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선교 자료실

냉담자를 만나는 병원 방문.. 이명복 크리스티나

도구 Ludovicus 2008. 6. 14. 12:30
어느 날 저희 성당에 낯설은 자매님 한 분이 제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분은 대구 지산성당에서 이사온 자매로서 선교 활동을 열심히 해오신 분이었습니다. 그 날을 계기로 저희는 무척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 자매님이 삼성 제일병원에 환자들을 방문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원목 수녀님과 약속해 놓았는데 같이 갈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곳에 도착하니 수녀님이 안 계셨습니다. 그 날은 목요일이었는데 수녀님께서는 화요일과 금요일만 나오신다는 것을 몰랐던 겁니다. "그냥 돌아갈까?" 하는 물음에 저는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우리끼리 병실 들어가자." 해서 처음으로 그 병원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조심스럽게 병실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성당에서 왔습니다. 성당에 다니시는 분 계십니까?" 하니 누군가가 반색을 하며 맞아주십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기도도 해드렸습니다. 또 가족이나 다른 환자 분에게도 책을 드리면서 입교를 권하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저희들을 본체만체하는 분도 계셨고, 피곤한 듯 매우 귀찮아하는 표정을 짓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창피함이나 무색함보다는 봉사 후의 기쁨이 더 크게 우리 마음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봉사하고 있는 삼성 제일병원은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전문병원으로는 유명한 병원이다보니 천주교 신자 분도 꽤 많이 입원하는 곳입니다. 봉사를 하게 되는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를 바치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기도로써 환자들을 미리 봉헌하고 그들을 만나게 되면 대화도 훨씬 수월하게 풀리고, 기도를 할 때에도 그때 그때마다 필요한 자유기도를 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경계하며 저희를 외면했던 분들도, 어느 사이에 마음이 열려가고 환한 얼굴빛으로 변해 가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봉사를 하다보면 의외로 냉담 환자들이 꽤 많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70% 이상은 된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듯 싶습니다. 얼마나 일반 병동의 병원 사목이 필요한가를 절실히 느낄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한 번은 교우 환자분을 방문하고 있는데, 옆의 시트의 자매님이 마음 안에 들어오는 겁니다. 8살짜리 아들이 젊은 엄마 옆에서 이리 저리 뒹굴며 무척이나 심심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엄마는 매우 차가운 얼굴빛이었습니다. 함께 갔던 봉사자가 이미 그분에게 안내책을 전해 주었다고 제게 말해 주었지만 웬지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아드님이세요? 몇 살인가요?" "8살인데 집이 너무 멀다보니 학교에 못보내고 옆에 데리고 있어요." 저는 누군가가 그 아이를 편히 돌봐줄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떡해요? 학교 못보내서" 라고 말하기 보다는 "너 좋겠다. 공부하기 싫은데, 그렇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금은 밝은 목소리로 그런 모습에 그애 엄마도 조금 편해진듯 "글쎄, 점심을 먹여야 되는데 이렇게 주사 맞고 있으니…. 피자를 무척이나 먹고 싶어하는데…" 하며 말끝을 흐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짝 봉사자가 얼른 자기가 갔다 오겠다며 아이 손을 잡고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 사이 저는 아이 엄마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유방암 환자라서 항암 치료를 받는 중이었고 아주 힘! 든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지금은 교회에 나가고 있지만, 실은 천주교 신자였다면서 '카타리나'라는 세례명을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다시 성당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약속을 제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고통 중에 더욱 가까이 계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두 손을 잡고서 함께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제 갓 결혼한 새댁인데 아기가 유산된 아픔이 있는 자매였습니다. 다시 임신이 되어 이제 3주정도 지났는데, 위험하다는 진단에 완전히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었을 때 입니다. 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병실문을 열고 "성당에서 왔습니다. 성당 다니시는 분 계십니까?" 하니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돌아서 나가려는데 슬픔에 가득차있는 그녀가 눈에 띄여 책을 드리면서 "한 번 읽어보세요." 라고 말을 붙였습니다. 손목에는 염주를 차고 있었습니다. "많이 힘드신가 봐요. 제가 뭘 도와드릴 것은 없나요?" 물었더니, 대답 대신 눈물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때문에 아기가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고2때 영세했는데 이내 성당에 다니지 않았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신앙 얘기는 되도록 피하고, "일단 태아에게 가장 유익할 것이 생각나네요. 아기와 엄마는 영적으로 묶여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모든 것을 느낄 수가 있다고 하셨어요. 그러니 엄마가 이렇게 슬퍼하고 걱정하면 아기도 슬퍼할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아요?" 산모는! "그럴까요?" 하며 제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해서 "마음을 굳게 먹고 태중에 있는 아기가 숨을 쉬고 있는 동안 계속 그 아이와 사랑을 나누고 대화를 주고받는다면 엄마에게나 태아에게나 훨씬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은데요." 또 "아기가 잘 버티어 줘서 엄마 품에 안길지도 모르니까, 희망만은 잃지 마세요." 하고 용기를 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가지고 갔던 묵주와 '태아를 위한 기도문'을 가만히 그녀의 손 안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녀와 손을 잡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한참을 흐느끼더니 "제가 예수님께 잘못한 것 같아요. 다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요? 그런 생각이 드셨어요? 예수님께서 기뻐하실 꺼예요. 그리고 함께 해주실 꺼예요." 그 후 그녀는 저를 지속적으로 만났고, 묵주기도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튼튼한 아기의 엄마가 될 겁니다.

기도의 덕분인지 병원 방문시 그래도 최소한 1명의 입교자는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입교 신청서는 써주었지만, 퇴원하고 나면 마음이 돌아서 버린 것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가장 고통스럽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무언가에 의지하고픈 욕망이 크다 보니, 그때는 신앙을 고백했지만 집에 돌아가면 그 마음들이 다 변하는 가 봅니다. 확인 전화시 냉랭한 응답으로 귀찮아하는 목소리를 듣게 될 때는 "괜히 했나" 하는 머쓱한 마음에 또 다시 통화하기에는 자신감이 없어지고 그만 의기소침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몇 분은 통신교리 중이고, 회복기가 지나면 꼭 성당에 나갈 것이라고 약속해 주신 분들도 여러 명 있습니다.

항암 투병 중인 한 자매는 입교 희망자로 비록 교리 공부할 수는 없지만 미사가 있을 때면 예쁜 모자를 눌러쓰고 꼭 미사에 참례하곤 합니다. 비록 병을 통해 만난 사이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진한 사랑의 가족이 되었음을 눈길 속에서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환자들은 예수님께서 제게 보내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저를 보고 고맙다는 말을 해주곤 합니다만, 실은 그들을 통해 제가 예수님을 만나뵐 수 있고 그분의 놀라우신 사랑이, 저 태양보다도 얼마나 강렬한 지 깊이 느끼게 해주니까요. 낯가림 심하고 소극적인 제가 이 자리까지 설 수 있게 되었으니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가능하기나 하겠습니까? 크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 드립니다.
서울 세종로, 이명복 크리스티나(017-202-1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