로 통일하여 부르는 것이 옳다고 본다.


 

공주 황새바위는 한국 천주교 역사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증언지 중 하나로 그 의미가 크다. 공주에는 일찍부터 충청남북도를 관할하는 관찰사와 지금의 시에 해당하는 감영이 있었다. 이곳 공주 감영에서는 각 지방에서 잡혀 숱한 심문과 무서운 고문을 당하고도 배교하기를 거절하였을 때에는 감사의 명에 의해 황새바위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는데, 충청도 각 지방뿐 아니라 타 지역으로부터 끌려와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교우들도 많았다. 충남의 홍주, 예산, 해미, 덕산, 신창, 홍산, 연산, 청양, 공주, 이인, 탄천과 충북의 청주, 진천, 연풍, 옥천, 전라도 전주, 광주, 경기도 죽산, 포천, 그리고 한양의 교우들이 공주에 와서 순교 하였다.

이곳 황새바위에서 천주학 죄인들을 공개 처형할 때에는 맞은편 산 위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마치 병풍을 친 모양으로 둘러서서 구경을 하였다고 한다. 처단한 죄인들의 머리는 나무위에 오랫동안 매달아 놓아 사람들에게 천주학을 경계하게 하였으며, 그들의 시체는 강도, 절도범들의 시체와 섞여 어느 것이 순교자의 것인지 구별하기조차 어려웠다. 황새바위 앞을 흐르는 제민천은 지금처럼 둑이 쌓여 있기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넓었는데, 홍수로 범람할 때에는 순교자들의 피로 빨갛게 물들어 금강으로 흘렀다고 한다.

순교자들은 참수, 교수, 돌로 맞아 죽음, 옥사, 아사, 매질 등으로 죽어 갔는데, 교회사가 달레(Dallet,Claude Charles)는 공주 감영에서 있었던 교수형에 대해 "옥의 벽에는 위에서부터 한 자 높이 되는 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매듭으로 된 밧줄 고리를 죄수 목에 씌우고 밧줄 끝을 벽의 구멍으로 내려보낸다. 그리고 옥 안에서 신호를 하면 밖에서 사형 집행인이 밧줄을 힘껏 잡아당긴다. 희생자가 죽으면 시체를 밖으로 끌어내어 장례도 지내지 않고 밭에 내버려 둔다." 고 묘사하고 있다. 때로는 구멍이 있는 형구돌이 사용되었는데 구멍에 줄을 넣고 죄수의 목에 얽어맨 다음 형구돌의 반대편에서 줄을 잡아 당겨 죽였다.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공주에서도 병인박해 당시에 가장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고, 조정의 박해령이 멎은 뒤에도 지방에서는 아직 그 여파가 남아서 피흘림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공주는 순교 역사의 시초부터 기록상 마지막으로 순교자를 낸 1879년까지 100여년 동안 줄곧 피를 흘리며 신앙을 고백했던 참으로 거룩한 땅이다. 달레는 "공주 옥에서 순교한 이들의 이름과 숫자를 다 알 수 없었다." 고 말한다. 공주 감영록이 세상에 공개되기 전까지는 우리 순교자들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공주에서의 순교자들은 당시 '사학의 괴수'로 알려져 있던 내포의 사도 이존창(루도비꼬)과 10여명의 회장들을 비롯해 연령, 성별, 신분에 관계없이 무수히 많다. 가장 나이 어린 순교자는 김춘겸의 딸로 당시 불과 10살 밖에 안 되었고, 최연장자는 남상교(아우구스티노)로 당시 84세였다. 20세 미만의 순교자도 20명이나 되었으며, 양반, 중인, 농민, 노비 등 그 신분계층도 다양했다. 특히 어린이와 부녀자들까지도 온갖 고문과 회유, 공포속에서 배교하지 않고 순교로써 신앙을 굳게 지켰다. 황새바위라는 명칭의 유래는 이곳 가까이에 황새들이 많이 서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혹은 목에 큰 항쇄 칼을 쓴 죄수들이 이 언덕바위 앞으로 끌려나와 죽어갔기 때문에 항쇄바위라 불리기도 했다.

 

 


박해는 서울과 지방에서 끊임없이 생명과 교우들의 재산을 요구하였다. 순교를 하지 않은 교우들이라 할지라도 가난과 쫓김과 초조 가운데서 신앙을 위한 투쟁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다.가장 많은 순교자를 낸 병인박해 이전에도 공주의 여러 산골은 천주교 신자들의 은거지가 되었다.
버니스(선학리), 먹방리(쌍수리), 덤골(백용리), 둠벙이(조평리), 만년동(만천리), 룡수골(유룡리), 진밧(신영리),

덤틔(가교리), 도가니(안양리), 관불(녹천리), 적바위(문금리), 국실(국곡리), 새우리(산우리, 봉곡리), 지석골(학봉리), 동울(동우리, 성덕리), 수리치골(봉갑리), 지를(고성리), 소랑이(내문리), 등이 교우들의 은거지가 되었다.

1812년 홍주 출신 이여삼형제가 공주산으로 피신하여 살았으며, 1829년 최경환 성인이 고향에서 수계하기가 어려워 공주고을 김대 산골로 이주하였다. 공주군에는 지금도 산골에 공소가 많은데 군란을 피해서 신자 공동체를 산골에서 이루어 서로 신앙과 사랑을 나누며 살았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의 편지에는 박해시대에 신자들이 이룬 공동체가 얼마나 훈훈하며 열심했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물씬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 교회 공동체의 이상이 충청도 산골에서 이미 토착화 되었던 것이다.

주문모 신부가 지방 순회를 여러번 하는 중에 공주에서 사제로서 성무를 집행했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께서 명동 대성당을 참배하실 때 말씀한 하신 것처럼 "고주교님이 1846년 무서운 박해하에서 공주 땅 수리치골에서 이 나라와 겨레와 교회를 요셉 성인과 공동 주보이신 성모께 조용히 봉헌"(명동성당 1984.5.6)하였다. 1861년 10월에 조선 포교리는 동정성모께 바쳐졌는데, 죠안노 신부는 공주와 그 인근지방을 성모영보구역으로 정하였다.

리델신부는 진밧(공주군 사곡면 신영리)에, 랑드르 신부는 둠벙이(공주군 신하면 조평리)에 은신하여 활동하였다. 이구역은 또한 초기 본당 형태로 볼 수 있다. 가장 혹독하고 가장 조직적인 박해인 병인 대박해(1866년)를 맞이하기 전에도 먹구름은 끼어 있었고, 조정에서 박해령이 끝난 뒤에도 지방에서는 아직도 그 여파가 남아서 지방의 박해들은 더 오래 계속 되었다. 전국적으로도 그렇겠지만 공주에도 1866년 병인박해와 그 이듬해에 가장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다. 달레는 공주옥에서 죽은 이들의 이름과 상황을 다 알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감영록이 세상에 공개되기 전에는 우리 순교자들의 이름마저도 다 알 수 없는 안타까운 상태였다.

 

 

 





[ 신유박해 1801 ]

년도

순교자명단

신유박해 (1801)

골롬바, 이국승(베드로), 이단원(존창, 루도비꼬), 이도기(바오로), 이종국, 이씨(양반), 원씨(남자) 원씨(여자), 문윤진(여종)

[ 1813 ~ 1865 ]

년도

순교자명단

1813 ~ 1865

김덕(노비), 원 베드로, 장대원(마티아), 장어둔, 황바울로, 원씨(베드로), 이시몬(혹 요한), 전프란치스꼬 사베리오

[ 병인박해 1866 ]

년도

순교자명단

병인박해(1866)

강덕중(바울로), 강루치아, 강바울로, 강서방, 강치명(베드로), 고요셉(목천소학골), 고요셉(내포), 곽체칠리아, 곽충만, 김과부, 김광로(요셉), 김공우, 김군심, 김다니슬라오, 김동신(루치아), 김루까, 김마티아, 김명집(루도비꼬), 김문보, 김바르바라, 김바울로(홍산), 김베드로(예산), 김베드로(공주 진밭), 김베드로(은진강경리), 김보경, 김사범, 김수산나, 김순면, 김순오, 김순오의 아들, 김순오 의 며느리, 김씨, 아구구스띠노, 김안드레아, 김야고보의 아내, 김양운, 김에비파노, 김영오(아우구스띠노) 김요한(공주 짐대율), 김요한(공주 둠벙리), 김원보(안또니오), 김원중(스테파노), 김윤지, 김준명, 김청풍(바울로), 김프란치스코, 김학진, 김학진의 아내, 김힐라리오, 남상교(아우구스띠노), 민문관, 박디오니시오, 박루치아, 박바울로(삽다리), 박바울로(공주), 박베드로, 박 빈첸시오, 박스테파노, 박요한, 박첨지의 아내, 박회장, 배문호, 서경도, 서경득, 서경록(요한), 서바울로, 서스테파노, 서정직(요한), 손서방, 성인 손자선(토마), 송루치아, 송성숙(요한), 송안또니오, 송자선(바울로), 신성수, 신성순(스테파노), 신여석, 신요셉, 신인서, 신치쁘리아노, 안베드로, 안성숙(요한), 양서방(공주 버스리), 양자친(홍산 거칠), 오시몬(홍산 도앙골), 오요한(홍산 도양골), 오정선의 장남, 오정선의 차남, 원 야고보, 유시메온, 유씨(덕산), 윤요한, 윤화첨(요한), 이가롤로, 이갸오로, 이군중, 이다태오, 이덕중, 이루도비꼬, 이마르따, 이바울로, 이바울로(진잠), 이상서(시몬), 이서방, 이성삼(베드로), 이순종(안드레아), 이스테파노, 이아가다, 이아우구스띠노, 이안드레아, 이안또니오, 이여화(안드레아), 이 여화의 아들, 이요알리, 이요한, 이요한(천안), 이주홍(마티아), 이종여, 임데레사, 임바울로, 임서방, 임아타니시오, 임안나, 임안나의 남편, 임자친(베드로), 장골롬바와 아들, 장데레사, 장마티아, 장베드로, 장아나다시아 혹데레사, 장안드레아, 전자연, 조야고보, 채서방의 며느리, 최덕겸, 최종여 (나자로), 최천여(베드로), 추상운, 한영서(토마), 함프란치스꼬, 홍히야친따

[ 정묘년 1867 ]

년도

순교자명단

정묘년 1867

강순지(요셉), 고선양, 고선양의 장남, 고선양의 차남, 고선양의 맏며느리, 고선양의 둘째며느리 고선양의 막내 며느리, 김관서, 김마태오, 김 베드로, 김베드로(공주금동리) 김아우구스띠노, 김야고보, 김영서(예로니모), 김용소, 김선지, 김시로, 김춘일, 김치명, 김토마, 김화숙(베드로), 박광지, 박서방, 박성일, 박스테파노, 박여원(영원), 서봉이(루도비꼬), 손에메렌시아, 신첨지, 원시몬, 윤서방, 이마태오(다태오), 이봉학, 이아가다, 이아가다의 남편, 이아가다의 딸(루치아), 이아우구스띠노, 이여화의 모친, 이정심(바울로), 이치도, 이토마, 이한교의 아내, 이한교의 누이, 전성백(야고보), 정카타리나(남포), 조군서, 조아우구스띠노, 지글라라, 차막달레나, 최바르바라, 최성여, 최첨지(최덕겸의 부친), 함선일(요한), 함태양(베드로), 현안드레아(안또니오), 현프란치스코, 강바울로, 김루치아, 김요한, 김춘겸, 김춘겸의 딸, 김춘겸의 딸 친구(1), 김춘겸의 딸 친구(2), 김카시미로, 김카시미로의 동생, 김프란치스꼬, 유시몬, 이성유, 이체칠리아, 장일심의 아들, 홍스따니슬라오,

[ 1868 ~ 1871 ]

년도

순교자명단

1868 ~ 1871

이안드레아, 이테레사, 이루치아, 한다태오, 김순일(요한), 이치제

[ 1878 ~ 1879 ]

년도

순교자명단

1878 ~ 1879

김바르바라, 임아나다시아, 최요한, 최요한의 아우, 김그레고리오, 김서방, 김아가다, 미아가다, 마야고보, 손카타리나, 홍정선, 김춘삼의 둘째형, 이안드레아(요한), 장카타리나(진산), 김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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