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사별, 어머니의 재가로 생이별 끝에 보호시설에 입소한 어린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형제가 한 시설에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었는데,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형제는 또 다시 떨어져야만 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우여곡절 끝에 저희 집에 온 동생은 눈만 떴다 하면 형 걱정이었습니다. 자신은 여기서 그럭저럭 지내는데, 형을 이리로 데리고 오면 안 되겠냐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동생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얼마 전 극적으로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동생 소원이 이루어진 날, '남북이산가족 상봉 저리 가라'였습니다. 동생은 얼마나 극진히 형을 챙기는지 모릅니다. 식사 시간에도 형을 자기 바로 옆자리에 앉게 하고는, 이것저것 반찬을 집어 형 밥숟가락에 얹어주며 "형,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어!"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형제가 다시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얼마나 마음이 짠해왔는지 모릅니다. 그 누군가가 아무리 극진한 사랑을 쏟아 붓는다 하더라도 부모 사랑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저 어린 것들이 부모 없이 한평생 고생고생하며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애써 슬픔을 지우고, 눈물을 감추며, 활짝 웃으며 그렇게 세상을 견뎌나가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지나친 논리 비약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아이들이 저보다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고달프고 우울한 현실과 잘 맞서고 있는 이 아이들은 이 시대, 또 다른 순교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아이들 얼굴을 해맑습니다. 얼마나 싹싹한지 모릅니다. 만나는 사람들을 얼마나 살갑게 대하는지, 그래서 어른들을 얼마나 기쁘게 해주는지 모릅니다.
오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대축일입니다. 신부님께서 직접 쓰셨던 서한집을 영적독서로 읽으면서 그분 생애가 인간적 눈으로 볼 때 얼마나 신산(辛酸)했는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오랜 사제 양성기간을 마치고 그토록 학수고대했던 사제의 꿈을 이룬 김대건 신부님의 귀향길은 금의환향의 꽃길이 아니라, 끔찍한 옥살이와 서슬 퍼런 칼날만이 기다리고 있는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혹독한 추위, 거센 풍랑, 탈진과 굶주림을 겨우 겨우 이겨내며 김대건 신부님은 몇 번이나 조선 입국을 위한 탐색여행을 시도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조선에 입국한 신부님께 어찌 부모님 소식이 궁금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은 정녕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게 할 소식이었습니다. 이미 부친은 참수당하셨고, 모친은 의탁할 곳조차 없어 이곳저곳 떠도는 부랑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소식, 가슴 미어지는 소식 앞에 김대건 신부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 뜻을 품은 신부님이셨기에 목자 없이 방황하는 조선의 양떼들을 위해 다시금 훌훌 털고 일어서십니다. 다가오는 죽음과도 같은 현실을 기꺼이 직면하십니다.
이 세상에 두발을 딛고 서 있었지만, 이미 하느님 나라를 살고 계셨던 분, 죽음 그 너머에 있는 부활을 미리 내다보셨던 분, 절망 가운데서도 환한 얼굴로 희망을 바라보고 계셨던 분, 그래서 죽음과도 같은 암담한 현실 앞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김대건 신부님이셨습니다.
매일 다가오는 암담한 현실과 끝도 없는 시련을 참아내는 일, 나 자신의 비참함을 기꺼이 견뎌내는 일, 신앙의 눈으로 그 열악한 현실과 똑바로 직면하는 일, 아무리 주어진 상황이 어려워도 긍정적으로 마음먹는 일,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일은 이 시대 또 다른 순교의 얼굴입니다.
처형당하기 직전 쓰신 유언과도 같은 옥중 서한의 말미 부분이 이번 한 주간 우리들 삶의 양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공경하올 신부님들, 안녕히 계십시오. 머지않아 천국에서 영원하신 아버지 하느님 대전에서 다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의 이름 때문에 묶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형벌을 끝까지 이겨낼 힘을 저에게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묶인 조선의 교황 파견 선교사 김 안드레아 올림."
'가톨릭- > 가톨릭 성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성 김대건 사제 대축일 맞아 알아 본 성인의 인간적인 면면 (0) | 2008.07.06 |
---|---|
[스크랩] 첫째날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0) | 2008.07.06 |
[스크랩] 죽기를 작정하고-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0) | 2008.07.06 |
[스크랩] 저의 어머니 울술라를 부탁드립니다-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0) | 2008.07.06 |
[스크랩] 대전교구 > 솔뫼 (0) | 2008.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