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정하상, 동료 순교자 대축일 2008년 9월 20일
루가 9, 23-26, 로마 8, 31-39.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그리스도 신앙인으로 살려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기 목숨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을 잃는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은 비록 자기 목숨이 위험에 처할지라도,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서 자기의 삶이 하느님 앞에 의미를 지니게 해야 한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부귀(富貴)와 영달(榮達)을 얻기 위해 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고, 그 일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오늘은 한국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북경에서 이승훈이 세례를 받고 귀국한 것이 1784년이었습니다. 그 이듬해 1785년부터 시작된 박해는 조선 조정(朝廷)이 미국과 수호 조약을 맺기까지 약 백 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 동안에 만 명이 훨씬 넘는 분들이 순교하신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분들은 온갖 잔인한 형벌을 다 받고 비참하게 죽어 가셨습니다. 그 가족들도 하루아침에 노비(奴婢)로 혹은 수배자로 비참한 신세가 되어 흩어졌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한국의 그리스도 신앙은 외국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 유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자발적으로 그리스도 신앙을 영입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이 땅에 뿌리도 내리기 전에 박해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분들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국인들 스스로 그리스도 신앙을 연구하고, 그것을 어렵게 국내에 도입하여 보급한 사실과, 초기부터 시작된 박해에서 그렇게 많은 분들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천주교 관계 서적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이승훈이 세례를 받기 약 150년 전의 일입니다.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를 비롯한 한문으로 된 몇 권의 천주교 서적들이 중국으로부터 흘러들어 왔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것을 서학(西學)이라 불렀습니다. 그 시대 이 문서들을 영입하여 연구한 사람들은 실학파(實學派)파라 불리는 유교 학자들이었습니다. 유교를 국시(國是)로 한 조선의 실세들이 성리학(性理學)의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빠져 있을 무렵, 실학파 학자들은 합리적이고 현실성 있는 학문과 사회 제도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임진왜란이라는 엄청난 민족적 시련을 겪은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이 무렵에 실학파가 연구한 천주교는 신앙이기보다는 하나의 세계관이고 사회관이었습니다. 근대사학자인 이이화 교수는 ‘허균’이라는 자기 저서(한길사1997,45-47)에서 이 무렵의 조선 시대상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무고로 죄 없는 사람들을 고발하여 감옥에 가게 하는 일이 많아서 백성은 불안하고 서로 믿지 못하는 풍조가 휩쓸었다. 벼슬 팔아먹기와 뇌물과 횡령이 판쳤다. 과거(科擧) 시험 문제가 사전에 유출되는 등 부정이 행해지고 벼슬아치들의 부정부패는 당연한 것으로 되었다. 무리한 토목공사들을 벌려 놓고 관리들은 공사 자재를 횡령하고, 민생고에 허덕이는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빼앗아서 매우 사치스럽게 살았다. 결국 임금으로부터 지방 수령에 이르기까지 자기 신분을 보호하기 바빴고, 그것을 위해서는 금력이 필요했다. 임금은 신하들로부터, 신하들은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빼앗는 길밖에 없었다.” 역사학자가 말하는 그 시대의 절망적 사회상입니다. 이런 여건에서 서학을 공부한 실학파 학자들에게나, 후에 신앙을 영접한 초기 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은 대단히 신선하게 보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주었습니다. 군주(君主)가 절대적이 아니라 천주(天主)님이 계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 법이란 왕이 공포하면 백성들은 지켜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느님이 질서 지어준 자연의 법과 마음의 법, 곧 양심 법을 가르쳤습니다. 인간은 나라의 법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따라 행동하며 양심의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한다는 신앙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해 주는 신앙이었습니다. 왕이 공포한 법은 무자비하였고, 공권력은 그 시대 횡행하는 부정부패와 약자에 대한 착취를 방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런 것들을 조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반면에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이 자비하고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가르칩니다. 무자비한 법과 제도에, 한 마디 항의도 못하고, 짓눌려 살다가 죽어 가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정의와 자비와 사랑의 질서가 있고, 그것은 죽음을 넘어서도, 하느님 안에 지속된다는 가르침은 그 시대의 각종 부조리에 시달리면서 고통당하던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열러주는 일이었습니다. 초기 신앙인들이 조상제사를 거부한 것은 그들을 박해하는 권력자들에게 큰 명분을 제공하였습니다. 조상제사는 그 시대 유교가 권장하는 실천의 기본이었습니다. 신앙인들이 그것을 거부한 것은 유교 국가의 근본 질서를 뒤흔드는 일이었습니다. 왕과 국가 권력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일로 보였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축첩(蓄妾)을 거부하여 유교가 가르친, 남녀 성차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라고 가르치는 신앙은 사대부(士大夫) 중심의 계급의식도 거부하였습니다. 순교자들 중에는 최하위 신분계급인 백정 황일광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천당이 둘이다. 하나는 죽어서 가는 천당이고 또 하나는 양반과 쌍것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똑같이 존중되는 이 세상의 천당이다.” 백정 출신으로 멸시 당하던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계급의 장벽을 넘어 모두가 같은 형제자매로 통하는 신앙공동체에서 그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본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이 새로운 세상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실망시키고 불행하게 만드는 왕과 벼슬아치들을 거부하고, 하느님으로 열리는 새로운 질서를 열망하였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을 거슬려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뒤를 따른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들은 바울로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로마 8,39)는 사실을 믿고 그들은 형벌당하고 죽어 갔습니다. ◆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여기 http://cafe.daum.net/cchereandnow 서공석 2008-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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