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가톨릭 성지

수치에서 영광으로 황새바위성지

도구 Ludovicus 2008. 10. 2. 17:57

수치에서 영광으로 ]


[12사도 상징물]

[순교탑]

[야외 제대]

[형구돌]

공주 교동 성당
충청남도 공주시 교동 118-2번지 (우) 314-090
사무실 : 041-856-3923
수녀원 : 041-856-0300
사제관 : 041-856-8866
FAX : 041-856-1419
◎ 경부고속도로 천안 IC (23번 국도) -> 공주대교 -> 공주사거리에서 우회전 -> 황새바위천주교도순교지
◎ 연기(36번 국도), 부여(40번 국도), 논산(23번 국도), 청양(36번 국도), 예산(32번 국도) 이용
◎ 천안, 예산방면인 경우 백제교, 공주대교 이용
◎ 호남고속도로 -> 논산분기점 -> 논산천안고속도로 -> 남공주 IC -> 무령왕릉 입구 -> 황새바위순교지
◎ 호남고속도로 유성 IC (32번 국도, 동학사 방향) -> 공주 -> 무령왕릉 입구 -> 황새바위천주교도순교지
http://www.hwangsae.or.kr
   
  공주 황새바위는 한국 천주교 역사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증언지 중 하나로 그 의미가 크다. 공주에는 일찍부터 충청남북도를 관할하는 관찰사와 지금의 시에 해당하는 감영이 있었다. 이곳 공주 감영에서는 각 지방에서 잡혀 숱한 심문과 무서운 고문을 당하고도 배교하기를 거절하였을 때에는 감사의 명에 의해 황새바위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는데, 충청도 각 지방뿐 아니라 타 지역으로부터 끌려와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교우들도 많았다. 충남의 홍주, 예산, 해미, 덕산, 신창, 홍산, 연산, 청양, 공주, 이인, 탄천과 충북의 청주, 진천, 연풍, 옥천, 전라도 전주, 광주, 경기도 죽산, 포천, 그리고 한양의 교우들이 공주에 와서 순교 하였다.
  이곳 황새바위에서 천주학 죄인들을 공개 처형할 때에는 맞은편 산 위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마치 병풍을 친 모양으로 둘러서서 구경을 하였다고 한다. 처단한 죄인들의 머리는 나무위에 오랫동안 매달아 놓아 사람들에게 천주학을 경계하게 하였으며, 그들의 시체는 강도, 절도범들의 시체와 섞여 어느 것이 순교자의 것인지 구별하기조차 어려웠다. 황새바위 앞을 흐르는 제민천은 지금처럼 둑이 쌓여 있기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넓었는데, 홍수로 범람할 때에는 순교자들의 피로 빨갛게 물들어 금강으로 흘렀다고 한다.
  순교자들은 참수, 교수, 돌로 맞아 죽음, 옥사, 아사, 매질 등으로 죽어 갔는데, 교회사가 달레(Dallet,Claude Charles)는 공주 감영에서 있었던 교수형에 대해 "옥의 벽에는 위에서부터 한 자 높이 되는 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매듭으로 된 밧줄 고리를 죄수 목에 씌우고 밧줄 끝을 벽의 구멍으로 내려보낸다. 그리고 옥 안에서 신호를 하면 밖에서 사형 집행인이 밧줄을 힘껏 잡아당긴다. 희생자가 죽으면 시체를 밖으로 끌어내어 장례도 지내지 않고 밭에 내버려 둔다." 고 묘사하고 있다. 때로는 구멍이 있는 형구돌이 사용되었는데 구멍에 줄을 넣고 죄수의 목에 얽어맨 다음 형구돌의 반대편에서 줄을 잡아 당겨 죽였다.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공주에서도 병인박해 당시에 가장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고, 조정의 박해령이 멎은 뒤에도 지방에서는 아직 그 여파가 남아서 피흘림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공주는 순교 역사의 시초부터 기록상 마지막으로 순교자를 낸 1879년까지 100여년 동안 줄곧 피를 흘리며 신앙을 고백했던 참으로 거룩한 땅이다. 달레는 "공주 옥에서 순교한 이들의 이름과 숫자를 다 알 수 없었다." 고 말한다. 공주 감영록이 세상에 공개되기 전까지는 우리 순교자들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공주에서의 순교자들은 당시 '사학의 괴수'로 알려져 있던 내포의 사도 이존창(루도비꼬)과 10여명의 회장들을 비롯해 연령, 성별, 신분에 관계없이 무수히 많다. 가장 나이 어린 순교자는 김춘겸의 딸로 당시 불과 10살 밖에 안 되었고, 최연장자는 남상교(아우구스티노)로 당시 84세였다. 20세 미만의 순교자도 20명이나 되었으며, 양반, 중인, 농민, 노비 등 그 신분계층도 다양했다. 특히 어린이와 부녀자들까지도 온갖 고문과 회유, 공포속에서 배교하지 않고 순교로써 신앙을 굳게 지켰다. 황새바위라는 명칭의 유래는 이곳 가까이에 황새들이 많이 서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혹은 목에 큰 항쇄 칼을 쓴 죄수들이 이 언덕바위 앞으로 끌려나와 죽어갔기 때문에 항쇄바위라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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