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8년 4월 14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도구 Ludovicus 2008. 4. 14. 08:19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4월 14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11,1-18

그 무렵 1 사도들과 유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복음 요한 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오늘은 먼저 여러분들에게 공지사항 한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오늘부터 30일까지 한국에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유럽 성지순례 및 한인공동체에서의 강의로 보름 정도의 기간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새벽 묵상 글은 잠시 보름 동안 방학이구여, 아침문자는 그곳의 상황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인터넷이 된다면 아침문자를 보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튼 제가 없는 동안 모두들 건강하시길 바라면서, 저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오늘의 묵상 글 시작합니다.

어제 저는 너무나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사실 전날 청년 피정이 있었거든요. 그 피정이 밤늦게 끝나서 제가 잠을 잔 시간은 2시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새벽미사, 9시, 11시 미사, 점심식사 후에는 아는 분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서울의 *** 병원으로 문상을 다녀왔지요. 이제 좀 쉴까 했더니만, 텔레비전에서 흥미진진한 프로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다가 결국은 조금도 쉬지 못했지요. 6시에 면담 그리고 7시 미사. 마지막으로 8시에 집 축복을 한 뒤에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나도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두 시간도 못 잤는데, 왜 이렇게 바쁜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그런데 여기서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만약 낮잠을 두 시간 가까이 잔다면 어떨까요? 아마 사람들이 잠보라고 놀리지 않을까요? 하지만 밤의 잠을 두 시간 정도 잤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렇게 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고 깜짝 놀라지요. 똑같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언제 자느냐가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이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서 지금의 상황도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즉, 부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는 천지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상황이 최악의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내 안에 부정적인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러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만 가지고 있다면, 최악의 상황이 아닌 최고의 상황이라면서 신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상황을 이렇게 최고의 상황으로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이러한 약속을 복음을 통해서 분명히 해주셨지요.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자기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상황은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절망에 빠지는 사람은 신앙인의 모습이 될 수 없습니다. 신앙인은 매 순간 주님을 느끼고 그분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갖기에, 언제나 희망을 간직하면서 기쁘게 살아갑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어느 여인이 살충제를 먹고 자살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마신 액체는 살충제가 아닌 독이 전혀 없어서 인체에 무해한 액체라는 것이지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스스로 살충제를 먹었고 이제 곧 죽는다는 생각에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오묘한 육체는 마음과 정신의 지배 아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이 마음에 반드시 주님을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주님께서 주신 멋진 세상이라고 하면서 기쁘게 그리고 재미있게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신나게 사세요.



우리의 적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이어령, '축소지향의 일본인 그 이후' 중에서)

사슴이 사는 곳과 늑대가 사는 곳에 철조망을 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사슴이 모두 죽어 갑니다. 왜냐하면 철조망이 없으면 약한 사슴을 늑대가 쫓아와 잡아먹어 버립니다. 그러나 철조망이 없으면 강한 사슴만이 살아 남게 되어 자꾸자꾸 새끼를 번식시킵니다. 빨리 달아날려고도 합니다.

그런데 철조망이 쳐져 늑대가 없으니까 잡혀 먹힐 걱정이 없어져 사슴은 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살이 찝니다. 약하고 늙은 사슴도 죽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성보다 열성의 사슴이 자꾸만 늘어나고 결국 자멸케 되는 것입니다.

짧은 눈으로 보면 늑대는 사슴의 적이지만 숲 전체가 함께 산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거꾸로 사슴에게 있어서 늑대는 귀중한 것입니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글쓴이 : 빠다킹 원글보기
메모 :