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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 그리스도의 바램

도구 Ludovicus 2008. 8. 31. 06:33



    예수 그리스도의 바램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또 어떤 삶을 바라고 계시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은 축복을 받으며 가정이란 공동체를 만들고 가정 안에서 많은 것을 창조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실제 우리들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미약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성령을 불어 넣어줌으로써 성령의 작용으로 풀어가는 지혜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가정 자체가 사도직이고 가족구성 자체가 사도로서의 임무를 수행해야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가정 안에서 사도직을 행하고 사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하느님의 백성으로써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가정사목에서 빛의 역할은 믿음과 윤리가 일치되고 진리와 자유가 일치되는 가운데서 진리를 지킬 때, 자유가 오고 자유를 누릴 때 진리 속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사도직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친교를 통해서 그분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면서 그분이 바라시는 사랑의 공동체를 완성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하나의 사건이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통로가 됩니다. 사랑은 구걸하지 않고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상태가 아니라 단계입니다. 사랑의 충족은 사랑하는 이가 사랑 받는 이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줄 때 충족하게 되는데 이는 영원한 선을 찾을 때 가능하게 됩니다. 사랑의 완성을 이루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사랑하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요한 15, 12-14) 이 대목에서 우리는 “것처럼”에 대한 말씀의 의미를 이론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사랑의 질을 찾아가는 방법으로 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대했지만 신약에서는 50보를 요구하면 100보를 가라고 합니다. 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는 고통의 절정만 있지 않고 사랑의 절정도 있습니다. 상처는 자신의 감수성으로 인해 상처받게 되지만 감수성으로 인해 절실한 사랑도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성화부터 요구하시는 것은 부부는 자신으로부터 헌신적 사랑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며 모든 치유는 사랑만이 치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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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섬돌선교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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